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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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집에서 출발

S 병원 발인 예배 오전 6:45

차가 막히지 않아 일찍 도착했다.

종이 그릇에 담긴 밥과 육개장

이쑤시개가 손잡이 한가운데 있는 을씨년스런 수저로

거절하기 어려워 국에 말아 몇 번 뜨고

한방차 한 잔을 천천히 마셔도 시간이 남는다

구석의 각진 의자에 앉아

시집 아무 데나 펼쳤다

하필. . .

눈물이 저 길로 간다 – 김사인

눈물이 저 길로 간다

슬픔 하나 저 길로 굴러간다

물 아래 물 아래 울음이 간다

찔레꽃 한 잎 물 위에 흘러간다

오늘 못 가고 내일

내일 못 가고 모레 글피

글피도 아니고 아득한 훗날

그 훗날 고요한 그대 낮잠의 머리맡

수줍은 채송화꽃 한 무더리로

저 길로 저 길로 돌아

내 눈물 하나 그대 보러 가리

그대 긴 머리칼 만나러 가리

서늘한 눈매 만나러 가리

오늘 아니고 어제

어제도 훨씬 아닌 전생의 어느 날

눈물은 별이 되어 멀리로 지고

손발 없는 내 설움 흰 눈 위로

피울음 울며 굴러서 간다


– 김사인 시집 ‘밤에 쓰는 편지’ p.126 문학동네

사철 채송화 지나칠 때 생각나

맘속으로 읊던 구절과 시인의 목소리, 그 웃음,

이도 저도 할 수 없어 마시게 되는 술에 관한 말씀 들은 이후

다르게 읽히는 구절구절이라니

‘당분간 묵언’

대문에 써 붙이지 않은 건 다행이라 할까

못 말리는 다변, 어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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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은

울집 남자랑 같은 항렬 제일 맏형이다

오래전에 갑자기 타계한 사촌 형 이후 처음 맞는 일이라

같은 純 자 항렬 가족들은 기분들이 그런갑다

다음엔 누굴까

이런 표정들이 읽힌다 – 나도 포함

2남 2녀 자손들도 그만 그만하여 화환이 넘쳐난다.

둘 데가 없어 리본만 조르륵 매달린 모습

요즘 자주 목격하는 장례식장 풍경이다

누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을까,

낭비다. . . 하다가도

그 꽃으로 일용할 양식 구하는 사람들 생각하며

앞의 생각은 눌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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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으로 떠나는 영구차들 묵례 후

반포대교를 건너 돌아도

아직 미명. . .

풍경의 깊이 – 김 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 김 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p.11~12

강으로 가서 꽃이여- 김사인

이마에 손을 얹고 꽃이여
이마에 여윈 손 얹고 꽃이여

어둡게 흘러가는 강가로 가자
어린 자갈들은 추위에 입술 파랗고
늙은 여뀌떼 거친 종아리

강으로 가서 우리는
강으로 가서
다만 강물을 보자

하늘엔 찬 별도 총총하리
시든 풀의 굽은 등엔 서리가 희리

취한 듯 슬픔인 듯 강으로 가서
다만 묵묵히 강물을 보자
이마에 손 얹고 꽃이여

– 김사인 시집 ‘ 가만히 좋아하는’ p. 111 창비. 2006

발인 예배식장, 찬송가 49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열심히 따라부르고

고린도후서 5:1 다 같이 봉독 후

브라질 출장 중이어서 임종 못한 작은 사위

조사 읽어가다 끝부분에서 흐느끼느라

말문을 놓친 것까지는 괜찮았다

나이 많이 드신 동생의 고리 쩍 영탄조의 조사는

소름 돋아 혼났다 – 제발~

김사인 시인의 그 목소리가 생각나서 더더구나

당분간. . .

김사인 시집이 가방 안에 있을 것 같다.

12 Comments

  1. 무무

    19/12/2011 at 03:27

    이번 이낭송회 후기를 여기저기서 보니
    김사인님 시집을 저도 한번 읽어 봐야겠다 싶네요.

       

  2. 참나무.

    19/12/2011 at 05:18

    무무님~~ 시집 사지말고 좀만 기다려보셔요…^^   

  3. 산성

    19/12/2011 at 07:35

    사는 일, 잠깐 인 것 같습니다.
    오늘 특보로 나오는 뉴스 역시 그런 생각이 들게 하지요?
    추웠던 금요일과는 달리 날씨가 좀 보드라워졌습니다.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4. 참나무.

    19/12/2011 at 08:15

    그러게나 말입니다
    특보 라지도로 들었네요 저도…

    필사…들이 밀고 빼느라 혼줄이 났습니다
    낭독회 후유증..이번엔 오래 갈 것같네요

    ( 그나저나 제가 아는 퀼터 김사숙씨가 직계라면 어찌하오리…^^)   

  5. 도토리

    19/12/2011 at 09:46

    그러면 김사숙씨도 함 뵈어야지욥..ㅎㅎ^^*   

  6. Elliot

    19/12/2011 at 18:21

    올 때는 순서대로 와도 갈 때는 무순서니깐 삶에 열중하다 보면 때가 오겠지요. ^^

       

  7. 揖按

    20/12/2011 at 04:38

    한국은 요즘 영하로 많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남가주도 연일 구름끼어 해가 안 보이니, 으슬으슬 춥습니다.

    이제부터 가는 것은 나이 순이 아니지요…
    제 아무리 별별 좋은 거 다 먹고 쓰고 온갖 호사 다 해도,
    죽네 사네 하더니 결국 70도 못 살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고기 없이 나물 반찬에 된장만 먹어도 매일 운동하고 편한 마음이면,
    백세 넘어 건강하게 살다 가겠지요.
       

  8. 참나무.

    21/12/2011 at 03:53

    정말 한 번 알아봐야겠지요.
    이름자에 思 자 든 집안들…

    도토리 님 좀 전에 ‘좋은사람’과 긴 통화 후 베란다 나가보니 눈오시는데요…^^
    분당도 혹시?    

  9. 참나무.

    21/12/2011 at 03:58

    한 줄의 진실 되겠습니다
    홍시보다 먼저 떨어지는 땡감도 있지요…더러는…^^   

  10. 참나무.

    21/12/2011 at 03:59

    이젠 추울 때가 되었지요…
    70도 못살고 가는 사람 때문에 국내외가 시끌시끌한가봅니다
    자세히 보진 않았어도

    매일 운동 할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다 싶네요 정말로…
    오래사는 것 보다 살 때까지 남에게 피해안입히고 건강하게만 산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요…

       

  11. 도토리

    21/12/2011 at 07:06

    잠시 눈이 펄펄 내리더니
    가는 비로 변하더니
    이젠 흔적조차 없습니다.

    .. 교통장애 아니되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을…^^*   

  12. 참나무.

    21/12/2011 at 08:34

    그러게요…
    어느 순간 눈은 교통장애가 된 세상
    하루죙일 딩굴딩굴…놀기도 어렵습네다아~~

    백건우 새 음반이 참 좋습니다
    브람스가 되어 연주하는 간주곡, 로망스…자주 소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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