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에게 .

위기가 어색하면 삼십분도 참지 못하고

지루한 인간과 차를 마시면 하루가 불편하고

맛없는 식사를 하면 사흘쯤 기분 나쁘고

모임에 나가면 불안해

추워도 숄을 어깨에 걸치지 못하고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면 일주일이 불행하고

싫은 사람과 술 마시면 일주일이 지나도 불쾌하고

좋아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다않는,

 

그 여자 – 83p.

 

삼국시대, 백제라던가 통일신라였던가
노동에 지친 어느 장인의 실수로

기왓장에 찍힌 손자국.
두툼한 살결이 선명해

살아 숨쉬던 숨결이 느껴져, 선뜻 만지지 못했다


천년을 건너뛰어 내 앞에 서 있는
이름없는 회색의 파편이
박물관에 보존된 보물보다 신비로워
금관을 장식하는 비취보다 또렷하게
내게 말을 건다

누구였을까?
얼마나 많은 기와를 구웠을까
富와 권력에 봉사하여
올려다보던 古度의 가을하늘.
그가 탐했지만 갖지 못했던 여자들.
그의 손끝에 닿았을 입술이며 가슴들이 환생해.
웃고 떠들며 情을 나누다
수천의 기와를 이고 운이 다하여, 허리가 꺾였을
목숨을 생각하며

오백 년이 지나 발굴될 文字의
指文을 찍는다 피와 땀이 배인
進化의 흔적을.

 

발굴현장 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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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여행가방만 봐도
떠나고 싶어

세계지도를 펼치면
거기쯤에 있을 것 같아
내가 떠나온 고향이

흥분의 지퍼를 밀고 당기고
가방 속에 아침과 저녁이 들어왔다, 나갔다
자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다

그날이 다가오면
이미 진이 빠져

터미널에 내려
무서운 자유의 광풍이 불면
전 생애를 끌고 어그적 어그적,
하룻밤 잘 곳을 찾아

다음날 아침에는 지도를 보며
새로운 도시를 정복할
구두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길을 잃어본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여행 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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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녀는 화창한 봄날 강물에 몸을 던졌고

누구는 유서를 남기고 4층에서 떨어졌고

누구는 암수술을 받은 뒤 계단에서 쓰러졌고

누구는 암수술을 받고 회복중이고

누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모르고

누구는 뒤늦게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일하고

누구는 사주팔자를 연구하는 도사가 되었고

그리고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화산이 타고 남은

재에 묻힌, 그녀는 날마다 자살을 꿈꾼다

그녀들과 학교를 다닌 나는

앞장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팔짱끼지도 않은 나는

종이에 기억을 오려붙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 그들과 나의 길이 갈렸는지, 이해하려고

어떤 동문회 – 1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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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를 읽고* 64p.

山中에 은거하던 그들에겐
돌도 벼슬도 여자도 없었지만
아내와 자식이 친구가 그들을 잊더라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그들의 벗이어서
두터운 구름이 은자(隱者)의 고독을 가려주었고
속 깊은 계곡이 백년 시름을 달래주었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는 우정으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시중들 하인없이 움막에 살아도
손님이 오면 다람쥐가 뛰어 알려주고
淸貧은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빛났다.
단풍이 떠다니는 물을 마시고,
흔한 나물과 버섯에 배가 불러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풍조를 원망해
목에 가시가 돋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태산을 돌려세워
구구한 세상사를 물리쳤으니
이백과 김시습이 은하수를 날아다니고
호수에 비친 달에 고운 눈썹이 떠다니던 시절에는
사방천지가 님과 통해
연못에 꽃을 띄워 그리운 이의 안부를 묻고
울적하면 산새가 와서 울어주었다.
여인들은 빨리 늙었지만
시드는 홍안이 서러워
술잔에 눈물을 떨구는 한량들이 더러있었다고

낙원에서 쫒겨난 현대의 시인은
괜히 시내의 책방을 오가며
더위를 피할 그늘이 어디 남아있나? 두리번거린다.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노래를 입에 물고서

*김용택 <김용택의 한시산책>(화니북스)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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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첩에서 지워진 이름들. 지워지지 않았으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

살아 있지만 죽은 이들보다 멀어진,

싸늘해지기 조금 전의 미지근한 애정.

두 번 세 번 고친 형용사들. 정중함이 지나쳐 또는 모자라

전문적인 양념을 뿌린 의례적인 인사들.

우정이 끝났는데도 찍지 못한 마침표.

상대를 잘못 고른 문장들.

웃음거리가 되었을 지나친 솔직함.

그녀의 전화기를 뜨겁게 달구고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배달되었을 스캔들.

항의하는 편지들,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재판 냄새가 나는 문서들,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그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밤에 쓰고 아침에 검열한

기다리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잔뜩 계획만 세우고 떠나지 못한 여행들,

어머니 앞으로 보낸 편지는 없다!

한 번뿐이었던 완벽한 하루는 저장되지 않았고

뚜껑이 열리면 걷잡을 수 없어

두 번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보낸 편지함 84p.

출처; 최영미 시집 <도착하지 않은 > 문학동네 ( 2009 )

P.S

오늘 포스팅 제목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도착하지않은 삶> 목차 열기 전,

먼저 만나는 한 줄이지요

시를 많이 올려죄송합니다만,이 시간

아픈이들을위하여 한 구절만더. . .

. . . . . .

먼길 떠나는 나그네가

살아서 떠돌

지상의 모든 길이

영원히 푸른 하늘과 닿게하소서.

동 시집 ‘내일을 위한 기도’ 중

MANTOVANI-La Paloma

12 Comments

  1. 푸른

    06/06/2012 at 03:59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니…
    오늘은 바람슬슬 불어오는 테라스에 나앉고싶습니다.
    롱글라스에 엷은 갈색 아이스티를…///   

  2. 산성

    06/06/2012 at 07:23

    애 쓰셨어요.오타도 안보입니다만?
    눈이 팽글팽글…하셔서 웃었습니다.
    저도 지금 그렇습니다^^

    바로 위 푸른 님 처럼 시원한 아이스 티 한잔이
    생각나는 오훕니다.
    흐르는 음악이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듯도 하고 말이지요…

       

  3. Elliot

    06/06/2012 at 14:25

    저한테 하시는 말씀인 줄 알고…. 쬐금 실망 ^^

       

  4. summer moon

    06/06/2012 at 22:09

    올려 주시는 시들을 하나 둘 읽어오면서
    그녀에 대한 이해를
    처음 부터 다시 해보는 기분입니다.

    그녀의 다른 책들을 읽고 났을 때의
    뒤엉키던 감정들도 다시 돌아보고 싶구요.

    유럽에 사는 제 지인이 생각나요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남에게 먼저 못된짓 하는 적도 없고…
    그런데도
    사는게 결코 ‘쉽지’않은 사람,
    자기가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어딘가가 불편하게 하는….   

  5. 참나무.

    07/06/2012 at 00:27

    금성일식 본 김에 저도 베란다에 오래 머물렀어요
    유람선 ‘씨티’도 지나가고 수상택시도 지나가길래
    아 저 수상 택시 올해는 꼭 타봐야할낀데 이러면서요…^^   

  6. 참나무.

    07/06/2012 at 00:30

    직타가 제일 무서워요
    다행이 제목 검색해서 나오면 드르륵 올렸다가
    제 시집 확인하며 행, 띄워쓰기 고치는 일도 만만찮아서요

    음악 찾기 싫어 재방송이었는데…
    좀 있다 건너가 보겠습니다
       

  7. 참나무.

    07/06/2012 at 00:38

    아…그랬다면 올린 보람이 있네요

    그리 좋아하는 시인도 아닌데
    괜히 변명하고픈 마음에 이런 시들 골라봤답니다

    "욕정을 사랑으로 은폐함이 없이 성에 직핍한 그녀의 대담성에 독자들,
    특히 남성들은 혼비백산하였다"

    최영미 시집 <꿈의 패달을 밟고> 해설을 보면 이런 글도 있답니다
    참석 못하는 분들 위하여 짬나는대로 올려볼게요…^^
       

  8. 참나무.

    07/06/2012 at 00:42

    충분히 아름다운 분 맞는데 왜 실망 하셨을까요

    -‘행복은 어디에’ 독자 올림.    

  9. 도토리

    07/06/2012 at 03:15

    사진으로 보이는 눈빛의 강열함
    詩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결코 여리지 않을 감성.
    기대할만 합니다..!!^^*   

  10. 참나무.

    07/06/2012 at 05:27

    우리 때엔 여류 시인, 작가들은 대부분 미인이다. 조xx 씨만 빼고~
    그런 ‘설’이 떠돌았는데 요즘 시인 작가들도 대부분 미인인 것같더라구요
    그 중 최영미씨도 확실히… !
    어디 기대해봅세다…^^   

  11. 푸나무

    07/06/2012 at 09:22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어디서 설핏 들었는데
    정말인지….

    후기가 넘넘 궁금합니다.    

  12. 참나무.

    07/06/2012 at 11:34

    순이님, shlee님, 일산팀 만들어 같이오시라고 푸나무님께 총대를 드릴까요…^^

    그렇게나 궁금하시면 오셔서
    멋진 후기도 좀 올려주시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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