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기자의 베르메르 취재기(보관)
원문출처 : 심장 위를 걷다

원문링크 : http://blog.chosun.com/aram1214/6184368

  • 전시 비수기의 미술 기자는 괴롭습니다.

    매주 면은 있는데 기사 거리는 없으니까요.

    매번 기획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잠을 설치며 고민하다 보면

    ‘이러느니 내가 차라리 예술을 하고 말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하여 지난주에도 도쿄 휴가에서 본 것들을 써먹었습니다.

    우에노역에서 우연히 본 전시 포스터 때문에 보러 간 전시였어요.

    시부야의 분카무라(文化村) 미술관에서 열리는

    ‘베르메르로부터의 러브레터’전입니다.

    분카무라는 일본의 철도재벌 도큐 그룹이 운영하는 복합문화시설인데요,

    고급 백화점인 도큐 백화점에 딸려 있는 곳이랍니다.

  • P1050294.jpg

  • 전시의 컨셉은 17세기 네덜란드 그림 30여점을 통해

    베르메르의 시대를 시각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전시의 간판스타 격인 베르메르 그림 3점도 좋았지만,

    다른 작품들도 아주 훌륭해 ‘백화점 미술관 전시가 과연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제 선입견을 싹 씻어주었습니다.

    특히나 작품 설명 카드가 아주 자세해서

    베르메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작품 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vermeer02.jpg

    베르메르, ‘푸른 옷을 입고 편지를 읽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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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메르, ‘편지를 쓰는 여인’

  • lady-writing-a-letter-with-her-maid-jan-vermeer.jpg

  • 베르메르,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특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의 ‘푸른 옷을 입은 편지를 쓰는 여인’은

    막 복원을 마치고 공개된 것이었고,

    일본에서는 최초 공개였는데

    저 개인으로서는 두번째 책 ‘모든 기다림…’에 저 그림을 썼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푸른 옷…’과의 남다른 인연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건 두번째 그림 ‘편지를 쓰는 여인’이더군요.

    저 그림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반짝거리는 진주의 느낌에 즐겁고 황홀해졌어요.

    관객을 바라보는 매혹적인 눈초리도 마음에 들고요.

    아트숍에서 ‘푸른 옷…’ 그림의 모사본을 팔고 있었지만

    ‘연인과 헤어져 눈물 짜고 있는 여자라니 재수없고 칙칙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절대로 집에는 걸어놓고 싶지 않더군요.

    대신 ‘편지 쓰는 여인’ 냉장고 자석을 사서 집에 붙여놓았습니다.

    어쩐지 연애 기운을 불러모으는 그림 아닙니까?

    고야전을 보았던 우에노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6월 30일에 베르메르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도쿄도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포스터와 맞닥뜨렸습니다.

  • cycameraimage(23).jpg

  • …….집 냉장고에 붙여놓았습니다.

    그와 함께

    6월에 열리는 서양미술관의 베를린 국립미술관전에서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이 최초로 일본에 온다는 내용의 포스터도요.

  • Jan-Vermeer-van-Delft-XX-Young-Lady-with-a-Pearl-Necklace-1660-5.jpg

  • ‘뭐야, 올해 일본 전시 얼굴마담은 베르메르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왜 일본에서는 베르메르 전시가 잦을까’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어요.

    제 기억에 몇년 전에도 베르메르의 ‘밀크메이드’가 일본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거든요.

    30여점밖에 안 되는 베르메르 그림이 유독 일본 나들이가 잦은 이유는 뭘까?

    베르메르 그림이 유독 일본 사람들에게 먹히는 이유가 잊지 않을까?

    ……뭐, 이러한 궁금증.

    전시를 볼 때는 기사를 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귀국 후에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취재를 하다보니

    저 스스로가 그 주제에 너무 빠져버려서

    ‘아,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의까지 생겼습니다.

    분카무라 미술관에 전화를 걸어 PR 담당을 찾아내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하는 과정은 약간 피곤했습니다.

    국내 미술관이었다면 정말 쉬운 일이지만

    도쿄 미술관의 컨택 포인트를 전혀 모르는데다가,

    게다가 영어로도 일본어로도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서

    반벙어리짓을 하고 있자니

    ‘아, 일어 공부나 좀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불쑥.ㅠㅜ

    그래도 운이 좋아서

    연락이 된 그날 관객 수를 물어보니

    ‘전시가 교토-미야기 순회전인데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60만 돌파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주귀고리 소녀’가 올 예정인

    도쿄도미술관에도 전화를 걸어 더듬거리며 물어봤는데

    2007년에 개최했던 베르메르 전시에 90만명의 관객이 들었고,

    1926년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이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죠.

    그리고 일본문화와 일본미술사 전문가들께 전화를 드려

    일본인과 베르메르와의 관계에 대한 강의를 한참 들었어요.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흥미로왔던 것은

    일본엔 역사적으로 재앙 이후에 미술 붐이 불었다고 해요.

    1920년대에도 관동대지진 이후에 미술전집 출판 붐이 일었고,

    버블 경제의 거품이 꺼진 1990년대에도 사람들이 전집으로만 보던 미술 작품의

    실물을 보기 위해 해외로 떠났다고 해요.

    아름다움에의 탐닉은 극심한 충격에 대한 ‘치유’를 위한 일본인 나름의 방어기제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는데 기사 맥락과는 동떨어져서 패스.

    일본은 우리보다 서양미술을 받아들인지가 오래 됐고,

    그래서 일본에는 유럽 미술관의 꽤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자주 옵니다.

    미술 애호가들 중에서는 전시를 보러 일부러 도쿄에 가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진주 귀고리 소녀’와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의 일본 전시가

    베르메르의 팬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래간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어 하며 기사를 썼습니다.

    (그림 제목 중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은 일본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편지를 읽는 소녀’로 돼 있어서

    영어 제목을 번역해 기사에 썼는데 사실 소녀처럼 보이지는 않죠?)

    여름 휴가는 ‘진주 귀고리 소녀’ 보러 다시 도쿄로 갈까 고민중…

    아래는 기사 링크입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30/2012013002820.html

  • Martha Argerich plays
  • Robert Schumann’s Piano Concerto in A Minor Op. 54.
  • with Riccardo Chailly conducting.
    0:23 – 1st Movement (Allegro affettu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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