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센베르크가 10년간 철학 공부를 한 이유

20세기 최고의 개성파 피아니스트.

오늘은 쇼팡의 소나타와 녹턴

저는 음반이 없어서 보관합니다

Frederic Chop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Alexis Weissenberg

Frederic Chopin
Nocturne in c# major op.posth / in Db major op.27 no.2

Alexis Weissenberg

P.S

바이센베르크가 10년간 철학 공부한 이유 손열음

출처; [LA 중앙일보] 02.28.11 18:53

내면 연기가 좋다’는 찬사를 받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감정을 극도로 세밀하게 그려내는 배우들에게 이 표현을 사용하지요. 인간의 감정은 마치 프리즘과도 같아서 하나의 단어로만은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종종 지극히 모순되지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나 우리는 때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거나, 희망과 좌절을 한꺼번에 경험합니다.그래서 행복의 끝에서 비극을, 불행의 끝에서 희극을 창출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우리는 공감과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피아니스트 중에서 이 내면연기에 가장 통달한 사람을 말하라면 저는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를 꼽겠습니다.
이 음악가는 출신성분부터 복잡합니다. 불가리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청소년기에 잠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미국 유학을 떠나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명지휘자 조지 셸과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그후 돌연 자취를 감춘 그가 약 10년 뒤 화려하게 재기한 곳은 프랑스 파리였고, 이곳에 정주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그를 칭송한 카라얀과의 작업으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 녹음 등 많은 작업을 카라얀과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잘 알려진 바이센베르크의 대표적 음반들이 바로 이 음반들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기교를 지녔지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연주’ 혹은 ‘명쾌하지만 차가운 연주’ 등 그에 대한 세간의 그릇된 평가를 낳은 것 역시 이 녹음들입니다. 피아노 한 대로 이미 오케스트라의 색채와 음악적 내용을 들려주는 바이센베르크는 또 다른 오케스트라와 마주하는 ‘협주곡’ 장르에선 제 역량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의 연주 모습을 담은 몇 편의 영상물들도 비평에 한몫합니다. 움직임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 모습은 ‘차가운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를 굳혔습니다. 사실 이것은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종종 ‘보디 랭귀지’로 연주 내용을 한껏 부풀려 포장하는 음악가가 있는 반면, 오히려 연주 자체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음악가들도 있는데 굳이 분류하자면 바이센베르크는 후자에 속하는 것이죠. 실제 음악회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몰라도 영상물 안에 갇힌 그의 모습과 그의 음악이 빚어내는 간극 역시 실로 모순입니다.

그의 음악세계가 십분 구현되는 작품들은 그래서 독주곡이 담긴 음반들입니다. 그는 바흐나 스카를라티 등 바로크에서부터 라흐마니노프, 라벨 등 20세기 작품을 넘어 거슈윈 등의 재즈와 자작곡까지 섭렵하는 왕성한 소화력을 과시합니다. 극적인 1966년의 귀환 후 녹음한 두 장의 음반은 음악적 대표작입니다.

차가운 불 같기도 하고 뜨거운 얼음 같기도 한, 온갖 아이러니를 한 음 한 음에 동시에 담은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은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음악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성역입니다. 쇼팽의 야상곡 작품을 여타의 피아니스트들이 자연스러운 서정성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마치 인간의 독백처럼 복잡다단하게 그려낸 또 다른 음반 역시 그의 철학적 세계와 미적 세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70년대에 발매한 바흐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은 단순한 코랄 한 곡에 작곡가의 종교적이며 세속적인 색채를 접합시킨 연주 예술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감상주의를 배제하면서도 페이소스를 고스란히 전달해 낸 80년대의 드뷔시 작품집 역시 또 다른 역작입니다.그러나 3∼4분가량의 짧은 스카를라티 소나타들에 세계관을 담아낸 90년대의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 이후 서서히 무대에서 퇴장한 바이센베르크는 현재 파킨슨병으로 스위스 자택에서 투병 중입니다.

‘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그의 말년이라 하기에는 이 역시 아이러니합니다. 단순히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

은 사실 기술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연기와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스스로의 색채를 불어넣는 일은 음악에서도 매우 어렵습니다. 타고난 재능, 각고의 노력, 부단한 연구가 모두 합쳐져도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히트를 기록한 데뷔 무대 이후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이유로 10년간 칩거했다는 그의 음악이 더욱 특별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삶의 역설을 가장 예술적으로 풀어낸 아티스트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의 음악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2 Comments

  1. 유근종

    10/01/2012 at 05:51

    명연주 명음반 오늘 프로그램 보니 바이젠베르크가 연주한 쇼팽협주곡이 있네요^^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2. 참나무.

    10/01/2012 at 05:53

    저두요…
    지금 손열음이 야무진 글을 올렸기 보관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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