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께로티카’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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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도 제법 변했다

꽤 자주 가는 편인데도 처음 보는 카페들이많이 보인다.

일단 순서가 있다

환기 미술관과 서울 미술관

그 외 기타등등은 몸이기분이 내키는대로…

환기 미술관 가려고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시선을 끄는 포스터가 있었다

께로티카 갤러리는 또 언제 생겼나

박노해 안데스 사진전?

시인 박노해랑 동명이인인가?

의문 부호만 달고

디카는 아예 손에 쥐고 낯익은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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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uth is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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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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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나네?

그리고 환기 미술관 마스터 후에도 수차레 더 만나게된다

( 어쩌면 정말 박노해 시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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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 .청매 먼저 만나야지

애개개?

그래도…이게 얼만가

멀리가지 않아도…

작년엔 세 번인가 네 번째

겨우 활짝 핀 모습 대면했는데

올해는 좀 빨리 핀다길래

‘그래도…’

수많은 가지 중

골라 골라

겨우

(흉보지마셔요 칫…)

종긋쫑긋 봉오리, 작아서 더 곱다

울 아기 고물 고물 새끼발가락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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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 끊으러 샵에 먼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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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사도 맨날 없어져버리는 손수건… 둘만 또 고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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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산…

그대와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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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도장으로 이런 파우치 만드는 체험학습인갑다

내 아기 자라만 봐라

이런 데 다 데리고 다닐꺼야

김환기 탄생100주년 -자꾸 주기라 오타를 낸다

지난 토요일은 김성현 기자가추천 소개한 책 사러

교보에 들렀다가책 이름을 까먹었다

-알레그로 소스테누토라 했던가?

직원은 ‘알래그로’.. …’ㅡ ‘알레그로…..

수정해서 다시 쳐도 안되니

– 작가는요?/ 문?? 성 밖에 기억이 안나요

– 저어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함 쳐보세요

그래도 못찾는다

( 아 요즘 자주 만나는 ‘그래도’

아고 참… 나라면 금방 찾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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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꾼 바탕화면, 봄이다

썽질 급해서 양해 구하고

마우스건내받아 금방 찾아내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문학수 著

( 내가 또 한검색하지않는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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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 내려가기 전 조영남씨가 종로바닥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놓친 고기가 크다고… 누가 공짜표를 줘도 못가게 생겼거든…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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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쪽 교보 가기 전 이 가림막 아이디어 누가 냈을까

볼 때마다 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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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교보 글판도 궁금해서였다.

토,일 내리 이틀 대한극장을 간 셈이다

폴 포츠 이후 스타킹 출연자들은왜 모두 ‘내순도르마’일까

빈체로(승리하리라)~~비인~~ 체에~~로오~~~~~!

하이C 로 마감되어서는 아닐까

이런 엄한 생각을 다 해본다

삼천포로 또 빠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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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첨지 님 친구분 박충흠 조각가 먼저 만나고 실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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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화백의 김환기 화백회고는 해드 폰으로…

(*가로수길 예화랑에서 얼마 전에 소장전연 주인공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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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판화랑 드로잉

100주년 기념 특별전답다

자료 사진들 본 것도 많고 안 본것은 더 많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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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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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 중엔 열리지않는 때문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도우미 직원은 직업 정신이 투철하야

사진 촬영 불가라며 제지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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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일당들과 설악산 여행 중 설악워터피아. 노천탕 갔을 때벌써 2008년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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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사람이 한 도ㄷ둑 못잡는다했던가

요거 보러 왔는데 어찌 그냥 가겠는지

이래뵈도 내가 도촬 선순데

( 이러다 잡혀가면 변호해줄 사람이나 있을까 몰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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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에 다시 눈에 힘주어더 살피고

다음 행선지 서울 갤러리 가려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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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급경사 내리막길 다 내려와

길만 건너면 서울갤러리 Love Actually

볼 수 있는데 횡단보도에서

또 께로티카 갤러리를 만나다니…

박노해 시인 본인일까 동명 2인일까

넘 길어서 2편으로 넘겨야겠다 (계속)

어제 올리다잠이와서 비공개 해두고

아침에 죽 먹고 다시 추가

가만 생각하니 오늘 피검사 하는날

금식해야는데 . . .이를 어째, 나원참…ㅎㅎ

10 Comments

  1. 도토리

    18/03/2013 at 03:10

    김환기 미술관…
    볼꺼리가 많아졌습니다…

    손수건과 우산은 저도 단골 구매품입니다.
    ㅋㅋ.^^*   

  2. 당무

    18/03/2013 at 03:58

    ‘박노해 안데스 사진전’ 2편 기대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주 토요일 밤 11시에 KBS2에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에 코미디언 김준현과 양상국이 ‘박노해 안데스 사진전’에 가는 모습이 찍혔거든요~
    요새는 ‘쓰레기 없이 살기’에 이어 ‘자동차 없이 살기’인데 재미있네요ㅎㅎㅎ   

  3. 참나무.

    18/03/2013 at 07:24

    청매는 4월 넘어가야 활작 필 것같습디다- 잘은 몰라도
    나들이 한 번 하시지요 부암동 토박이 친구들과…^^

    사진 봤다고 소문내지마셔요- 저 잡혀갑니다..ㅎㅎ   

  4. 참나무.

    18/03/2013 at 07:25

    나눔 문화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휴일 넉넉하게 시간내어 한 바퀴하셔요
    당무님도^^   

  5. 산성

    18/03/2013 at 09:41

    참나무님 댁도 올 때마다 사진이 추가되네요.
    청매는 아직인 것 같아…천천히…하다간 또 놓치겠지요?
    사진을 조렇게 겹치는 재주? 궁금합니다.
    하여간에 다시 참나무님의 봄날이 되었습니다.
    곽기자님 답글은 어디에 있나요?

       

  6. 참나무.

    18/03/2013 at 09:48

    스압(스크롤 압박) 줄이려고 나딴엔 연구한 결과랍니다..ㅎㅎ
    <http// … jpg 곁에 align= right(or left) > 하신 후 조절하시면됩니다…^^

    곽아람 기자 포스팅 ‘잘 지내길 바랍니다’ 찾아보셔요
    거기 제가 올린 답글의 답글이 이성복 편지…^^*
       

  7. summer moon

    18/03/2013 at 20:17

    아직까지 한번도 제대로 구경을 못해본 환기 미술관(-공사, 전시준비..등등의 이유로)
    이렇게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무지하게 감사하다는 !!!!

    그리고 유리에 비춰진 ‘그리운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하구요.^^   

  8. 참나무.

    21/03/2013 at 04:18

    제가 제일 많이 가 본 서울 사설 미술관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환기미술관
    서울오기만 하셔요 가이드 완벽하게 해드리리다.

    학원 유리창에 대학입시 축하글이 참 찌잉 해서 잡아본건데
    본의아니게 이상한 사람이 터억허니…ㅎㅎㅎ   

  9. 참나무.

    26/03/2013 at 11:09

    ‘화가 김환기’ 하면 그의 그림만큼이나 향기롭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홉 살 선배 화가 근원(近園) 김용준과 일제 말 서울 성북동 집을 사고팔던 때 이야기다. 근원은 성북동에 집을 지어 ‘노시산방(老枾山房)’이라 이름 짓고 정성으로 가꿨다. 그러다가 살림이 여의치 않게 됐던 모양이다. 워낙 아끼던 집이라 남에게 넘길 수 없어 좋아하는 후배인 수화(樹話) 김환기에게 팔고 의정부로 갔다.

    해방이 되자 서울 시내는 물론 변두리 집값까지 뛰기 시작했다. 크게 웃돈 얹어줄 테니 노시산방을 팔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물론 수화는 집을 팔지 않았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 자기에게 집을 팔고 떠난 선배에 대한 미안함과 그 집값이 갑자기 오르는 데서 오는 불편함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수화는 어느 날 서울에 올라온 근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근원이 당시 쓴 수필에 나오는 말이다.

    "그 후 수화는 가끔 나에게 돈도 쓰라고 집어 주고 그가 사랑하는 골동품도 갖다 주곤 했다. "

    근원은 "많은 친구를 사귀어 보고 여러 가지 일을 같이해 봤으나 의리나 우정이나 사교(社交)란 것이 어느 것 하나 이욕(利慾) 앞에서 배신을 당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노시산방이 백만원이 되든 천만원이 되든 그것은 한 덩어리 환영(幻影)에 불과한 것"이라며 "단지 그 환영을 인연으로 현대가 가질 수 없는 한 사람의 순수한 예술가를 얻었다는 게 기쁠 뿐"이라고 했다. (계속)
       

  10. 참나무.

    26/03/2013 at 11:09

    수화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평생 남긴 예술혼의 자취를 지난 주말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보았다. 수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리고 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시회다. ‘어디서…’는 수화의 친구인 시인 김광섭의 시에 나오는 구절로 수화의 대표작 제목이기도 하다.

    전남 신안의 섬 지주 아들로 태어난 수화는 아버지가 작고한 후 집 금고에 있던 소작인들 빚문서를 소작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스스로를 소유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서울대 미대 교수, 홍익대 학장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내며 화단에서 지위도 탄탄했지만 쉰 나이에 모두 훌훌 내려놓고 현대 미술의 중심인 뉴욕으로 갔다.

    ‘어디서…’ 전시에는 1930년대부터 1974년 뉴욕에서 작고하기까지 수화의 대표작 70여점과 메모, 물감 묻은 저고리, 쓰던 붓, 아끼던 파이프와 라이터 등 그의 체취를 전해주는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가 미국 시절 뉴욕타임스 위에 그린 작품도 걸려 있었다. 그 무렵 수화는 그림 재료는 물론 생활비도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신문지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목재소에서 나무를 사다가 캔버스를 직접 만들어 그리기도 했다. 스스로 자초한 궁핍 속에서 그는 오로지 자기 예술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고투(苦鬪)했다. 어느 날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거의 다 완성돼 가는 그림을 부숴버렸어. 용기가 필요해요. 부수는 용기 말이야. 자잘한 것 뭉개버리고 커다란 주제만 남겼지. 행결 좋아졌어요.’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수화의 위치가 어떻고, 지금 그의 작품이 얼마나 높은 값에 거래되는지 얘기하는 것은 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태에서 예술가는 버리고 비울수록 더 큰 성취와 명예를 얻게 된다는 예술사의 역설은 큰 깨침으로 다가온다. 자기를 비움으로써 어떤 욕망도 해내지 못한 성취를 이룬 예술가의 흔적이 수화 탄생 100주년 전시에는 있었다.

    – [김태익의 태평로] 예술가의 향기2013. 3. 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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