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김명국 – 탐매도(探梅圖) 54.8 cmx 37 cm 국립 중앙박물관

이곳 저곳서 곧 올라올 것 같은 탐매도

시종의 소매를보면 ‘동상이몽’ 이런 단어도 떠오르고

. . . . . . .

내일은 기온이 더 높다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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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iatoslav Richter plays Grieg Lyric Pieces – Op.43 No.6 ‘To Spring’

(. . . . . . .)

마음에 응달이 그렇게도 많았던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들어 있는 호주머니 속에
손 넣은 채 서성거리며 그 꽃 오래 바라본다
혼자 보낸 그 많은 날들의 저녁
누구의 이름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입술
지병처럼 품고 살아온 이름들이 별로 떠오른다
가슴 덥히며 차오르는 내 안의 기쁨
오, 젖은 빵처럼 오래 희망이 없었구나
빈 병 속에 갇혀 우는 바람, 바람, 바람 소리 . . .


(. . . . . . .)


밤 – 장석주

시집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계사. 1998

P.S 장석주 15번째 시집 `오랫동안`출간

주역의 세계는 오묘하다. 양과 음, 너와 나 모든 것이 `이원화`돼 있으면서도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극단에 위치한 둘은 서로의 자장에 영향을받으면서도 별개의 중심을 가진 다른 원(圓)이다.

이처럼 내가 아닌 타인과 내 것이 아닌 물상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주역을 지배하는 기본 사상이다. 장석주 시인(57)의 열다섯 번째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 펴냄)에 수록된 55편의 시는 하나같이 `주역시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는 7~8년 전 "처음으로 `주역`을 읽고 따귀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자연의 변화를 음양의 이원론으로 풀이한 주역은 자연스레 그의 시에 녹아들었고 틈틈이 써 모은 시를 엮어 펴낸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55편의 시에는 각기 중심을 갖는 `원`들이 등장한다.

`눈길을 걸어서 식당으로 가는길 / 가정식 백반을 파는 식당은 은하의 저쪽에 있다 / 청양고추 하나를 된장에 푹, 찍어 먹는 / 눈보라 치는 이 아침 / 가정식 백반 일인분을 먹는 / 내게는 가정식 백반의 근심과 기쁨들이 / 한꺼번에 몰려온다 (`가정식 백반-주역시편 1` 중에서)`

시인은 밥 한술 뜨면서도 반찬을 다듬은 사람의 걱정거리를 생각하고 기쁘게 밥상을 차렸을 누군가를 생각한다. 이번 시집에서는 `나와 너`라는 두 개의 중심이 작품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음미해보아도 좋다. 가령 시 `잎과 열매-주역시편 133`에서 시인은 정반대에 위치한 `나와 너`를 노래한다.

`나는 서리고 너는 얼음인가 나는 꽃이고 너는 열매인가 나는 죽고 너는 사는가 나는 갈 길이고 너는 돌아오는 길인가`.

삶과 죽음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순환고리를 나와 너의 이별을 통해 명료하게 전하고 있다.

`하나는 / 둘 / 안이면서 / 밖 / 누군가를 베면서 / 깊이 베인 자(`강의 서쪽-주역시편 108` 중에서)`

와 같은 모순된 화법도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시인이 읊는 일상의 주역은 삶과 자연, 우주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시인이 주역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을 향해 꼭 주역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시인은 단지 시의 한계를 `주역`으로 깨보면 어떨까 하고 글을 써본 것뿐이다.

그는 열다섯 번째 시집을 펴내면서 "7~8년간 주역을 읽으면서 부딪힌 건 무지의 캄캄함이었다.

아직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주역 64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주역 해설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봐도 주역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란 것. 그의 말을 빌자면 "주역을 많이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가짜"라고 한다.

"주역은 너무나 넓고 불가사의합니다. 일치된 해석이란 있을 수 없어요." 저마다 체험과 시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역처럼, 장석주 시인의 시를 다양하게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이경진 기자]


책소개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칼럼니스트, 방송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독서와 인문학적 사유를 멈추지 않는 장석주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 지난 시집 『몽해항로』를 출간한 이후 1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시집에는, 55편의 신작시들이 실려 있다. ‘주역시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번 시집은 시인의 방대한 독서와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을 바탕으로 한 노자, 장자에 대한 주석 달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삶은 온전히 책읽기와 글쓰기에 바쳐져 있다. 삶을 관조하고 그것의 비의를 찾아내는 깊은 시선이 이로부터 나온다. 또 이는 삶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의 생체험을 수반하고 있다. 그리하여 체험의 기록이면서 명상의 기록인, 놀라운 깊이의 시집이 탄생했다. 주역의 속화된 가르침을 깨고, 주역의 안팎에서 세계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의지를, 그것도 순수한 실패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머리를 삭도로 밀어버리고 차갑게 반짝이는 빙설 속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았다 .
그는 시인이 아니라 시의 질풍노도인지도 모른다. 생이라는 거대한 추상 속을 오직 문자(文字)라는 홑겹의 옷을 걸치고 맞서고 있는 그의 구멍과 틈새에는 늘 위험하고 불길한“ 조짐”이 번쩍거릴 뿐이다.

그 눈부신 “조짐”을 생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시인, 그래서 그의 시는 철학 혹은 현실, 명상과 관조 무엇을 노래하건 그것이 곧 슬픔의 고고학이 되고, 빙설 속 벌거벗은“ 몸”이 된다.

그의 시집『오랫동안』의 숲 속을 거니는 동안 오도도! 떨려오는 전신을 두 팔로 깊이 감싸 안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정희(시인)

장석주는 윤동주, 기형도와 함께 영원한 청년시인이다.

그의 주역시편이 패배를 예찬하는 까닭,“ 그 많은 실패들이 다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패배’를 더는 모르는 불행을!”(「‘패배’라는 말」)

이것은 불행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패배의 최종적인 국면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너는 네 배후로 불굴의 패배를 부양하는구나 패배를 배우지 못한 것들이 거들먹거린다.”

「( 잎과 열매」) 이것은 패배하겠다는 의지야말로 진정한 자유의지임을 말한다.“

모든 실패는 어리고 순진하다.”(「서쪽」) 이것은 실패에만 순수한 최초의 자유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그것의 집적만이 운명을 만들어낸다. 점쟁이들은 이 운명이 시간을 복속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시간을 지배하는 운명은 가장 타락한 형태의 결정론이다.

주역의 속화된 가르침을 깨고, 주역의 안팎에서 세계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서 시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를, 그것도 순수한 실패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 권혁웅(시인)

충남 연무에서 출생하고, 서울에서 성장하다.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도서출판 「청하」의 발행인으로

일하면서 책만들기와 글쓰기에만 몰두하다.

주요 작품으로는 『햇빛사냥』(1979),

『완전주의자의 꿈』(1981),

『그리운 나라』(1984),

『어둠에 바친다』(1985),

『새들은 황혼속에 집을 짓는다』(1987),

『어떤 길에 관한 기억』(1989) 등이 있다

9 Comments

  1. 네잎클로버

    21/02/2012 at 11:42

    3월 21일이 기다려지네요.. ^^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발걸음합니다.

    리히터가 연주하는 피아노곡.. 함께 음미하며
    여전하신 참나무님을 느끼고 가요~ ^^   

  2. 참나무.

    21/02/2012 at 11:54

    아침에 간략하게 그림과 음악만 올렸는데
    마침 새 시집이 출간되었다기 예습 차원으로 시집 소개 겸 그냥 보탰습니다.

    새로운 일 하시느라 온 마음이 그 쪽에 가 있을텐데
    차분한 영화 리뷰 못 본지 오래네요 클로버 님~~^^    

  3. 佳人

    21/02/2012 at 14:47

    이 분의 시를 많이 읽어보진 못했는데
    지면에서 많이 뵙는 분이라 만남이 몹시 기대됩니다.
    그의 개성있는 삶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봄도 기다려지고
    봄의 향연, 3월 시낭독회도 설레임으로 기다려집니다.
    참나무님 덕분에 편하게 공부하네요..감사^^   

  4. 참나무.

    21/02/2012 at 20:55

    고백 하나 하리다

    P.S 부분 사실은 어제 가인님과 통화 후 결정한 일입니다…^^
    공부된다하시니 다행입니다- 중복되는 부분은 지웠습니다
    읽으신 것 같아서…

    전 글로만 뵌 시인, 대면하면 또 어떤 부분이 더 와닿게될까요
    정말 기다려진답니다. 저도…   

  5. 겨울비

    21/02/2012 at 23:53

    저 따로 공지 안해도 되겠어요^^
    이 시집입니다.
    이리 올리신 것도 모르고 까페에 답글로 문정희 시인의 추천사를…   

  6. 참나무.

    21/02/2012 at 23:56

    애 많아 쓰셨어요
    그 어려운 시인 섭외하시느라…!

       

  7. 佳人

    23/02/2012 at 14:48

    아주 잘 읽었습니다. 어제요..ㅎ
    사카 컴 앞에서 쓰거나 읽다가 한 번씩 고개 들면
    무구한 웃음을 보여주는 시인이 계시는데 곧 사진이 바뀌겠군요…^^
    새로움의 기대와 즐거움이예요.
       

  8. 佳人

    23/02/2012 at 14:48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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