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간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의 ‘5월’전문>
Christa Ludwig – Die Mainacht (Brahms)
페이퍼
27/05/2013 at 02:36
참나무님, 건강하셨지요?
제가 5월에 너무 정신을 파느라 블로그에 소홀했어요.ㅎㅎ;
정말 이제 5월이 얼마 안남았네요. 서운하고 서운해서…
이 비에 예쁜 꽃들이 다 떨어질까봐 창밖만 보고 있답니다.
아, 피선생님의 시네요.
피천득 선생님이 엄마의 대학 스승이셔서 언젠가 엄마따라 뵈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후 다시 찾아뵙겠단 약속을 지키기 전에 떠나고 마셔서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5월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참나무.
27/05/2013 at 02:46
…맞아요 이 아름다운 5월 동안
한강 변에서 서울 숲에서 또 골목길 좁은 화단에서
우리가 만난 그 많은 꽃과 나무들에 취하느라…
오늘 비 오시는 날 감사의 맘 한자락이라도 보내고 싶더라구요
그간 서정 폴드에 쌓여있던 사진들도 좀 줄일 겸…
잘가라 5월~~내년에 또 만나자~~ 아가 업고 재우며 이랬답니다.
페이퍼 님 감성은 그러면 어머님 쪽
전 남산 문학의 집에서 강의 몇 번 들은 것 뿐이지만
오래 오래 기억에 남는답니다. 흔적 고마워요~~^^*
술래
27/05/2013 at 04:00
어제 달 보셨어요?
얼마나 크던지 깜짝 놀랐어요^^*
아무리 바쁘셔도
절대로 일에 치어서 주저 앉는일 없이
관리 철저하게 하시는 참나무님 정말 존경하고
부러워요.^^*
揖按
27/05/2013 at 04:38
다른 예쁜 꽃도 좋지만, 청보리가 훨 보기 좋습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들어있어서 일까요…서편제에서도 잠깐 나왔댔지요.
이번에 밀양가서 우리 앞 밭에도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여자가 21살이면 어떤 의미인가요…
청보리 같이 풋풋하고 신선한 보리여서 배 고프면 삶아서 먹을 수도 있지만,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은 그런 나이인가요 ?
하필 손가락만 예쁜걸까요 ?
참나무.
27/05/2013 at 07:12
그저께 그니까 음력 16일 달은 봤는데…구름이 끼어 보였다 안보였다할 때…
어젠 뭐하느라 하늘 한 번 못보고 지났네요
비현실적인 사람 닮지마셔요…^^
술래 님이야 말로 진급까지 하시고…
매일 나갈 데가 있는 사람들을 전업주부들은 부러워 하고
직장인들은 또 백수를 부러워 하고…사람 사는 일 만족이 없나봐요
일만 하고 있으면 저는 더 피로감이 엄습하던걸요…
서울 숲만 나가면 폴드가 차버려서…
참나무.
27/05/2013 at 07:22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
여기까지만 인용하려다 전문을 다 실어봤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5월이면 늘 생각나는 명문이어서..
이제 미국으로 가셔서 2막이 시작되었으니
그 곳 생활 우리까지 구경할 수 있겠네요
그간의 부재로 당분간 일이 많으시겠지만
부디 건강하시기만 빌 뿐입니다
청보리랑 21살 …풋풋함 때문일까요?
당무
27/05/2013 at 07:35
마지막 부분에 붓꽃 사이에 있는 보라색 꽃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참나무.
27/05/2013 at 07:47
‘보라색 으아리’ 같지만 외래종 클레마티스
경춘선 앞마당에 흰색 으아리 요즘 한창 피어있고 아그배 나무도 있지요
– 모여서들 한 번 가보셔요 당무님…^^
은방울꽃도 아직 피어있고요
당무
28/05/2013 at 03:48
역시~참나무님이십니다~~
꽃과 나무 이름들이 참 독특하네요~
얼마 전 벽초지 수목원 갔다가 클레마티스 사진을 찍었는데, 꽃이름을 몰라 궁금했었던 차에 참나무님 블로그에 딱하니 올라와 있는 꽃사진을 보고 매우 반가웠답니다ㅎㅎㅎ
아그배 나무 꽃도 예쁘네요~
요새는 아카시아나무와 이팝나무에 꽃이 한창 피어 눈이 즐겁습니다~
제가 아는 꽃들만 눈에 보이는ㅎㅎ
참나무.
28/05/2013 at 07:41
저도 꽃이름 잘 몰라요…;;
오죽하면 간송미술관의 으아리를 요즘 서울숲에서 자주 보이는
클레마티스로 착각했겠는지요…
경춘선 마담 barbara 님이 알려줘서 알았겠는지요
으아리가 그리 큰 꽃인 줄 처음 알았다니까요…
( 그리고 아카시아=’아카시’로 고쳐 말하셔요…^^*)
해군
29/05/2013 at 13:41
청보리,
얼마전 고창에 가서도 봤고
구리 강변에서도 봤는데
클로즈업 시키니까 또 달라보이네요
스물한살이면 세상의 온갖 고민을
다 짊어지고 살았던 때 아니었나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