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파 문학의 챔피언’ 이인성

먼 길을
떠난단다.

먼 길은
떠남은
떠나기 전에 벌써
쓸쓸함에 물든다.

먼 길에는
떠남에는
항상 죽음의 공기가 떠돌거니와

떠나는 사람이여
사라지는 한 점이여
어디로 가든 우리 가는 데가
뭐 꼭 거기라야서 가겠는가
(가슴은 한 가닥 지평선—)
가는 데가 어디이든 그곳은 다만
한 없이 가고 싶은 마음의 그림자
떠나고 사라지는 그림자의 우주이니.

정현종 – 이인성에게

정현종 시인의 이 시를 읽자 마자

나는 대뜸 이인성 화백으로 착각하고

자화상까지 올리며출생년도가 꽤 차이가 ?

어떤 교류가 있었을까…의문이 난다고만 했는데

‘소설가 이인성씨 아닐까 ‘

이웃의 답글로 시를 유심히 읽어보다

서울대 교수직을 퇴임하고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는

후배에게 보내는 시란 걸 짐작하게된다


소설가 이인성을 나는 몰랐다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부분만 지울 수 없어서 오류 지적만 했는데

오비이락…

연이틀 어수웅 기자의 이인성씨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다

( 마치 나를 위한? – 이런 것도 필연같은 우연? 이러며 )

"이 선생, ‘그냥’ 소설을 쓰시오" 후배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어수웅 기자/입력 : 2012.11.27 23:09

(왼쪽)김윤식 교수, 소설가 이인성.

"이인성은 6년 전 멈춘 작가" 김윤식 교수, 그만을 위해 비평
선배의 글 예상하지 못한 채 때마침 중편 발표한 이 작가 자택 찾아가 감사하다 인사
"그래도 쉽게 쓴 소설 못 믿어
"

#1.

서울대 김윤식(76) 명예교수가 낸 비평서가 지난주 출간됐다.

제목은 ‘전위의 기원과 행로-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문학과지성사).

다독(多讀)과 다작(多作)의 대명사인 이 노(老) 비평가의 180여 저작 중, ‘전위의…’는 극히 예외적이다.

생존 작가 그것도 후배 소설가 단 한 명만을 주 텍스트로 삼아 쓴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청준과 김현이라는 4·19 세대 거목의 연결고리로서 그를 거명하기는 했지만, ‘전위의…’는

이인성이라는 전위적 작가 단 한 명에 대한 문학적 비평이자, 문학 외적으로는 채찍과 응원이었다.

그는 책 머리말 제목을 "’돌부림’에서 멈춰 선 작가"라고 붙였다.

‘돌부림’은 이인성이 6년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중편소설.

‘낡은 언어와의 결별’과 ‘새로운 언어의 탐구’로 대표되는 이인성 문학의 성취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면서도, 신작을 써내지 못하고 있는 후배 작가를 ‘채근’하고 ‘격려’했던 것이다.

#2.

‘전위의 기원과 행로’와 거의 같은 시점, 통권 100호를 맞은 문예계간지 ‘문학과사회’ 겨울호가 역시 신문사에 배달됐다. 겨울호에는 작가 이인성(59)의 중편소설 ‘한낮의 유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3.

선배의 글을 예상하지 못한 채, 무려 6년 만에 그것도 단행본도 아닌 중편소설 한 편만을 겨우 발표했던 후배는 자신을 주제로 선배가 쓴 비평서가 나온다는 사실에 민망해져 버렸다. 책 출간 직후, 용산 이촌동 선배의 자택으로 후배는 찾아갔다. 글과 달리 말은 거의 없는 과묵한 비평가는 과작(寡作)의 작가에게 짧은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이 선생, ‘그냥’ 소설을 쓰시오."

‘소수파 문학의 챔피언’이라 불리는 이인성은 유별난 과작의 작가.

분기별로 단편 하나씩 쓰는 작가도 숱한 마당에, 이번 중편 하나 쓰는 데 걸린 시간이 6년이다.

가장 최근의 소설집 ‘강어귀에 섬 하나’가 나온 것이 1999년이니, 책으로 따지면 13년이 흘렀다.

50대 초반이던 2006년,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을 스스로 물러났을 때의 변이

"이제 소설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었다.

명륜동 작업실에서 작가는 "’돌부림’에서 멈춘 작가"라는 비평가의 호통에"사실이죠, 뭐"라고 답했다.

"대학 그만둘 때 받은 퇴직금도 이제 다 까먹었다"는 그는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더 쓰기 어렵게 만든 건 아닐까" 하며 웃었다.

선배의 ‘그냥 소설’에 대한 주문은,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라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쓰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애정 어린 선배의 주문에 후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정대로 쉽게 쓰이는 소설은 믿을 수 없다.

빨리 끝맺어야 한다고 초조해질 때마다, 나는 반대로 더 더디게 쓸 방법을 찾곤 했다"는 평상시 신념을, 차마 선배에게 말하지 못했다.

이번에 작가 이인성이 ‘문학과사회’ 100호에 발표한 중편 소설 ‘한낮의 유령’은 작가의 자화상이자 어쩌면 현대인의 초상이다. 소설이 써지지 않아 강박증에 시달리는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는 유령을 목격한다. 얼핏 작가 자신의 넋두리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한 현대인의 내면과 무의식이 있다. 자칫 남들에게 뒤쳐지는게 아닐까, 밀려나는 건 아닐까에 대한 공포와 악몽. 기승전결로 대표되는 서사의 문학은 자신보다 유능한 작가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는 이 작가는, 이야기나 감각에 호소하기보다 사유와 상상의 힘으로 현실 그 이후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이인성 문학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아래는 작가의 명륜동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

-‘돌부림’에서 멈춰선 작가, 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사실이지, 뭐.(웃음) 내가 많이 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권을 쓰면 어떻게 구성할지를 염두에 둔다. ‘돌부림’까지 포함해서 중편 세 편을 써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어떻게 이 연작을 묶느냐의 과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어떻게 하면 ‘돌부림’에서 더 나갈 수 있을까. 고통스러웠다. 그러다가 ‘돌부림’을 정점에 놓는 구성으로 생각을 바꿔 봤다. 더 나아갈 수 없다면, ‘돌부림’을 정점으로 한 구조를 갖는 쪽으로 만들어보자고. 그동안 썼다 버린게 무수히 많다. 이번 ‘한낮의 유령’을 쓰면서, ‘잡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윤식 선생이 생존 작가, 그것도 후배 작가를 대상으로 쓴 책은 처음이지 싶다.

자택으로 찾아갔다고 들었는데.

“인사를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참 ‘희한한 열정’이시지.(웃음) 헤어질 때 한 마디 하시더라고.

‘그냥 소설을 쓰시오’라고”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지기를 바라는 선배의 격려가 아니었을까.

“글쓰는 데 대한 나만의 방식이 만들어져서 이제는 그냥 써지지를 않더라. 요새처럼 소설이 막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나까지 마구 써 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이나 쓰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책을 내야지. 분량도 얼추 이제 한 권 분량이 채워졌다. 4편의 중편이 모였으니까. 지금 이 4편을 배치하고 틀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악몽(惡夢)에 관한 연작이라고 들었다.

“욕망의 끝자리에 있는 존재가 악몽이 아니냐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소설을 쓰다보니 이야기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상황이 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작가로서는 마지막이 아닌가. 작가의식 같은 명분조차 지워져버린 상태 말이다. 심지어 내가 작가라는 그 자체가 악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악몽을 꾸고 있다. 뒤쳐지는게 아닐까, 밀려나는게 아닐까 하는 공포와 강박. 그런 강박 속에 꾸는 게 악몽이다. 사람들은 이제 잠을 자지만 꿈을 꾸지 않는다. 어쩌면 문학은 잠자는 동안 잠깐 꾸는 그 악몽 같은 건 아닐까. 그 악몽 속에서 현실은 멈춰 있을 테니까.”

-문학의 위축과 축소가 대세인 세상이다. 이런 세계에서 문학은 뭘 할 수 있을까.

하나 더. 그 안에서 이인성의 문학은 뭘 할 수 있나.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런 거다. 세계 전체의 거대한 상업주의에 문학도 휩쓸려 있다. 문학도 소비상품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복제품들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언어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언어를 부각시키는 것. 언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아 들어가다보면 세계에서 문학의 몫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단순히 콘텐츠 역할 하나 추가하는게 아니라, 이야기꺼리를 제공하여 주는게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언어만이 다룰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지 않을까. 가령 ‘우리’라는 대명사는 영상으로 보여줄 수가 없다. ‘우리’라는 영상은 없는 것이다. ‘나’라는 영상도 마찬가지. 언어만이 우리에게 환기시켜줄 수 있는 것을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알면 벌써 썼겠지(웃음)”

-그렇다면 이 역할은 너무 수세적인 것은 아닐까.

“문학이 중심이던 세계는 끝났다. 이제 그 시대는 거의 불가능하다. 문학중심의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면 변두리에서 뭘 할거냐. 그건 고민거리지. 하지만 더이상 문학에 대해 쓸데 없는 환상을 품을 필요가 없다. 영화는 즉물적으로 시청각 감각에 직접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하는 머리의 작용과 관련해서는 문학만큼 깊게 갈 수가 없다. 문학의 기능은 결국 자기 속에 침잠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면서 해독하고 이해하고 사유하고. 이런 덕목은 결국 자기가 자기 안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화는 이런 가치를 쫓아내고 있다. 버림받고 있는 것이다. 상업적 영상들은 생각을 차단하고 상상을 차단한다. 스피드와 감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키는 이런 속도에서는 사유가 불가능하다. 이런 속도하에서는 ‘그 다음’이 없다. 하지만 문학은 ‘그 다음’의 세계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해 준다.”

-요즘 인간의 하루를 보고 있으면, 24시간의 ‘땅따먹기 경쟁’에서 스마트폰이 압승한 느낌이다.

“이런 형국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잠깐 스쳐가는 반성 정도로는 극복이 힘들 것이다. 너무나 절실해서 온몸으로 절망하기 전에는 상황의 반전이 힘들지 싶다. 그런데 그 반전의 시기는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 총체적으로 올 수 있다. 개인적 차원이건 사회집단적 차원이건. 증거를 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다 걸고 있다.(웃음)”

-문학과사회 100호의 고민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100호의 좌담을 보니 ‘문학적 진정성’이라는 용어를 복원하고, 결국 소수문학 얘기를 하던데?. 어차피 중심에서 밀려나는 문학이라면 첨예화되고 다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경향만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 날카롭게 발톱을 보여야 한다. 지금은 모든 문학잡지들이 출판의 홍보물 같은 느낌이다. 제대로 된 사회적, 문화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잡지를 벼려야 할 시점이다”

-하루 일과는 어떤 사이클로.

“새벽 4시쯤 자서 오전에 10~11시쯤 일어난다. 성균관대 뒷산 쪽으로 산책을 하고난 뒤 작업을 시작한다. 이번 ‘한낮의 유령’을 쓴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동안은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썼다.”

-2006년 서울대 교수를 그만뒀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나.

“한 번도(웃음). 다시 찾아가 본 적도 없다. 이제 문학만 할 수 있어 좋았다. 공부나 가르치는 일 이외의 행정적인 일로 시달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 때 받은 퇴직금은 다 까먹었다. 아, 재직 시절 교수회관 옆에 있던 솔빛식당이라고, 해장국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식당이 내달 12월 31일에 문을 닫는다더라. 술먹은 뒤 그 다음 날 그 집 신세를 정말 많이 졌었는데. 문 닫기 전에 꼭 한 번 가보려 한다.”

-이렇게 물어보자. 소명의식이 느껴지는 삶이다. 문학은 이인성에게 도대체 어떤 즐거움을 주길래.

“어느 순간부터는 문학이 존재이유고 존재방식이었던 것 같다. 문학으로 살기. 그걸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이었다. (계기가 있나). 결정적 계기는 없었다. 단지 나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나를 생각하고 하나하나 버리다보니 문학만 남더라. 신을 만나듯 회심(回心)이 이뤄진 것은 아니고.

언어로 문장을 만들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순간이 즐겁다. 쓰고 난 결과를 보는 일은 악몽이지만, 쓰는 활동 그 자체는 즐겁다. 마치 술마시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술은 아무런 도움이 안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가. 마치 누구에게는 알콜 선호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내가 문학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출처<– <–2012. 11. 28 (수)

http://www.leeinseong.pe.kr/<–낯선 소설의 집

P.S: 상관없는…

새 창 다시 열기 그래서요…;;

해밀턴(Richard Hamilton·1922~2011)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고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1956년, 콜라주, 26 × 24.8㎝, 튀빙겐미술관.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87] 쾌락이 넘실대는 이 집에서 살고 싶은가? <–2012. 11. 27 (화)

8 Comments

  1. summer moon

    28/11/2012 at 04:18

    이 포슽 읽지 않고 정현종 시인의 시를 읽었다면
    저도 화가 이인성을 떠올렸을거 같아요
    그리고는 거기서 멈췄을거에요
    더 이상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참나무님이 계시니까 소설가 이인성씨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는 이 기쁨 !^^   

  2. 참나무.

    28/11/2012 at 09:16

    김윤식 선생님과 정현종 선생님께서 아낄만한 후배더군요- 이후 찾아본 작가 이인성 씨
    어수웅 기자랑 인터뷰 기사, 좀 길지만 원문 마저 올렸어요…^^
    한가한 시간 작가 홈피도 가보려고 링크해뒀구요

    알려준 겨울비 님께 고맙다 해야겠지요…

    알탕 끓이는 중입니다…^^   

  3. 산성

    28/11/2012 at 11:42

    이인성,이인화란 작가도 있지 않아요.
    화가 이인성이 더 유명하니 그러실 만도 합니다.
    늘 헷갈리며 살아가는 세상이라…

    매해 1월 1일을 기다리며 올해 신춘문예엔 누가…?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확연하게 옛분위기는 없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알탕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4. 참나무.

    28/11/2012 at 11:58

    바람부는 날 압구정 못가고 경동시장 다녀왔어요
    정말 바람 많이불데요- 한가로울 시간없이 종종걸음 친 날 되겠습니다

    양반 못되십니다
    좀 전에 음식물쓰레기 비우고 오면서
    달…그리고 별 보며 오늘도 사진 찍을실까…했거든요

    르 꼬르비제도 젊은 시절 동방여행하며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한없이 별을 보던 그 시절 그 느낌이 당신작품 속에 크게 작용했다 고백하더군요
    저 별과 달(어니언스 노래 제목)을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별 달 해질녘 사진을 그리도 잘 담아내실까…
    저 혼자 그랬답니다… 에누리 없이…^^
       

  5. 참나무.

    28/11/2012 at 12:08

    아 이인화 작가는 압니다 정조를 주인공으로한 소설도 읽었고- 제목이 뭐더라???

    알탕…오랜만에 칭찬들었어요 고니도 섞여서…^^
    저는 알탕보다 오늘 시장에서 추위에 떨다 먹은 잔치국수가 더 맛났어요
    – 세상에나~~ 쑥갓, 미나리까지 띄워주셨는데 단돈 이천원…
    호박죽 팥죽 파는 집인데 시인의 국수 생각이나더란말이지요   

  6. 揖按

    29/11/2012 at 02:45

    기운이 거꾸로 솟아 나시는 모양이지요 ?   

  7. 푸나무

    29/11/2012 at 10:07

    언젠가…기억 나지도 않는데
    이냥반 글읽다 뭐지….하며 놓았습니다.
    엄청 어려운 냥반이세요.
    지금 읽으면 조금더 나을까요?

    대개 모은 일들이 익숙한 쪽으로 회전하지 않나요?    

  8. 참나무.

    29/11/2012 at 15:04

    소식을 늦게 알았네요
    이웃이 한꺼번에 삭제가 된데다
    그간 뜸하셔서 …죄송합니다

    한달 여 동안 많은 일을 겪으셨데요
    ‘의보’ 때문에 당분간 한국서 직장도 구하시고
    어려운 일 당하셔도 의연하게 잘 대처하시니 모범이 되십니다

    체류 기간 동안 어려운 일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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