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2011)

흘러가는 뭉게구름,
그리고 모든 나무에,
밤이면 온 하늘에,
낮이면 눈에 띄는 온갖 사물 속에,
나는 온통 캐시의 모습으로 둘러싸여 있단 말이야!
흔해빠진 남자와 여자의 얼굴들,
심지어 내 자신의 모습마저
그 여자의 얼굴을 닮아 나를 비웃거든.
온 세상이 캐시가 전에 살아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 여자를 잃었다는 무서운 기억의 진열장이란 말이야!

난 너무 행복하면서도 충분히 행복하지는 못해.
내 영혼의 행복은 내 육체를 죽이고 있지만 영혼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거든

– 히스클리프가 넬리에게

폭풍의 언덕 ( Wuthering Heights 2011 )

이보다 더 지독한 사랑이 있을까.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 순간 –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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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40분. 대한극장 폭풍의 언덕(2011)보고온 이후

생각나는 것들이 많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립미술관 ‘천경자의 방’ 들어서면

오른편엔 폭풍의 언덕을 배경으로 화백의 사진이 걸려있다.

기증하신 작품들과수필집도 진열되어 있다

다른 전시회 갔을 때도 항상 들리는 방이다.

왼쪽 벽엔 박경리 선생의 시 ‘천경자’도 걸려있어서. . .

017[1].jpg

오만과 편견을 보고 온 이후엔

내내 폭풍의 언덕을 생각하며 끄적거렸던 것들,

어쩌면 그 언덕 어디 쯤

스노우 드롭과 크로커스도 피어있지 않을까. . .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이 순간만 중요하다는 히스크리프

그를 상상하며 내맘대로올려뒀던

금아선생 싯귀까지 떠올라 . . .

1인칭 소설같은 문학적인 영화같다.

과감하게 생략한 파격(?)도 심플해서 좋았고

꼭 필요한 장면들만볼트체로 강조하듯

감각적으로뽑아낸 세련된연출이라 하면 맞는 얘길까

침울한 요크셔 지방 특유의 바람 안개, 나무,

에밀리 브론테 소설 분위기와 인물들 내면까지

세심하게 포착한 이 감독이 많이 궁금하다

둘이서 바람을 맞으며말타는 이 장면. . .

캐시의 머리카락이 히스클리프의 얼굴에 와 닿자

말 잔등을 쓰다듬는 히스크리프의손을 클로즈 업 하거나

채칙으로 맞은 히스크리프 등의 상처를 캐시가

입으로 빠는 장면도상당히 파격적인 연출이란 생각이다

베르메르 ‘진주귀고리 소녀’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오랫동안 침대 위에 그림을 걸어두고 상상하다

소설을 써서 대 힛트를 친 미국작가 슈발리에처럼

이 감독은 히스크리프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독특하면서 원작의 분위기도살린 편곡처럼

처절함의 정점에서 허리를 뚝 끊는 과감한 생략으로

더 지독한 사랑을표현하고 싶었을까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좀 찾아봐야겠다.

10 Comments

  1. shlee

    16/07/2012 at 11:26

    이 영화 보고 싶네요.
    저도~
    중학교때 읽으며 지루했던 경험이 …
    그 묘사가 너무 깨알같아서~
    ^^
       

  2. 참나무.

    16/07/2012 at 12:26

    이 감독이 영국 출신 여자네요. 영화공부도 제대로 했고
    어쩐지 세심하다 싶었는데. . .

    공부 좀 하면서 다른 이미지 더 보태는 중입니다..^^
       

  3. 술래

    16/07/2012 at 14:53

    이 영화도 보고 싶고
    서울 시립 미술관에 있다는 천경자화백의 방에는 더 더욱 가고 싶고…
    참나무님때문에 내 머리가 터질거 가토요~~
    진도를 도저히 따라갈수가 없어서…ㅎㅎ

    서울 안가도 볼수 있는 영화부터 우선 본 다음에…

       

  4. summer moon

    16/07/2012 at 22:12

    어떤 문학작품들은 끈임없이 ‘새로운’ 영화’ ‘TV드라마’ ‘연극’등이 만들어지면서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감동을 건네주는것 같아요;
    오만과 편견,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지금까지 보아온 ‘폭풍의 언덕’ 영화만 해도 꽤 많은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감동이 줄지 않는거 같아요.

    사방에 ‘바람’이 이는 것 같아요.^^

    서울에 갈 때 마다 시립미술관의 ‘ 천경자 방’ 엔 몇번씩 꼭 찾아갑니다.   

  5. 산성

    16/07/2012 at 23:13

    ㅎㅎ 술래님 말씀에 완전 공감,동감입니다.
    저도 더러 머리가 터질 것만 같거든요.
    영화관에 안갈꺼면서 가보겠다는 말씀 드릴 수도 없고^^

    그런데 박범신씨 때문에 은교 영화 봤습니다.
    친지 결혼식 주례로 오신다길래..

    첫번째 사진에 압도 당해…
    어제 이렇게만 쓰곤,그냥 집에 왔습니다.
    참 좋습니다. 저 사진.

    천경자씨의 그림 ‘폭풍의 언덕’
    어쩐지 헤르만 헤세의 보드라운 그림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6. 참나무.

    17/07/2012 at 04:10

    포스팅 하나 비공개인 줄 알았는데
    수영하고 와보니 터억 허니 공개가 되어있더라구요- 쓰고싶은 단락은 몽땅빠진채…
    제 머리가 터지는 줄알았어요
    아구 몇 사람이나 보셨을까… 진짜로 헐~~입니다   

  7. 참나무.

    17/07/2012 at 04:14

    맞아요
    이 여자감독은 화면에다 바람을 잔뜩 담았더랍니다.

    그래도 영화는 종합예술이라소리를 담을 수 있어서 유리하지만
    ‘음악의 시각화’ 이런 작품은 얼마나 어려울까…했답니다

    꼭 보기를!
    그리고 상당히 모던한 작품이기도 했어요   

  8. 참나무.

    17/07/2012 at 04:19

    박범신 작가의 주례사도 꼭 올려주셔요

    천경자 화백의 폭풍의 언덕도 바람을 잘 담았지요
    헷세 수채화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거 보셨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산성 님 술래 님 머리 더 터지게하려다 제가 벌을 받았나봅니다
    오늘 지대로 우사를 당해서 대락난감이랍니다
       

  9. summer moon

    17/07/2012 at 22:25

    지난 밤에 영화 봤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까지 만들어진 작품들과는 아주 다르게 만들어졌더군요
    카메라 워크도 다르고, 작품 생략도 과감하고…
    시네파토그래피가 아주 멋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수, 전통(^^) 파에 더 가까워서 그런지
    많은것들이 너무 지나치게 생략이 많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뭐 그리 심각한(중요한) 건 아니지만
    책에서 히스클리프는 ‘피부색이 짙고 마른 집시’라고 묘사되어있는데
    왜 흑인으로 캐스팅을 했나? 하고 아이같은 의문도 들었고

    끝이 Cathy 와 Hareton의 행복(?)한 맺음으로 끝나는게 좋은데
    그렇지 않아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눈과 가슴이 온통 어둠.폭풍,비로 가득찬 것만 같았어요.

       

  10. 참나무.

    17/07/2012 at 22:50

    맞아요 생략이 지나치다고 악평을 하는 비평가들도 있다네요

    또 어린 시절을 많이 부각한 점도 여늬 영화나 뮤지컬 연극과 많이 다르지요

    저도 캐스팅엔 아주 불만이 많았답니다
    흑인 배우가 나올 때마다 로렌스 올리비에 모습을 대입했다니까요…ㅎㅎ

    그래요…저도 요즘은 해피 엔딩이 좋답니다
    요담 영화는 ‘…메리골드 호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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