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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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데뷰작(or 출세작?)이었던 오래 전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 . . . )

연령을 초월하여 우정을 나누던 한 여자의 지인이

오래 전 이풍진 세상 소풍 끝마친 후

내내 지우지 못한 손전화로

어느 날 문득전화를 걸었단다.

이미 폐기처분 되어 무반응일 줄 알았는데

맑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네?

놀래서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분 전화여서…’

여차저차 . . .전화를 끊어려는데

그 청년은 돌아가신 할머님 전화를 요즘은 자기가 사용한다며

"제 할머님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더란다.

청년의 대화 부분은 어느 날

‘세음’ 정은아씨가 들려주던 얘기니까

아마 세음 작가의 글이겠지- 아니면 어디서 들은 예화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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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유방에 악성 종양 발견되어 당분간…’

이라는 문자가 온 날 아뭇소리도 못하고

아침 일정 하나 챙긴 후 집에 오는데 b의 전화를 받는다

– 나도 별로 아는 게 없어서…하고 전화를 끊고

아무일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바느질 한 건 아무일도 아니한 거에 속하니까)

우두커니 음악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또 전화가 온다

b와 같은 내용이지만ㄷ는 울먹울먹하며 나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모월 모일 입원날짜 알게되면 같이 병원에 가기로 하고. . .

오늘까지 ‘암 통보’ 문자가 떠나질 않는다

이후 ‘우리’가 전화도 잘 못하는 줄 아는지

암 크기는 1.5 센치고 2센치 이하는 1기로 추정한다는 문자랑

입원하기 전 조카의 결혼식에도 잠깐 참석한다. . .

18일 밤 이후 입원할 것같다. . .는 일정까지 중간중간에 왔다

평소에도 현명한 사람이라

이런 문자도 단체로 보내는듯 했다.

상세한 내용을 알려줘서 나는 참 고마웠다

나 같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 중간중간에도

중요한(?) 일정과겹치지않아 다행이다

이기적인 생각도 좀 했다.

가구도들어내면바닥과 여실히 차이나게연한 색인데

청년의 할머님에다 나를 넣어보며

내 할 일은 다 하고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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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The Tree of Life보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비미남경(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면)들러

커피 한 잔꼭 하리라 결심하고

영화 끝난 후 부러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 왠지 썰렁한 기운도 아니 느낀 건 아니지만

창 밖에서 보니 실내에사람이 있어

어라? 물음표를 달고 힘차게 문을 여니

뭔가 열심히 일하던 두 남자는

나보다 더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봐서

-. . . 저 여기 비미남경 아니었나요

– 아 맞긴한데…지금은. . . (아니란다)

– 언제 문닫았나요?

– 글쎄요 저희들도 한참 후에 인수하여…

난 할 말이 없어 커피잔과 기구들이 잔뜩 있는 벽을 보며

이곳도 ‘커피전문점…?’

하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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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에 빠지면 또 그 한가지에만 올인하는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어제 같은 경우 ㅡ영화본 후

이것저것 주워오는 광고지 보고- 아트 큐브 소식은 메일로도 받지만

다음에 볼 영화 목록에 주루룩 새겨보는 것 등등.

카모메 식당, 안경. 토일렛.제작진의 다음 영화 도쿄 오아시스도 봐야하고

교황이 승인한 신의 계시를 받은 최초의 수녀 힐데가르트의이야기

위대한 계시 – 울지마 톤즈. 위대한 침묵.의 감동을 잇는다 하니

‘지금 사랑하세요 …사랑 할시간이 없다’는

Here and There

– 올겨울, 세상 모든 여자들을 설레게 할

최고의 중년로맨스라는 예고편을 보니

또 필견의 영화같아 당분간 영화에 빠지지 않을까 . . .하다

아니다 12월이라는데 모르겠네. ..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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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탁에서 첫수저로 동치미 떠먹다

-김 없나( 있으면 왜 안차렸을까…)

급강하한 날씨 탓인지 이제야 겨우 제맛이든 동치미 국물

김으로 밥을 싸고 한 입 떠 먹는게 우리집 식습관이다

-시어른이 그러셨고 울집 남자 울집 아이들 또 나까지도 닮아버린…

소원이 있다면 식탁에서 제발 밥 다 먹을 때까지

날 좀 편안히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입맛에 맞는 반찬 없으면 꼭 두어 번 일으켜세우는 못된 버릇

영원히 고칠수 없을것이다 -오래된 식습관 못고치듯

( 오늘 아침… 시리얼에 바나나까지 먹었다 해서

혹시 밥은 생략할 줄 았았다

평소엔 내가 싫고 듣기 민망해서

내 앞에서는 말도 못꺼내게 하는三食씨 시리즈가 왜 생각이나는지

종일 간식까지 챙기는 남자를 뭐라고?

종종 간식이었나 ? 여튼 기막히는 표현들 . . . 참나원,

다 내탓이다…

동치미 맛 보면서 미리 김도 구웠어야했는데. . .

가끔 메인 메뉴도 열심히 해 두고 밥 다 먹은 후

‘아차! 잘 하는 내 건망증 탓이지

지인의 암 통보 이후 계속 저기압인 내 맘 어이알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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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흔적은 어떻게 남을까…

비미남경간판 처음 보고 반가웠다가

되돌아 나오면서 다시 확인한

을씨년스런 풍경, . .

왜그리 허무했는지

맞은편 스타벅스 조명은

반대로 화려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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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음 영화 보러 갈 때쯤엔

같은 자리 커피점 한 번쯤가 보고도 싶고

아니면 No sugar No butter,

다이어트 강조한 모모 하우스 앞의 커피점에나

생각없이 앉아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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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하우스가 있는건너편 헬스 클럽은 참 넓기도 했다

대학교내에 헬스클럽이 있는 시대인데

난 참 구식인사람 틀림없다.

참 많이 변한 이곳 풍경 속을 걸으며

오래 된 흔적들 그리워나 하며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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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이 지상에 내가 사라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흔적들 모두 지우기 전에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정물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 .

12월. . .생각없이 지내자. . .

자꾸 결심은하는데

눈소식도 들리는 오늘은 9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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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Comments

  1. 산성

    09/12/2011 at 00:33

    눈… 저에겐 첫눈(雪)이라…

    오늘은 12월 9일,맞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도 잘 지냅니다.
    이런 시시한 안부라도 주고 받고 싶은 날…!

       

  2. 김진아

    09/12/2011 at 00:59

    지금 눈 내려요. 첫 눈이요. 이곳은….

    ‘아, 좋다~!’ 하면서도..’버스로 가는 길 막히면 어쩌지? ‘그러면서 시간 계산합니다.
    집에서 나갈 시간이요.ㅎㅎㅎ

    건강하세요. 잠깐씩의 건망증은 누구나 다 있는걸요.

    반찬 만들어 놓고, 내 놓지 않는 …여러번의 실수 제가 요즘 자주 그럽니다. ^^   

  3. 참나무.

    09/12/2011 at 03:23

    서울의 첫 눈 맞아보고 왔습니다
    덕수궁 정문에 나가볼 정도는 아니어서 전 무효라 우기긴했지만
    여튼. 반짝거리는 거 한참 바라보다가…   

  4. 참나무.

    09/12/2011 at 03:26

    넘 바빠 어쩌지요 진아씬. . .

    눈소식으로 여는 오늘하루도 잘 살아냅시다   

  5. summer moon

    09/12/2011 at 05:09

    참 묘하지요,
    이틀 동안 참나무님 생각 할 때 마다 느껴지는게 평상시와는 달랐거든요
    몸이 아프신건 아닌거 같은데 마음이나 기분에 변화가 온것 같은…

    저도 몇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제 친구 (집)전화번호를 아직도 수첩에서 지우지 않았어요.
    친구가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거 알면서도 가끔 전화를 했었는데
    이젠 더이상 전화를 걸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제게 전화를 걸었을 때의 친구의 목소리를 더 이상 기억할 수 없을 때
    그때 전화번호를 지우려고 그래요.

    사진들에서 십자가를 보게 되네요
    참나무님 마음과 기도가 담긴 것들……

    이럴 땐 제가 사는 곳으로 잠깐 놀러오시라고 그러고 싶어요,
    연세가 팔구십 되신 분들이랑 커피 마시면서 얘기 나누다보면
    참나무님 보고 베이비라고 서너번은 그럴거거든요.^^

    쉽지 않겠지만 기운 내시고
    마음 너무 아프지 않게 다독이시구요.

    사랑과 기도를….    

  6. 참나무.

    09/12/2011 at 05:13

    속 깊은데 까지 …고맙기도하지…!

    요즘 이상하게 십자가 상을 혼자 맘대로 만들어가며
    깊은 기도 하고다닌답니다 – 좀 조용했지요 평소완 다르게…

    그래서 더 고마운…단 한 명이라도
    이렇게 차분히 잡글 읽어주는 이 있으니 행운아다 합니다

    아직 봉오리인 한강변 병꽃 아파트 입구 장미가 기어이 눈을 맞았답니다

       

  7. 레오

    09/12/2011 at 09:15

    눈발이 날리고 우중충한 날씨였어요
    모모하우스앞 헬스클럽 넓어서 저도 구식사람인걸 알았어요.ㅋㅋ

    아플때 병원에 와주신거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해요~   

  8. 참나무.

    09/12/2011 at 09:36

    서울도 흐렸어요 오후엔 눈발이 그치고
    모모…헬스클럽 지나 편의점 앞의 원탁에선 삼삼오오 컵 라면들 먹고있데요
    바로 곁엔 ‘논문 세일’ (? 아마 프린트?) 한다는 곳도 어슬렁거리다
    빈 P.C 보여서 잠깐 메일 확인도 했답니다.

    생명나무 본 건 순전히 쉬리 & 레오 님 덕분이에요
    – 지금도 기도는 계속 중
    올해는 주위에 참 아픈분 소식을 많이 듣네요   

  9. 도토리

    09/12/2011 at 09:42

    아침 출근 길에 눈 오시길래 강아지처럼 좋아했더랬지요.
    눈소식을 낭만으로 받아줄만한 사람 에게 전화를 했구요.
    하여간에 저에겐 첫눈.. 기분 좋았습니다..^^*
       

  10. 참나무.

    09/12/2011 at 09:48

    눈 왔다고 전화할 데 있는 분은 행복한 사람, 인정합니다…^^*

    …오늘도 울집 남자는 늦겠다고 전화와서
    이리 놀고있네요
       

  11. 佳人

    09/12/2011 at 11:07

    세끼에 간식먹는 남편ㅡ 간나**
    세끼에 간식에 야식까지ㅡ 종간나**
    에고 죄송해라, 한국 남편들이여~ ㅎ
       

  12. 참나무.

    09/12/2011 at 11:15

    허억 ~~이런 천기누설을…끙…;;

    사카 손님 없나보네요…
    치아바타에 양파잼, 먹고싶어라아…^^

    눈 구경은 하셨나요.    

  13. 산성

    09/12/2011 at 13:24

    정물…에 놀라서 정물처럼 돌아 나갔습니다…;;
    엄마 생각 나서요.
    몸이 불편하지 않았어도 정물처럼 앉아 계실 분이었는데…안씨로이…

    지나간 이야기들이 가슴을 쿵! 칠 때가 있지요. 왜~
    그런 아침이었어요.오늘…
    흩날리는 눈발에나 마음주자…그랬었답니다.

       

  14. 산성

    09/12/2011 at 13:25

    그런데 시향 말러연주에 송영훈씨가 앉아 있었어요.
    당연히 참님 생각^^

       

  15. 참나무.

    09/12/2011 at 14:13

    산성님은 어머님 꼭 닮았지요…
    전 오늘 새벽의 눈은 못봤거든요
    하루종일 바느질만 했더니 지금 글자가 흐릿합니다
    시향파들 부러워라, 언제쯤 밤 외출에 자유로울지…

    요즘 송영훈씨 한참 못만났네요…고마워요 제 생각해주셔서…^^
    저도 ‘생명나무’ 영화보면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생각 많이났답니다
    요즘은 대사없는 또는 아주 적은 영화가 대세인가봐요
    그냥 이미지랑 음악만 들어도 좋다…했거든요
    말러,브람스. 바흐… 특히 스메타나 몰다우가 흐를 때 참으로 절묘하다 했답니다
    영화본 후 알았지만 런던 심포니였다네요
    산성님도 음악회 가듯 이런영화는 보셔도 좋았겠다 싶어서요
    엔딩 크레딧 오를 때 ㄹ흐르던 기타곡 하며…

    이젠 잠자리에듭시다…고운꿈 꾸시고
    음악회 다녀오신 날, 얼마나 충만하실까…   

  16. decimare

    09/12/2011 at 14:21

    "흔적"…남길 수 밖에 없군요. ㅎㅎ

    잘 계시죠?
       

  17. 참나무.

    09/12/2011 at 14:30

    금요일 늦은 시간 흔적을 남기시는 마레 님은
    괴발개발 제 잡글들은 안읽으시는 거 맞지요

    안읽는다고 뭐라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도 잘 아시리라 믿고
    똑똑하신분이시니…그지요…^^

    저는 잘 있습니다
    마레님 글도 잘 읽고있구요- 오늘은 사진이었지만…^^
       

  18. 교포아줌마

    10/12/2011 at 01:53

    가까운 지인의 ‘C’ 소식이 그렇게 가깝게 쿵하고 울렸을 참나무님 마음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동치미는 익고
    김도 굽고

    식구를 살리는 밥상은 차려지고요.

    우리가 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사실인지요.

    아직 일기이니 잘 치료되실 것이라는 위로 말씀 놓고 갑니다.

    참나무님^^   

  19. shlee

    10/12/2011 at 02:40

    저는 …르 아브르 보러 아트하우스모모에 갔었는데…
    참 좋더라고요.
    요즘 보면 딱인영화…
    시간이 남아서…저 혼자 밥먹고…
    암 앞에서 쫄지만 않으면…
    용감한 사람이 암을 이기겠죠?
    암을 이긴 용감한 분이 탄생하시길…   

  20. 참나무.

    11/12/2011 at 22:56

    …1기 2기를 떠나 암이 발견되면 전이여부 때문에
    온갖 검사를 다 해야하는 게 좀 걱정이지요- 겪어봐서…^^

    그러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상도 차리고 음식 투정에 짜증도 내면서
    이기심과 건망증… 부끄러워 하며
    이렇게 …한 주를 또 맞네요

    교아 님의 위로…감사히 받습니다
    평안하신지요…^^   

  21. 참나무.

    11/12/2011 at 23:03

    지금 암 투명 중인 사람들께
    의미있는 영화처럼 보였어요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영화보기라면 좋긴한데
    봐야 할 영화는 많고 할 일은 더 많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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