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시간 5년, 촬영한 시간 5년

[이 영화] 에브리데이


실제 남매지간인 아역배우들, 두 성인배우 함께 5년간 촬영
키 자라고 표정 변하는 일상…그 ‘시간’이 증명한 건 사랑
변희원 기자 / 2013.06.10 03:04

중국에선 19세기까지 향인(香印)이란 시계를 썼다. 향을 피워놓으면 재의 흔적과 방에 가득한 향기로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재를 모으면 무게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밥 먹은 시간은 재 1g, 잠자는 시간은 재 10g…. 하지만 달력과 시계의 숫자로 시간을 관념화한 오늘날엔 시간의 무게도, 냄새도 느낄 수가 없다. 다들 ‘시간이 없다’고만 할 뿐 시간을 느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른바 ‘시간의 위기’다.

영국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에브리데이’란 영화로 시간을 증명하려 한다. 영화가 담은 것은 마약 범죄로 감옥에 갇힌 이안(존 심)을 기다리는 아내 카렌(셜리 핸더슨)과 아이들의 5년 동안 일상이 전부다. 카렌은 낮엔 마트에서, 밤엔 펍에서 일하면서도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와 기차, 지하철에 택시까지 타는 긴 여정을 거쳐 이안을 방문한다.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에 흔들리는 카렌이 다른 남자에게 끌리게 되는 부분 말고는 내용에 갈등이나 변화도 그다지 없다. 눈에 띄게 바뀌는 거라곤 계절 정도다.


	카렌이 아이들을 데리고 물가로 놀러가는 영화 속 한 장면. 실제 사남매를 캐스팅한 덕분에 아이들은 서로 닮았다

카렌이 아이들을 데리고 물가로 놀러가는 영화 속 한 장면.

실제 사남매를 캐스팅한 덕분에 아이들은 서로 닮았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 영화의 방점(傍點)은 줄거리가 아니라 촬영 방식에 찍혀야 한다. 윈터바텀 감독은 두 성인 배우와 실제 남매지간인 네 명의 아역 배우들을 데리고 5년간 이 영화를 찍었다. 아침 먹는 장면은 아침에, 저녁 먹는 장면은 저녁에 촬영했고, 교도소 면회 장면도 실제 교도소에서 죄수들의 양해를 얻어서 촬영했다. 특히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이 내린 가장 탁월한 결정은 캐스팅이다.

제작진은 촬영지인 영국 노퍽주 일대 학교를 찾아다니며 아이 한 명을 캐스팅하려다가 커크 사남매를 발견하고서 이들을 한꺼번에 영화에 출연시켰다고 한다. 커가는 아이만큼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던 막내아들은 유치원 재롱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 허리춤에서 서성이던 첫째 딸은 어느새 어머니만치 키가 훌쩍 자란다.

이 부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시간을 증명해주는 건 비단 아이들의 뼈와 살만이 아니다. 아이들과 카렌의 얼굴에 덧씌워진 원망과 그리움의 표정, 이들이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일상의 동작이 바로 시간의 흔적이다. 윈터바텀 감독은 일상의 행위와 감정이 만들어가는 사람의 표정으로 시간을 증명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다. 재와 향기로 시간을 증명할 수 있다면,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부재(不在)다. 부재는 곧 기다림을 동반하고, 기다림은 곧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증명하는 것은 곧 사랑을 증명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윈터바텀 감독이 5년에 걸쳐 보여주고자 했던 ‘시간’은 바로 기다림이자 사랑이었을 것이다. 13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출처<–

9 Comments

  1. 참나무.

    23/06/2013 at 11:18

    오늘 저녁 8시 32분 달이 굉장히 밝다고
    울집남자 지금 베란다에서 절 부르네요…   

  2. 해군

    23/06/2013 at 11:46

    마이클 윈터버텀, 유명한 감독인데
    이 분 영화를 한편도 안 봤습니다
    좀 머리가 아픈 영화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ㅎ

    제 집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네요   

  3. 참나무.

    23/06/2013 at 12:14

    한강 위로 환한 보름달이 덩실 떠있는데요….아까 잠깜 구름에 가리웠다가…

    이 감독이 신출기몰하다면서요
    이번 영화는 머리가 하낫도 안아픈 게 특징이라던가?
    크라이막스도 작그적인 장면도 없이 영화제묵 그대로 일상을 담은 작품.

    순간 순간이 모여 하루…그 하루 하루가 모여 세월이 되는
    한 사족의 가족사가 왜그리 짜안한지…
    감독은 특히 아이들의 표정을 잘 담았더라구요

    울 애기도 잠이오면 눈을 비비는데 영화 속 막내도
    잠이 오니 눈을 마구 비비는 장면이 있어서 아하! 했거든요
    꼭 보셔요~~   

  4. 푸나무

    23/06/2013 at 14:04

    요즈음 참나무님 숙제 하기
    버겁습니데이….
    시누이가 미국에서 와서 동무 해줘야 하기 때문에…ㅎㅎ
    같이 어디 가보려고 슬쩍 떠 봤더니…반응이 시원찮군요.
    그레도 틈내서 봐야지 이 영화…   

  5. 푸나무

    23/06/2013 at 14:04

    아참, 전 달 봤어요.
    달이 아주 동그란게 허여멀금하고….
    맑더군요.    

  6. 참나무.

    24/06/2013 at 08:37

    어제 저녁 가장 지구 가까이 접근한 달이었다지요
    혹시 달사진 찍으셨나요?

    시누이랑 같이 봐도 좋을 영화같은데…짬내서 보셔요
    비단실이 줄줄 나오실텐데…^^*    

  7. summer moon

    24/06/2013 at 21:17

    극장에 가지 않는 저는 DVD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메모를 해 둔 영화들을 참나무님이 늘 먼저 보시는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시 제 메모를 체크하구요.^^

    이 영화도 저는 보면서 저항하지 못하고 감동받고 울거라고 짐작을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묻더군요, 5년 씩이나 걸려서 영화를 만들거면
    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가족을 찾아서 다큐필름을 만들지 않았느냐구요.

    마이클 윈터바텀은 의식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신조가 뚜렷한 감독인거 같아요,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면서 돈도 벌 줄 알고.^^   

  8. 참나무.

    24/06/2013 at 22:32

    네 소장가치 충분히 있는 명화 맞습니다
    이런 영화 (작가주의)만들 목적으로 상업적인 헐리욷 영화 만드는건 아닐까요

    오로지 상업적..만 추구하는 감독이 더 많은 요즘 세상에…^^

       

  9. 비풍초

    26/06/2013 at 11:54

    청소년 관람 불가?
    윈터바텀? 이름 좋아요.. ㅎ

    다운로드받아서 봐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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