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시’

꿈꾸셨다던 오규원 시인의 5주기 시낭독회 포스터엔

당일 낭독된 시와 산문이 빼곡히 실려있는데

이 오타쟁이가 무슨 수로 다 직타하겠는지요

혹시나, 다른 분들이 올려주면 드러그라도? 했는데

괜히 약속했다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만

창작하시는 분도 계신 데. . .

다시 반성하며 음악 듣는 시간에 조금씩.

긴 전문은 제목만이라도 올려두겠습니다

분명한 사건 전문

1.

나는 미국 문학사를 읽은 후 지금까지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 데, 좋아하는 그녀의 신장 머리칼의길이 눈의 크기 그런 것은 하나 모른다. 그녀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녀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다고 시에 적는다.

2.

노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노래를 따라 나온 한 자락 따스한 마음이 이 지상의 기온을 데운다. 우리의 노래는 언제나 노래로 끝나지 못하고 노래가 끝난 다음의 무서운 침묵의 그림자가 된다. 그것이 노래의 사랑, 노래의 죽음이다

김 현에게 전문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者도 아닌 죽은 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죽고 난 뒤의 팬티’

– 용산에서 전문 ( 아래에 올려서 생략. ) 했는데 어수웅 기자 기사 추가합니다 . ..ㅠ.ㅜ

다음달 2일은 시인 오규원의 5주기. 시인뿐만 아니라 소설가와 평론가까지 30여명이 모여

그의 작품을 낭독한다. 사진은 1주기 추모행사 모습.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새와 나무

‘가을이 되어/ 종일 / 맑은 하늘을 날다가/ 마을에 내려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만나면

// 새도 잘 익은 열매처럼/ 가지에/ 달랑/ 매달려본다// 다리를 오그리고/ 배를 부풀리고/

목을 가슴 쪽으로 당겨/ 몸을 동그랗게 하고/ 매달려본다// 그러면 나뭇가지도/ 철렁철렁

/ 새 열매를 달고/ 몇 번/ 몸을 흔들어본다’

출처: 이미지 &, 동시 <–작권 위배되면 내리겠습니다


물물과 나

7월 31일이 가고 다음날인

7월 32일이 왔다

7월 32일이 와서는 가지 않고

족두리꽃이 피고

그 다음날인 33일이 오고

와서는 가지 않고

34일, 35일이 이어서 왔지만

사람의 집에는

머물 곳이 없었다

나는 7월 32일을 자귀나무 속에 묻었다

그 다음과 다음날을 등나무 밑에

배롱나무 꽃 속에

남천에

쪽박새 울음 속에 묻었다

*

뜰과 귀

뜰의 때죽나무에 날아와 있는 새와 지금 날아온 새 사이, 새가 앉은 가지와 않지 않은

가지 사이, 시든 잎이 붙은 가지와 붙지 않은 가지 사이, 새가 날아간 순간과 날아가지 않은

순간 사이, 몇 송이 눈이 비스듬히 날아내린 순간과 멈춘 사이, 지붕 위와 지붕 밑의 사이,

벽의 앞면과 뒷면 사이, 유리창의 안쪽 면과 바깥 면 사이, 마른 잔디와 마른 잔디를 파고

앉은 돌멩이 사이, 파고 앉은 돌멩이와 들린 돌멩이 사이, 대문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

울타리와 허공 사이,

허공 한 구석

강아지 왼쪽 귀와 오른쪽 귀 사이 (‘현대문학’ 2001년 1월호)

–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전문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 고요

새와 나무는 올렸지요

– 방 전문

나는 시에게 구원이나 해탈을 요구하지 않았다. 진리나 사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시에게 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든 그와 같은 모든 관념의 허구에서 벗어난 세계였다. 궁극적

으로 한없이 투명할 수밖에 없을 그 세계는, 물론, 언어 예술에서는 시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가능성의 우주이다. 그러므로, 내가 시에게 절박하게 요구한 것도 인간이 문화라는 명목으로 덧칠해 놓은 지배적 관념이나 허구를 벗기고, 세계의 실체인 ‘頭頭物物’의 말(현상적 사실)을 날 것, 즉 ‘날[生]이미지’ 그대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ㅡ 시작 노트 <날 이미지와 시> 중에서

포스터엔 볼트체 부분만 적혀있고 나머지는 추가했습니다.

이외 산문은 3편에 어쩌면. . .

Arvo Part – Spiegel Im Spiegel (아르보 페르트 – 거울속의 거울)

4 Comments

  1. summer moon

    04/02/2012 at 04:16

    저도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데
    이제 부터는 그녀의 몸 어디엔가 까만 사마귀
    하나 있다고 믿어버리겠어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시’를 꿈꾸셨다니…
    시를 사랑하는 가슴들에겐 얼마나 애절하고 안타까운 찾음이고 다가감인지 !!!   

  2. 참나무.

    04/02/2012 at 07:26

    시도 그렇지만 산문도 콕콕 와닿는 구절이 많았답니다
    서머문 서울 있으면 이런 데 같아 다니면 얼마나 더 좋을까!
       

  3. 산성

    04/02/2012 at 09:13

    흐르는 음악에 귀 기울이고
    세상 떠난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 봅니다.

    라일락 나무…하니 그 향내 속으로
    그 향내에 눈 감던 시간 속으로

    이래저래 세월은 흐르고
    그 시간 속을 우리도 흘러가고 있는 중일 것이고

    라일락 나무 아래의 고요에 잠시…!

       

  4. 참나무.

    04/02/2012 at 10:34

    …말리고 말리고 또 말려 잎맥만 남은 것 같은 시인의 시들도 그렇지만
    서술적이던 ‘한 잎의 여자’도 좋아했지요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비슷한 싯귀 찾으며…

    산성님은 시집으로 햇볕가리는 여자…하면 될까요..^^

    ( 라일락- 고요는 2007년에 그 해의 걸작 시에 뽑히기도 해서
    예전에 올린 포스팅 찾아 필사 않고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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