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시인을 소재로 한 영화④
결혼에 관한 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하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만, 또 다른 결혼을 다룬 영화로 여성 감독 크리스틴 제프스가 만든 <실비아>를 한번 보기로 하자. 평범한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네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미국의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와 영국의 위대한 시인 테드 휴즈를 다루고 있다. 그 두 시인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시와 사랑, 그리고 부부로서의 삶(특히 여성의 입장에서)이 어둡고 달콤하고 진지한 이미지로 펼쳐지는 영화이다. 균형 잡힌 탄탄한 각본과 섬세하고 절제된 표현들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특히 영화 전편에서 분수대의 폭포수처럼 시가 흘러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보았던 시인을 다룬 영화 중에서 아마 가장 많은 시가 암송되는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은 비스듬히 가로로 누운 실비아(기네스 펠트로)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죽는 것은, 만사가 그렇듯, 하나의 예술”이라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 독백은 「라자로 부인」이라는 실비아 시의 일부분으로 시인의 죽음 충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이다. 이 섬세하고 고집스런 감성의 시인은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이후, 편모이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한 교육을 하길 원했고 언제나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밑에서 자신의 재능이 완전하게 발휘되기를 바라는 강박을 갖고 살아왔다. 그런 강박이 죽음과 내기를 거는 듯한 주기적인 자살을 시도하게 했다. 그 자살 감행에서 살아남았을 때 비로소 시인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래 시는 「라자로 부인」의 일부이다. 죽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지요, 만사가 그렇듯. 난 그걸 특히 잘 해내요.
[……] 아마 내 천직이라 해도 좋을 거예요.
독방에서 그걸 하기란 아주 쉽죠. 그걸 하고 꼼짝않고 있기란 아주 쉬워요. 그건 한낮에
똑같은 장소, 똑같은 얼굴, 똑같이 야만스러운 “와 기적이다”라는 들뜬 고함으로
극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예요.
실비아 플라스 시선집(윤준 ․ 이현숙 역),『거상 The Colossus』중에서 실비아 플라스는 로버트 로웰, 알렌 긴즈버거, 앤 섹스턴 등 1950년대 미국 고백시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고백시는 실존적인 주관성과 일상적 자아의 탐색을 드러내는 시적 경향으로 개인적인 폭로를 통해 시적 충격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적 고백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자서전적인 경험을 문명 비판이나 생명, 죽음 등 보편적인 관점에 의해 초연하게 또는 해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하고 깊이 있는 심리적 진실을 담아낸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세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을 드러내는 이중성과 정신분열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어떤 특이한 공포심, 조용한 히스테리의 핵심 및 강력한 창조 정신이 야기하는 분명한 절망감에서 비롯되는 긍정적인 감정의 승리감에 찬 돌진”(M. 로젠탈[윤호병 역], 「실비아 플라스의 시세계」에서 인용)에서 태어나는 시로,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 시를 길어 올림으로써 인간의 비밀스러운 심층의 단면을 파헤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실비아 시의 토대가 되는 이러한 정신적인 풍경과 아버지에 대한 상흔을 영화는 스치듯이 가볍게, 그러나 압축된 이미지로 풀어 놓는다. 아마 시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관객들은 쉽게 그 핵심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에서 테드 휴즈(다니엘 크레이그)와 첫 육체적 접촉을 가진 후, 상처를 발견한 휴즈가 묻자, “3년 전 나는 자살하려 했어요.”라는 대사를 시작으로 자신의 자살 충동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 그리고 결혼한 이후 미국에서 테드와 실비아의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에서 오토(실비아의 아버지)의 땅벌에 관한 저서를 둘러싸고 실비아의 아버지에 관한 얘기와 어렸을 때의 자살 소동이 얘기된다. 그 이어지는 장면에서 실비아의 어머니는 자기 딸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한 마디를 하는데, “원하는 것을 향한 집념”이 그것이다. 이 대사는 시인 실비아의 삶을 압축적으로 적확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그것이 테드의 장점인 것으로, 그것 때문에 자신의 딸이 테드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것들을 간과한 채 영화를 보게 되면, 실비아의 시세계와 그 정신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저 질투와 시기, 그리고 아내로서, 애들의 어머니로서 정신적 위기를 겪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는 한 섬약한 여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여성 시인으로, 더구나 한 위대한 시인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세 가지 역할을 완벽하게 다 이루고자 했던 한 여성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실비아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 캠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그곳에서 테드를 만난다. 실비아는 단번에 테드의 시적 재능을 알아보았고, 먼저 그에게 다가감으로써 사랑이 시작된다. 나중에 실비아가 자살한 이후 35년 만에, 테드 휴즈는 『생일 편지』라는 시집에서 그때의 만남을 아래와 같은 시로 남겼다. 환희의 붉은 공 같은 얼굴. 아프리카인 입술 모양을 한, 웃음 짓는, 짙은 진홍빛 입술. 그리고 그대의 눈, 으깨진 다이아몬드처럼 얼굴에 틀어박힌 눈. 믿을 수 없이 반짝이는, 으깨진 눈물처럼 반짝이는 눈. 그것은 기쁨을 쥐어짠, 기쁨의 눈물이었을 거야. 그대는 대차게 나를 때려눕히려 했지. [……] 그리고 몇 달 동안 내 얼굴에 찍혀 있던, 둥글게 부풀어 오른, 깊이 파인 그대의 이빨 자국. 그리고 그 밑에 영원히 박힌 나.
테드 휴즈(이철 역),『생일 편지』중 「문학잡지 창간기념식장에서」의 일부 실비아가 테드를 처음 만난 파티장에서 춤을 추다가 실비아가 테드의 뺨을 무는 영화의 장면이 바로 위의 시의 장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행복은 곧 어둠 속으로 흘러든다. 두 천재 시인이 하나의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테드는 첫 시집 『빗속의 매』로 주목을 받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지만, 실비아는 결혼의 후유증으로, 더 정확하게는 남편인 테드 휴즈의 시적 재능에 눌려 슬럼프에 빠져 시를 쓰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시적 불임은 실비아로서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 고통은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불러왔고, 그 증세는 또한 남편에 대한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남편의 시적 재능에 대한 시샘과 바람기에 대한 질투로 이중적인 고통을 주었다. 테드 휴즈는 1960년대 이후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인간적 삶에 대한 하나의 대비로 강력한 본능과 생명력 넘치는 동물의 세계를 격렬하고 힘찬 언어로 그려냈다. ‘기네스 시상’ ‘구겐하임 상’ ‘서머셋 모음 상’ ‘호손든 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유명인이 되어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좋아하는 여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테드를 실비아는 곱게 봐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예민해진 실비아를 더욱 예민하게 자극했던 것이다. 급기야는 부부싸움으로 번지고, 둘은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생활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테드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고스란히 여성인 실비아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런 실비아의 모습을 영화에도 등장하는 비평가 알바레즈는 “실비아는 시인으로서의 존재는 지워져 젊은 엄마와 가정주부의 자리로 물러앉은 듯 보였다”라고 썼다. 알바레즈(최승자 역)가 쓴 『자살의 연구』(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실비아 플라스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다)에는 당시 그들 부부의 삶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그곳은 너무도 협소해서 모든 게 비스듬한 방향으로 보였다. 복도에 들어서면 너무 비좁고 물건들에 꽉 끼어서 코트도 간신히 벗을 수 있을 정도였다. 부엌은 한 번에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알맞을 듯한 크기였고, 두 팔을 펼치면 부엌의 양 벽에 닿았다. 거실에선 책이 들어찬 한쪽 벽과 그림이 걸린 다른 한쪽 벽 사이로 세로 방향으로 한 줄로 나란히 앉아야 했다. 거기서 갈라져 들어가는 꽃무늬 벽지의 침실엔 침대 외엔 다른 아무것도 들여놓을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빛깔들은 상쾌했고 자질구레한 물품들은 예뻤으며, 그곳 전체엔 어떤 생동감, 무엇인가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풍기고 있었다. 타이프라이터 한 대가 창 곁 자그마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둘이 그걸 교대로 사용하는데, 한 사람이 작업을 하면 그 동안 다른 사람이 아이를 돌보았다. 밤에는 그것을 치워버리고 거기다 아기 침대 놓는 자리를 만들었다. (pp.23~24) 타이프라이터를 공동으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실비아의 시는 진척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실비아의 첫 시집 『거상』은 테드와는 달리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테드 휴즈는 아시아 위빌이라는 여자와 혼외 관계를 가진다. 영화에서는 그들의(테드, 실비아, 아시아) 감정의 실타래를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다. 실비아가 신경질적으로 질투를 하고, 테드는 그 반감으로 아시아에게 끌리게 되는, 그게 아닌데 그거라고 상대가 우길 때 그것이 되게끔 만들어버리는, 복잡한 심리를 담아낸다. 녹음테이프를 통해 로버트 로웰의 육성으로 그의 시 「난터키트의 퀘이커 묘지」가 거실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다는 아직 사납게 부서지고,/ 밤은 북대서양함대 안으로 몰려들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와 대리석 발에서/ 빛이 빛났다./ 그는 꼬이고 퉁겨나온 허벅지 근육으로/ 그물을 붙잡았다./ 시체는 흰빛 붉은 빛이 섞인 핏기 없는 덩어리/ 뜬 채 노려보는 눈은/ 광채 없는 채광창,/ 혹은 해변에 올라 모래 잔뜩 담은 배의/ 선창, 우리는 그 몸에 돌을 달고/ 눈을 감기고, 원래 그가 온 곳인 바다로 밀어낸다./ 발꿈치 닮은 머리의 돔발상어가/ 아합의 공허와 이마에 코를 비벼대는 곳으로./ 노란 분필로/ 그의 이름은 정자로 적혀진다.”, 빠른 컷으로 손의 움직임 같은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들이 화면 속으로 스며든다. 실비아와 테드는 별거를 하게 되고, 그 별거 기간 동안 실비아는 최고의 생산력으로 창작을 하게 된다. 남편과의 별거가 오히려 시 창작에 엄청난 에너지가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두고 알바레즈는 “시에만 전념하는 두 시인이 한 결혼으로 결합하여 둘다 시를 생산할 때, 한 사람이 무슨 시를 쓰든 그 시는 어쩌면 상대방에게, 그것이 꼭 자기 자신의 머릿속에서 도굴되어져 나온 것만 같다는 느낌을 주게 될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별거는 바로 그러한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시와 삶은 반드시 같은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어서, 실비아의 외로움과 우울증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마침내 죽음과의 내기가 자신의 삶을 또다시 새롭게 부활시켜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두 아이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감행한다. 그 자살 장면을 영화는 디테일하게 따라간다. 아이들이 잠에서 깼을 때 먹을 수 있도록 토스트를 준비하여 아이들 방에 가져다 두고, 가스가 새어들더라도 치명적인 해가 가지 않도록 아이들 방 창문을 반 쯤 열어둔다. 그리고 거실과 아이들 방 사이를 가르는 문의 틈새를 테이프로 꼼꼼하게 봉하는 실비아의 절망적인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는 빼놓지 않고 따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아침이 되었을 때 하얀 눈을 배경으로 빨간 천에 덮인 관이 아파트 현관을 빠져 나온다. 그 죽음을 알바레즈는 “그것은 치명적으로 불발된 도와달라는 외침”이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실비아의 반쪽 얼굴의 감았던 한쪽 눈이 떠졌을 때, 암송되던 시는 멈추고, 장면은 바뀌어 들판에서 겨울바람을 맞고 있는 한 그루 나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처럼 영화의 마지막은 한 그루 나무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첫 장면과는 달리 그 나무는 봄의 연두빛 잎들로 뒤덮여 있다. 그 나무를 배경으로 “1963년 2월 11일 실비아 플라스는 자신의 부엌에서 가스를 마시고 자살하였다. 사망 1년후 테드 휴즈는 그녀의 유고를 정리하여 시집『에어리얼』을 출간하였다. 『에어리얼』은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시집이 되었으며 실비아는 수세대에 걸친 독자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1998년 테드 휴즈는 35년간의 침묵을 깨고 실비아와의 사랑을 노래한 시집『생일 편지』를 발표한다. 그리고 몇 주 뒤 그는 암으로 사망하였다.”라는 자막이 흐르고 멈춘다. 여름,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유의해.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흰 소나무에서 네 친구 호기
채호기 시인과 이명세 감독이 주고 받는 편지기 있는 사이트가 있네요 내일 이 현 화백과 이명세 감독도 청담에 오신다 해서 채호기 시인의 ‘지독한 사랑’을 태마로 한 동명의 영화를 옮기려다 저는 그 영화는 못 보고 ‘실비아…는 봤기 때문에 우선 옮깁니다 다른 편지도 많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 참고하시길
http://hook.hani.co.kr/archives/author/chaehoki<—
겨울비
17/09/2012 at 14:59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실비아. 지독한 사랑…
‘지독한 사랑’은 시인과 좀 다르게 봤었어요.
이명세 감독의 영화 속 창문과 비와 대사들…
다시 되돌려봅니다.
그리운 님들…
모두 내일 만날 수 있기를요.
佳人
17/09/2012 at 22:15
링크 따라 가서 두 편의 편지를 읽었어요.
다음에 또 읽어야겠어요. 재미있네요.
벼락치기 공부하듯 늦게 채호기 시인을 알아가는 것 같아
반성도 좀 하면서요…
채호기시인과 이명세감독을 모두 볼 수 있다니, 정말 기대되네요.
친절한 안내에 늘 감사드립니다^^
참나무.
17/09/2012 at 22:36
The Bee Gees- ‘Holiday’
안성기 박중훈이. ..비 많이 오던 장면에서 흐르던 Holiday
이명세 감독 ‘인정사정 볼 것없다’ 그 영화는 봤는데…지독한 사랑을 전 왜 못봤는지…
작년이었나요 예당 한가람에서 이현 화백 전시회 오프닝에 같이 참석 했던 때가?
친구 행사에 같이 놀러온다는 그들의 우정이 부럽고,또 고맙고…^^
참나무.
17/09/2012 at 22:39
오늘 D-Day 언제나 제일 힘든 일로 바쁘겠네요
마이크 준비 잊지마시고오~~^^
사카에 시 좋아하는 분들 많이 오시길바랍니다- 일일이 인사는 못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