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뿌린것 처럼은 아닌’메밀꽃 필 무렵’에 접한 좁은 골목을 지나니
무슨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뭐가 들어설지 전 알지못합니다
국방색 군용이 보이고
군인의 뒷통수 사진이 찡하게 다가옵니다 20년만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작품들
지난 번 퀴즈를 아무도 못맞췄지요…힌트는 류가헌
군용이 또보이고 -제목에 꽤 고심한 듯…제 느낌이 그냥
" 최전방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기자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부대에 입대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암호가 일상화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눈으로 찍었다. 찍고 싶은 장면 앞에서 한쪽 눈을 껌벅이는 버릇이 그때 붙었다. 밤이면 침상에 누워 천정에 눈을 감고 현상했다.
상병이 되어서야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방독면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야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현상을 마치면 휴가가 끝나있었다.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이 미처 말로 표현치 못하는 그것들을 대신 보여 주기 바란다.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기억한다. 나의 사진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 이한구작가 노트
이런 사진 올리는 거 정말 작가에겐 결례지만 단한 분이라도 많이 가 보시라고 이런답니다
사진 출처: 흑백사진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류가헌
출처: http://www.ryugaheon.com/index.php<–류가헌 사진 전문 갤러리
~ 2012-10-28까지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Op. 48
summer moon
27/10/2012 at 03:11
‘국군 아저씨께…’ 이러면서 위문편지 쓰거나 이것저것 챙겨서 선물 상자를
마련하곤 하던 초등학교, 중학교 때가 생각나네요.
몇번인가 답장을 받고 아주 기뻐했던 것도…
한국의 청년들은 군대를 의무적으로 다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 못하던
외국 청년들에게 설명을 해야 했던 우리나라의 역사, 전쟁, 분단…ㅠㅠ
직접 볼 수 있다면 어떤 깊이의 느낌으로 다가올런지 짐작할 수 있어요.
이렇게 보여주셔서 아주 감사해요 !!
벤조
27/10/2012 at 04:23
사진, 하면 동생 남편이 생각나죠.
사진작가 김수남.
술친구였는데…
士雄
27/10/2012 at 04:33
이제는 사진도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예술이라는 자리에 앉아서
제 몫을 잘 담담하는 거 같습니다.
물처럼
28/10/2012 at 02:26
참나무님의 가을 나날이
어쩌면 분주하게 느껴집니다.
경복궁의 가을 풍경도
덕분에 누리고 갑니다.
비풍초
30/10/2012 at 04:50
제가 그 다음날.. 비 많이 오던 날.. 갔었군요.. 사진가를 못만나서 서운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