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다가온 이인성화백 外

자화상(Self-Portrait), 1950, 나무에 유채, 26.5 X 21.8cm

아소(我笑) 이인성(李仁星: 1912-1950)은 한국 근대화단에서

약관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혜성처럼 나타난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지보(至寶)’, ‘양화계의 거벽(巨擘)’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1950년 비운의 총기 오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점차 대중으로부터 잊혀져 가는 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재능을 일찌김치 알아본 고미숳 연구가 일본인 덕분에

일본 크레용 회사에 취직도 하고 일본 유학도하게 되어

미술사에 남을 걸작들을 많이 남기게 된다

보통학교만나와 그림을 배우던 스승과 나란이 선전에 입선된나이가17세

그이후 선전이 사라질 때까지 특선 입선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실력인데도

당시 같이 활동하던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편이었다.

지금 덕수궁 미술관에 가면이인성을 아끼는 분들이

그간 보관해온 자료들(그림, 사진. 엽서. 신문 기사 등등)을볼 수있다.

그의 많은 자화상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은 흐릿한 모습이다.

두 번이나 상처하고아이까지잃게 된 그의 다른 초상화까지

웃음이 보이는 작품은 한 작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애향 (1943) 유화/ 45.5 x 37.5cm

죽음 엄마를 많이 닮은 작가의 딸이 그림 속에도 자주 나온다

포스팅을 하면서

‘ . . . 자화상을 참 많이도 그린 이인성 화백’

. . . 칸에 ‘고흐나 램브란트처럼’ 이란 형용사가 먼저 나왔지만

지워버린다.

005.JPG

여름 실내에서, 1934, 캔버스위에 수채, 71 x 89.5cm

명암이 짙은 오른쪽에서 밝은 왼쪽으로 흐르면서

실내와 실외를 대각선으로 나누어 담고 있는 이 그림도 유심히 살펴봤다

서양 풍의 실내에서 단 한 켤레 ‘고무신’을 그려넣는 작가의 마음이 읽혀져서

풍경(Landscape) / 종이에 수채 / 56.5×77.5cm / 1931 ㅡ19세 초기작

자세히 살펴본 그의 그림들은 인상파 서양화가 그림들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았고 그냥 모방이 아닌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향토적인 색과 필법이어서 새롭게 다가와서

나는 서양화가들 그림에 지나치게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가을 어느날, 1934, 캔버스에 유채, 96 x 161.4cm

전시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한 장을 묘하게 접은 리플랫에 ‘ 이인성 . . . . . .’

큰 글씨로 쓰여있는 이유도 알 것같았다.

보색인 빨강과 초록을 많이 사용하여 자칫 혼란스럽게 보일 화면들도

사진 편집하듯 적당히 잘라 피라밋 구도를잘 활용하여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해당화’나 ‘어느 가을날’ 들 몇 몇 풍경화들은

정물화처럼 재 구성하여 그린 것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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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해당화>(1944) 228.5 x1 46cm / 개인소장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서정적인 그림해당화는

2m도 넘는 큰 대작인데 해당화 주변의 인물들은

한용운 님의 침묵 ‘님’ 처럼 조선의 독립을

암묵적으로 기다린다는 뜻도 담고 있단다.

해당화 한용운

당신은 해당화가 피기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랬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 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는 꽃을 주워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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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여인 – 종이에 수묵담채

농담 조절을 한 수묵화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아리랑고개 / 종이에 수채 / 57.5×77.8cm / 1934

세잔느생각나는 . . .

월미도 풍경 / 나무에 유채 / 24×33.3cm / 1933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중반, 종이에 수채, 35.5 x 45cm

이번 전시회 기획하면서 ‘월미도 풍경’외 3점이나발굴한 것도 큰 수확이고

당시로는 매우 모던하면서 조형적인대구의 계산동 성당 그림 속 감나무는

아직도 이인성 나무라고 불리워진다고 지나다니다도슨트 설명을 듣게된다.

향토를 찾어서

– 창동의 하로 – 이인성

저 산.
저 하늘.
저 구름.
참으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양자(樣姿).
산빛은 거뭇한 ‘블루시안’과 모래빛 ‘네에프스에로’와 연분홍류가 무게 있는 색채를 보인다.
게다가 하늘빛은 새맑은 투명한 ‘코발트’, 여기에 한 구름 조각이 변화(變化) 불(不)히 움직인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저녁 무렵의 풍부한 회색조의 색채다.
선몽(選夢)일사. 아, 아름다운 빛은 장시간 바라볼 수 없는 변화 많은 색채다.

한 장 그림을 그리는데도 순간적 감수성을 머리에 지그시 넣지 않으면 얼토당토 않은 조자調子의
그림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우나 어렵다.

오늘도 스케치 상자를 둘러메고 창동(倉洞)이란 마을에 왔다. 땀은 등허리를 적셔 흐른다.
밤나무 그늘에 쉬면서 원경(遠景)을 바라본다. 새가 운다. 들국화도 피었다.
이삭 줍는 가을도 코앞에 다가왔다. 미술의 시즌도. 어쩐지 마음이 다망(多忙)해진다.

– 1934.8.24. 『동아일보』,

참조 : http://www.leein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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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시도 한 구절씩 적혀있으니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 되실듯.

덕수궁 3,4 미술관 계단 위에는 이인성 탄생 100주기전

한국 근대미술 꿈과 시가 나란히 걸려있다

또 하나의 걸작.

그림자에도 빛과 색을 담은 한국 인상파의 대가 오지호 화백- 남향집

그외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 김종태. 구본웅. 류경채. 박수근.

김환기. 화백 작품들을 지루하지않게 감상할 수 있다.

이인성 기념전은 8.26일까지

꿈과 시 전은 12월 2일까지

미술관 입장은 무료. 덕수궁 입장료 1,000원)

P.S

<푸른 머리의 여인> 1940년대, 캔버스에 유채, 60.4×45.4cm, 호암미술관

이상 초상화로 유명한 구본웅화백 외손녀가 강수진 발레리나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전시되진 않았지만 이상의 연인 금홍이란 설도 있어서. .

.

<여인> 1935, 캔버스에 유채, 50×38cm, 국립현대미술관

야수파에 속하는 구본웅 화백의 다른 여인상 외 몇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 http://www.mu-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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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에서 읽은 한현우 기자의 기사 읽고

이병우 기타연주의 애국가 찾으려 제대로 포스팅도 못하고 나갔는데

결국 못찾고 대신 . . .

13 Comments

  1. 도토리

    03/07/2012 at 03:47

    보고 싶은 전시회로 낙점입니다.
    더구나 덕수궁이니……^^*   

  2. 참나무.

    03/07/2012 at 04:55

    지금 전격 수정 첨가 중입니다…^^

    아침엔 이병우 기타 연주의 애국가 찾느라 시간 다 보내고…^^   

  3. 산성

    03/07/2012 at 08:26

    ‘여름 실내에서’ 란 그림 참 좋으네요.누구네 집인지 부잣집?^^
    레이스 테이블보랑 쿠션 속 그림도 찬찬히…

    대구 계산성당 참 아름답지요.
    지금은 주변에 매일신문사랑 키 큰 다른 건물들이 배경을 버리고(?) 있지만…
    감나무 사진,빌려드릴까 싶어 찾아 봤는데 흐리고 시원찮네요.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심상찮습니다.
    그래도 비로 내리시기를…!

       

  4. 참나무.

    03/07/2012 at 10:05

    여름 실내를 보면 마티스가 떠오르고
    아리랑 고개 과감한 생략들 세잔느의 미니멀리즘도 생각났지요

    첫 번째 부인을 일본에서 만나 결혼했는데
    장인어르신이 의사여서 화실도 차리고 ‘아르스’ 다방도 운영하고…
    반짝 잘 살다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지요

    이인성 감나무 아시면 더한층 흥미롭겠지요
    산성님 카메라엔 에또~~ 무엇 무엇이 더 숨어있을까요…

    링크해 둔 ‘이인성 사이트’에 수많은 사진들과 최인호 작가가
    총격 당할 당시를 그린 ‘천재의 요절’ 도 만날 수 있답니다
    화가는 글도 잘 쓰셨는지 신문에 연재된 글도 만날 수 있고요
       

  5. 참나무.

    03/07/2012 at 11:06

    천재의 요절
    "누가 天才를 쏘았는가…"
    해방직후
    좌익이다 우익이다. 싸움이 벌어져 드디어 정판사건이 터진 서울의 밤 일곱 시께.
    일찌감치 통행금지가 내려진 골목길을 술취한 취객 하나가 걷고 있었다.
    주위의 정적쯤은 아랑곳없이 기분 좋게 취한 그 사내는 비틀거리면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누구냐. 정지.』
    돌연 거리를 차단하고 있던 치안대원이 지나가던 사내의 발걸음을 막아 세운다.
    사내는 놀란 듯 우뚝 선다.
    『누구냐.』
    『지나가던 취객이요.』
    『뭐라구. 지금이 무슨 시간인데 장난하려 들어. 누구야.』
    『취객이요. 술취한 취객이요.』
    사내는 껄껄 웃어제낀다.
    『웃지마라. 누구야.』
    『나말이요.』
    손전지 불 밑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생각 보다는 곱게 생겼다.
    악의없는 참하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치안대원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지. 정지. 누구야.』
    『나말요. 나. 천하의 나를 모르오.』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나를 모르오. 난 이인성(李仁星)이요. 천하의 천재 이인성이요.』
    『뭐라구.』
    치안대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내의 기세가 너무나 등등하여 혹시 고위층의 인물인가 행여 겁도 나서
    일단은 치밀던 화를 자제하고 집으로 보내 준다.
    그러나 그 치안대원은 좀체로 치밀던 화가 풀리지 아니한다. 그래서 경비소로 돌아온다.
    『누구 저기 위에 사는 이인성이라는 사람알어.』
    『알지.』
    앉아서 사무근무를 하던 사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뭐하긴 뭐해. 환쟁이지.』
    『환쟁이. 아니 그 자식이 환쟁이야.』
    사내는 뛰쳐 나간다. 그리하여 씩씩거리며 좀전의 사내가 들어간 집 대문을 발길로 걷어찬다.
    『누, 누구요.』
    술취해 자리에 누워있던 이인성은 옷도 채 입기전에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사내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욕설이 튀어나온다.
    『더러운 쌕끼.』
    가슴에 품었던 치안대원의 총이 잠결에 튀쳐나온 이인성의 이마를 향한다.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타앙.』
    한발의 총성이 정막을 찢는다. 이인성은 쓰러진다.
    이상은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죽는 순간을 나 나름대로 소설체로 표현해 본 것이다.(계속)

       

  6. 참나무.

    03/07/2012 at 11:14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기쁨에 술취해 돌아오던 이인성은 같은 동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었다. 그 손끝이, 그 손끝에서 나온 그림이 일본인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이인성의 마술적 재능이 총한방에 죽고 말았다. 자신을 서슴지않고 천재라고 표현하던 이인성이 통행금지에 걸려 죽었다.
    환쟁이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이십년이 흘러간 지금 그의 그림은 남아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천재의 재능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여러가지로 따지지 말라.
    예술가가 무슨 특권이 있다고 통행금지 이후에 다닐 수 있담 하고 따지지 말라.
    자기가 뭐라고,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통행금지 이후 다닌담 하고 따지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천재화가를 죽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메고 가는 예수를 찬미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향해 돌을 던졌던 바리새인을 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또한 그시대에 살아있었다면 그시대의 이단자인 예수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을는지 모른다.
    이조백자는 지금에 와서는 위대한 예술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에 그들을 백정 취급하였다.
    그들을 따로 살게 했고, 그들끼리 혼인케 하였으며, 열병걸린 전염병환자 취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빚었다. 그들의 한을 도자기로 빚었다. 수백년 지나서 그 이조자기는 그들을 멸시하였던 우리들의 유일한 자랑스런 유산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학의 고전도 마찬가지다. 춘향전도, 흥부전도, 심청전도 멸시받았던 하위계급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구화문학이다. 말하자면 하위문화들의 소산이다. 그것을 우리는 배운다. 배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왜 그들을 죽은 다음에 추모하는가.
    왜 이인성이 죽은 지금에 그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가.
    왜 그들을 우리곁에 살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가.
    살아서 명동에서, 무교동에서 술취한 이인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
    왜 살아있는 천재 이인성이 우리 곁에서 시대의 예언을 내려주는 그 신의계시를 듣지 못하게 하는가.
    나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아소트리아스의 경우처럼 – 그의 집 1㎞ 근처에는 다음과 같은 푯말이 붙어있다고 한다.
    여기엔 우리의 위대한 작가 아소트리아스가 글을 쓰고 있는 구역입니다. 경적을 삼가해 주십시오 라고. –
    거국적인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죽일 필요야 없지 않는가.
    예술가는, 천재의 예술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에게서 태어날 뿐이다.
    왜 신에게서 태어난 그를 죽여야만 하는가.
    나는 총을 쏘지 않았다라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다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하층계급을 멸시했던 양반계급이 아니야 라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바리새인이 아니니까라고 자위하지 마라.
    먼훗날 그대들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예술가와 더불어 살지 못하고, 예술가를 추모만 했었던 바보와 같은 할아버지들이었다고.
    (중략)

    – 글 최인호 – 한국일보 1974년 6월 5일 <젊은이 세계   

  7. 쥴리아스

    03/07/2012 at 12:04

    참나무님의 긴 댓글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이 작가를 왜 죽였죠 ???    

  8. 김진아

    03/07/2012 at 14:40

    신문기사 읽곤 저두 이병우의 기타 연주 ‘애국가’를 열심히 찾아 보았는데..못 찾았어요.
    ..궁금한거예요. 무척..듣고 싶어서 큰일이네요.ㅎ

    이인성 화백의 ‘애향’이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 그림입니다.
    미소가 없는 아이의 모습에서..마음이 좀 그랬어요.

    덕수궁..오늘 같은 약간 흐린 날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늘 알찬 소식 보여주시고,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9. 참나무.

    03/07/2012 at 22:33

    바쁜분들을 위하여 천하의 백수가 일부러 ‘드르륵’ 했는데…
    본문과 긴 답글 둘이면 충분하시지않나요 쥴리어스 님…^^   

  10. 참나무.

    03/07/2012 at 22:41

    이병우-애국가…오늘 아침에도 찾아봤는데
    딱 한 군데 (daum 바흐 무반주가 배경음악으로 깔린))에서…
    근데 제 컴으로 들리진 않았어요
    – 답글 하나 달렸는데 그 분은 들은 모양이던데…?

    애향이가 …그러셨나요…
    죽은 두 부인의 초상화도 있고
    어린 딸 애향이 더 어릴 때 모습도 그림속에 나온답니다   

  11. 참나무.

    03/07/2012 at 22:44

    제비다방 마담 ‘금홍’을 ‘채홍’이라 하다니…방금 수정했습니다…;;

    (채홍사 출신도 아닌데…진짜 나원참입니다…ㅠ.ㅜ)
       

  12. summer moon

    04/07/2012 at 02:21

    정말 가고 싶은 전시에요!!!!!!ㅠㅠ

    많이 알려진 큰 작품들도 좋지만
    작은 작품들을 천천히 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주는 기쁨도 너무나 좋은데…

    정성드려서 올려주신 그림들, 글들
    얼마나 감사한지 !!!!!!!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전시도록과 엽서들을 다시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13. 참나무.

    05/07/2012 at 00:57

    제가 링크해둔 ‘이인성홈피’ 가보시면
    리움에서 열렸던 탄생50주년…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어요
    그 외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드로잉과 많은 엽서들…
    화백의 글 까지…자료들을 지금도 모우고 있다네요.

    서울이면 같이 손잡고 다닐텐데
    그럴 날 꼭 오리라 저는 믿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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