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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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중히 여기는 우리말 중에 ‘섬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섬김’이라는 말을 입 안에서

굴려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좀더 순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제

시쓰기가, 적으나마 세상의 목숨들을 섬기는 한 노릇에 해당하기를 조심스러이 빌고 있습니

다. ‘섬김’의 따뜻하고 순결한 수동성 속에서 비로서 가능할 어떤 간곡함이 제 시쓰기의 내

용이자 형식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시가, 제 말을 하는 데 바쁜 시쓰기이기 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시쓰기이기를 바

랍니다. 앞장서 서두르는 시이기보다 묵묵히 기다리는 시이기를, 할 말을 잘 하는 시인 것

도 좋지만, 침묵해야 할 때에 침묵할 줄 아는 시 이기를 먼저 바랍니다

저의 시가 이기는 시이기 보다 지는 시이기를 바랍니다. 밝고 드높은 웃음도 아름답지만,

영혼은 언제나 설움과 쓰디씀 쪽에서 더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 맞는 풀과 나무들 곁에서 ‘함께 비 맞고 서있기’로써 저의 시쓰기를 삼고자 합니다. 우

산을 구해오는 일만 능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겠습니다. 그 찬비 맞음의 외로움과 슬픈 평

화를, 마음을 다해 예배하겠습니다. 그 ‘곁에 서서 함께 비맞음’의 지극함으로써 제 몫의 우

산을 삼겠습니다. 제 몫의 분노를 삼겠습니다. 지는 것으로서, 짐을 독실하게 섬겨 치르는

것으로서 제 몫의 이김을 삼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저의 은유를 삼고, 그것으로서 저의 환유를

삼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저의 리얼리즘을 삼고, 전복적 글쓰기를 삼고, 할 수만 있다면 저의

생태적 상상력과 저의 폐미니즘을 삼을 수 있기 바라겠습니다.

 이 소망이 과한 것이라면, 부디 저의 시쓰기가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노릇만이라도 아닐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간구하겠습니다. 풀과 돌의 이름을, 거기 그렇게 있는 그들의 참다움

을 내 시를 꾸미려고 앗아오지 않겠습니다. 지어낸 억지 이름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겠습

니다. 그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꽃피울 때를 오래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이 열어 허락한 만

큼만을 저의 시로서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큰 수행이자, 큰 과학이자, 큰 예배로서, 저에게 시쓰기가 오래도록 다함이없기

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2006.11 대산 문학상 수상 소감 – 김사인

사족; 볼드체는 시인이직접 긴 괄호를 한 면만 해두셔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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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두 권 뿐인 시인의

첫 시집’밤에 쓰는 편지’와

‘가만히 좋아하는’에서고른7편을

‘조용한 일’ 시 내용처럼 낭독하신 후

시의 배경까지 조곤조곤 들려주셨다

‘마지막으로. . . 하시며A4용지를 드실때

직감으로 받아적어야 되겠다 싶어 열심히 끄적거렸지만

속기를 배우지 않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아쉬웠다

공식 행사가 끝난 사석에서 염치 불구하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마지막 원고 볼 수 있는 데가 없나. . .’

여쭸는데 예의 순한 웃음으로

‘가만히’ 계시다 ‘조용히’ . . .

조용히 원문을 주시겠다 하셨고

헤어지기 전에A4 용지 한 장을 품을 수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곰곰 정독한 이후

제일 무서워 하는 필사, 재삼 재사 확인 마치고

간단한 소감이라도 적어 올려야 하는데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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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떠들었다 나는…-…주제에

말 아껴야겠다. 반성이 물밀듯. . .

자성의 시간 연말에 참 좋은 시인을 만나

한 해를 뒤돌아 볼 수 있게 한 일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싶은 생각과 함께. . .

시를 쓰는 일 아니어도

살아가는 자세는 이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려운 화두 하나 안겨주신 것도 같았다

문태준 시인의 시를 대하고 시인의 출생 년도를

처음 알고 놀란 기분이 그대로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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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에서 다시 그 소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당신 스스로 족쇄같은 기분이 든다고

뒷감당이 무섭다 하셨다

허지만 그 무서운 약속은 틀림없이 지켜지리라. . .

청담 12회 낭독회 참석한 분이면

단 한 분도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 확신한다.

포스터의 트렌치코트

그 모습 그 웃음 그대로 오셔서

올들어 제일 추운 날,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황홀한 일 아닌가 . . .

기적스러움을 스스로 확인하고. . .’

많이 행복하다는 고백도 아끼지 않으시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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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제는 시의 배경까지 알게 된 이후

마음으로 다시 접하는 절절한 구절들이라니

급히 따라 적은 토룡체도 많지만 말 아끼고 싶다

연말 금요일 저녁, 귀한 자리 함께 하신 분들과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번엔 불참하신 분들께

수상 소감과 시 몇 편 올리며 후기 대신합니다

그날 그 자리 시인의 그 목소리 기억하며. . .)

 코스모스  김사인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

5학년 2반 교실에서 – 김사인 

5학년 2반 여자아이네 교실 오른 쪽 벽

기억하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사내아이 슬픈 눈

하나가 뒷짐 지고 하늘을 보던 액자 하나

금모래 뜰 갈잎 숲으로 나를 불러 나도 그림 속으로 쫓

아들어가 뒷짐 지면 슬프게 하늘 보면 강물 소리도 날 따

라와 저희 엄마 누나 생각 얼굴 흐려져 차라리 눈 감고 흐르데

5학년 2반 여자아이 땋아내린 갈래머리 꿈처럼도 흰 살

빛으로 액자 속 들여다보다가 강변에 사는 나를 못 알아보

고 조개껍질만 주워들고 돌아가면 나는 소리소리 지르고

몸부림치고 그래도 뒷짐 진 사내아이 꿈쩍 않고 의젓하게

강변에 살데 강변에 비 내리는데 비 내려 갈잎 소리 교실에 그득한데

*

전주 – 김사인

자전거를 끌고
여름 저녁 천변길을 슬슬 걷는 것은
다소 상쾌한 일
둑방 끝 화순집 앞에 닿으면
찌부둥한 생각들 다 내려놓고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쯤은 해야 하리
그러나 슬쩍 피해가고 싶다 오늘은
물가에 내려가 버들치나 찾아보다가
취한 척 부러 비틀거리며 돌아간다
썩 좋다
저녁빛에 자글거리는 버드나무 잎새들
풀어헤친 앞자락으로 다가드는 매끄러운 바람
( 이런 호사를! )
발바닥은 땅에 차악 붙는다
어깨도 허리도 기분이 좋은지 건들거린다
배도 든든하고 편하다
뒷골목 그늘 너머로 오종종한 나날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여기는 전주 천변
늦여름, 바람도 물도 말갛고
길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버드나무 길
이런 저녁
북극성에 사는 친구 하나쯤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타고 놀러오지 않을라
그러면 나는 국일집 지나 황금슈퍼 앞쯤에서 그이를 마중하는 거지
그는 나귀를 타고 나는 바퀴가 자글자글 소리 내며 구르는 자전거를 끌고
껄껄껄껄 웃으며 교동 언덕 대청 넓은 내 집으로 함께 오르는 거지
바람 좋은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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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1. 참나무.

    18/12/2011 at 00:15

    라르고와 함께 이제사 비공개 풉니다…;;   

  2. 산성

    18/12/2011 at 00:46

    시인의 뒷모습 사진도 참 좋으네요.
    세월 흘러 가듯 이 날 만남도 잊혀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오래 갈 것 같다는…특히나
    시를 읽어 내리시는 그 어조는…!
       

  3. 참나무.

    18/12/2011 at 02:13

    명작 스캔들 보느라고…
    산성님께 다시 부탁해요…후기 청담카페 올려주셨으면…

    예배드리고 오겠습니다..주일 편안하시길…   

  4. 佳人

    18/12/2011 at 07:14

    마지막에 읽어주신 수상소감을 저도 휘갈려 적어보았는데
    전혀 알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었는데 참나무님이 받았다시길래
    안심했었어요.
    이 거 외에 저는 다시 들어야할 이야기 많아요.
    나중에 다.다. 말씀해 주세요^^

    김밥 정말 무겁던데…수고 많으셨어요.
    그 할머니께서도 너무 애쓰셨겠더라구요.
    그 가격에 그렇게 속을 꽉꽉 채우셨으니…

    위의 소상소감은 나중에 스크랩할게요.
    본문스크랩으로 해주세요^^   

  5. 푸른

    18/12/2011 at 13:31

    참나무님’
    한 해 동안 귀한 블로그의 기록들에 대하여 정중한 감사를 올립니다.
    한해가 저무는 이즈음 이리도 겸손하신 시인과 시를 알게 해 주셔서
    더 할 바 없는 기쁨을 마음깊이 간직합니다.
    성탄과 더불어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더욱 영육간 강건하십시요.
    다시한번 그간의 아름다운 시낭송회를 열고,보여주신 `청담 시낭송회’가족들께도
    동심어린 배꼽인사를 드립니다!!!모두모두 평안하십시요!!!^^~

       

  6. 참나무.

    18/12/2011 at 13:40

    수상 소감은 어제 아침에 올려두고 제차 오타 수정하려고 비공개 해뒀는데
    같은 소감이 올라와 있어서 계속 비공개했다가 오늘에사 풀은 겁니다
    참석 못하는 제 포스팅만 보는 몇 분들을 위하여

    지금도 볼 때마다 오타가 나와 본문스크랩으로 돌리진 못하겠어요-고래 아시고오~~^^

       

  7. 참나무.

    18/12/2011 at 14:07

    이리라도 올려둔 게 잘한일 같으네요 푸른 님 때문에라도…^^

    네에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한 말씀 한 말씀 오래 오래 기억해 두고싶을 정도로…

    올 한 해 관심 고마웠어요
    푸른 님도 송구영신하시길…^^   

  8. douky

    19/12/2011 at 23:56

    천천히 투박하게 읽어 주신 시도 좋았고
    순하게 웃으며 들려주셨으나 문득 문득 가슴이 찡해지던 이야기도 좋았고
    ‘가만히..’, ‘겸손하게…’ 시를, 삶을 지어나가는 시인의 마지막 글…
    마음에 오래 오래 남았습니다.

    ‘청담’의 순수함, 진지함, 맑은 마음들 온전히…
    기쁘고 감사하게 전해져 감동 받았다는 인사에…
    더욱 아름다운 분 같았어요~~~ ^ ^

    준비함에 있어…
    늘 정성스럽게…
    참나무님… 감사합니다~   

  9. 김진아

    20/12/2011 at 00:45

    고맙습니다. ^^   

  10. 참나무.

    21/12/2011 at 04:04

    이번 청담 모임에서 힘 실어주시는 말씀을
    시인으로부터 직접 듣게 된 일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요

    어제 멀리 부천까지가서 A4 용지 낭독하게 했답니다
    모두 고갤 끄덕거리더군요
    좋은 모임이라고…
    그러면서도 선뜻 오진 않을 사람들이 말이지요…^^

    ( 아직 덕희 님 마무리 남았지요 기다려도 될까요…살짜기…^^)
       

  11. 참나무.

    21/12/2011 at 04:05

    진아씨는 스크랩까지 하시고…

    스크랩 풀라고 떼쓰던 사람은 아직인데…ㅎㅎ
    연말이라 많이 바쁘지요 그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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