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원’에서의 결혼식(1953). 머리에 꽃 베일 쓰고 한복 입은 가운데 여인이 신부 박완서다.
흰 한복에 베일 쓴 ‘새신부 박완서‘ <–출처
지난 토요일 5분 정도의 무성영화같은 낡은 필름이 영인문학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후 그 당시 시대상황으론 굉장히 드문 일인데 mbc가 복원을 했다네요.
제가 전철 택시 번갈아 가며 도착했을 땐 친구 한말숙작가가 ‘내 친구 박완서’ 라는 제목으로 막 강의가 끝나는시간이었지요 다행이 귀한 필름은 보게되었습니다 꽃을 뿌리는 화동을 보니 격세지감이. . . 예전에 저도 한 적 있다네요 전 기억도 없는데 사진이 한 장 있답니다
매즘 마지막엔 글자로 엔딩처리가 됐을 땐 장내에 웃음이 폭발했고, , , 뒤이어 권영민 교수의 추모 강연도 있었습니다
‘. . .박완서 선생을 잃음으로 대한민국 ‘모성문학’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 . 로 말문을 연 그는선생의 소설에는 남자 주인공이 없다 남자가주로 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문제를 직접 다룬 소설은 없지만 소소한 일상과 가족 이야기등 ‘작은 이야기’ 로 풀어냈을 뿐이다 ‘작은 이야기’가 선생의 문학 실체다 . . .
단 한 번도 후배들을 야단치지 않았다 역시 글에서’작은 이야기’로 풀어내신다 등등의 . . . 선생에 관한 글과 강연을 많이 해 온 그에게 사람들이 단 한 작품 추천할 소설은 미망
첫날이라 많은 작가들 모습과 따님 호원숙, 척 봐도젊은 시절 박완서 선생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동생들도 참석한 자리였지요
강의가 열린 1층은 모두 박완서 선생의 유품. 육필 원고. 冊과 청동 조각, 데드 마스크, 케리커쳐, 동료 후배들이 선물한 그림들까지 많이도 모였더군요
~6월30일 . 입장료 5,000원 02-379-3182 (영인문학관) 매주 토요일 2시엔 강의도 있습니다. 문정희,권영민, 강인숙. . .
http://young-in.kr/main/index.asp<– 강연 일정 참조
못가시는 분들을 위하여 두서없이. . .
육필 원고 내용의 바가지일까요?
윤후명
김점선
이영학
박항률
미망 연재 중 외아드님 저세상 보내시고
오랜 기간 절필하셨지요. . .
지하도 들리셔요 그냥 가는 분들 많이 봐서. . .
호미…보이시죠
김상옥 방, 김동리방
윤후명
김훈
최인호
박범신
↑ 영인문학관장 강인숙교수
오마주도 좋지만 이런 전시를 돌아가신 분은진정 원하셨을까
나이 들어도 일이 있는 건 얼마나 축복일까 저는 솔직히 따님을 저세상으로 보낸 부부의 모습도 살짝 궁금했거든요
개인적으론 무명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 싶었어요 그리고 결심 하나 더 굳힙니다 좀 더 많이 많이 버리자. 호기심 좀 줄이자 – 잘 될까 몰라. . .
오늘 선곡; 나는 만족하나이다
Bach Cantata BWV 82 Ich habe genug 중 1곡 아리아 Ich habe genug ( 나는 만족하나이다 ) …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まつ
07/05/2012 at 02:28
따님이 아니라 서울대의대에 다니던 외동아들이 저 세상으로 먼저 갔고,
그 일로 절필을 하다가 이해인 수녀님 도움으로 여차여차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서 책을 내고 활동도 하고 그러신 것으로 알아요.
밥먹고 자는 것 자체도 거부하고 싶었고,
살기가 싫었다는데
오랫동안 곡기를 끊고 숨만 쉬며 살다가
우연히 맡게된 밥냄새로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구요.
박완서 선생님은 아주 좋은, 훌륭한 작가지만
아주 엄격하고 까탈스러운 분이기도 했어요.
결벽증이 무척 심한 분이기도 했구요,
어떻든 그런 작가랑 같이 살았다는 것도 축복입니다.
건강하시길요.^^
참나무.
07/05/2012 at 03:57
‘이민아’ 얼마 전에 타계한 이어령, 강인숙 부부 따님을 뜻하였는데. . .
제 표현력이 부족했는지 まつ 님이 오독하셨는지 둘 중 하나같습니다…^^
박완서 선생님 아드님 사진, 전시되어 있어서 찍긴 했어도
부러 안올렸는데요- 이 참에 올려볼까합니다.
그 큰 사건 이후 집을 떠나 부산 수녀원에 기거하실 때
어떤 수녀님이 환자 변기통을 들고서도 정말 행복해 하시는 모습 보신 후
심경의 변화로 서울 당신 댁으로 올라오셨다는 에피소드도 있지요
친절한 답글 고맙습니다아…^^*
참나무.
07/05/2012 at 09:54
객관적으로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니 순전히 제 잘못이라
다시 한 번 글쓰기의 어려움 실감합니다
제 블러그 자주 오시는 분 위주로 풀어나가더 보니 그리된 것같습니다
저는 이민아목사 슬픈 소식 듣고 서울대병원 영안실 대신 영인문학관엘 갔었거든요…;;
행사 준비로 분망중이신 강인숙 관장님 뵙고
슬퍼하실 시간도 없어셨겠다 싶어 올린 부분이랍니다
まつ
08/05/2012 at 00:02
다시 읽으니 그렇네요.
문맥과 글 옆의 이미지로는
이 전시를 연 이어령선생님 부부에게 묻고싶다는 느낌이 없거든요.
아니면 주어를 넣으셔야겠지요.^^
삭제하려다가 저두 덧붙이고 갑니다.
그럼…
참나무.
08/05/2012 at 00:12
네에 감사합니다 맘이 참 따스하신 분이십니다
즐거운 5월 되시길바랍니다…(_ _)*
summer moon
09/05/2012 at 01:13
박완서님도 그렇고
강인숙 교수님도 그렇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으셨으니…
나이가 꽤 들었지만 여전히 ‘막내’인 아들의 장례식이 있던 날 보았던
제 조부님의 얼굴이 다시 떠올라서 가슴이 아파오네요.ㅠ
참나무.
09/05/2012 at 05:28
음…그런 아픈 사연이…ㅠ.ㅜ
요담에 만나면 우리 그런 애기도 진하게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