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뢰(91×72.7cm) 한지에 먹 2012/ 송승호
송뢰(163x122cm) 한지에 먹.2012/ 송승호
8월 12일까지는= 인사동 수도약국 2층
갤러리 AP에서 소나무 작가 송승호 개인전이 있다
많이들 가셔서 외로운 작가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서…
작업노트:
송뢰(松籟)
아무렇게나 늘 있는 줄만 알았던 시골 뒷산의 소나무들, 환경변화에 예민한반응을 보인다. 사철 푸르기만 했던 잎 갈귀의 빛깔은 서서히 몸통을 닮아 간다. 도시가 뿜어내는 온기에 도도한 절개마저 맥이 없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의 기상은 앞으로 책 속에서나 볼 것인가. 나 태어날 때 심어져 함께 자라온 적송이 파리해 질 땐 마음도 아리었다. 어느 날 아침, 솔잎 끝에 매달려 있는 영롱한 이슬 안에서 또 다른 세상을본다. 조그만 구체안에서 거대한 풍경이 오글거린다. 야위어 가는 중에도 수많은 생명을 스스로 잉태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런 희생으로 천지가 이만큼이나 보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유전자의 치열함과 경외로운 영성(靈性)은 세세토록 변치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한강 물이 마를지언정…
송뢰(100x50cm) 한지에 먹.2012/ 송승호
미장원에서 읽던 동아 일보 기사,
이주향씨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날 읽은 글은 좋았다
나는 조선일보 한 부도 설렁설렁 읽는데
다른 신문들도 좀 유심히 봐야겠네 하다
아이고 참~ 아기랑 발박수 같이치며 놀기도 바쁜데 …
어느 세월에? 하고 만다
어제 아침박은주 기자 기사도 으음…고개 끄덕였지만…
예술품이 감상 이외이 목적일 때에 관한 뭐 그런…
내가 했던 비슷한 생각이라 남겨두고싶다.
요지만 골라 쓰기 귀찮아서 그냥 드르륵~~
고갱이 묻는다, 우리는 무엇인가
불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창고에 처박혀 있었을까요,
제단에 모셔져 있었을까요? 뉴스에서 스치듯 지나쳤어도 눈이 저절로 가는
그 늘씬한 금동불상이 단지 재산을 은닉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면
그 이상한 세상의 슬픈 코미디에 그냥 웃어줘야 할까요, 손가락질해야 할까요?
전두환 일가의 압수수색 때 거명된 작가들은 명예스러울까요, 불명예스러울까요?
거기 끼어도 창피하고, 끼지 않아도 창피하다는 친구 작가의 얘기를 듣고 우리 모두 빵 터졌습니다.
예술이 예술가의 정신을 배반하며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축적해 가는 세상에서 예술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지난주에 ‘낙원을 그린 작가 고갱’ 전에 다녀왔습니다.
문제의식으로나 크기로나 고갱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겠습니다.
그림의 전체 배경색은 블루인데, 신비한 블루가 아니라 우울한 블루입니다.
나는 그 배경색의 침울함에 질리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무거움에 질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니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고
갑자기 직장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지금껏 터전이었던 모든 것을 등질밖에요.
고갱은 문명의 옷, 그 관념의 탑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우리는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란 물음을 던지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찌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어찌 누릴 것 다 누리게 하는 것으로 잡아둘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누리고 싶었던 것은 파티의 소란함이 아니라 맨발의 감촉이고,
그가 입고 싶었던 것은 문명의 옷이 아니라 나무의 향기고 여인의 향기인데.
고갱은 이렇게 썼습니다.
‘태양처럼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아름다워 자꾸만 쳐다봅니다. 여인의 맨발을 보고, 나도 맨발이 됩니다.
햇빛을 머금은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맨발로 온 들을 거닐었습니다. 여인이 그립습니다.’
그의 내면에 체증으로 남아있는 것을 그림으로 그렸던 것 같지요? 내가 주목하는 그림은 ‘황색의 그리스도’와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입니다. ‘황색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림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기보다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만들어내는 평화에 조응이라도 하듯 흰 두건을 쓴 여인들도 십자가 주변에 차분히 앉아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불경스럽게도 그 그리스도를 자기 얼굴의 배경으로 쓰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 자신감을 어쩌지요?
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갱이 스스로를 그리스도라 믿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건 자신을 인류의 구원자라 믿으며 망상 속에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감수한 영혼이라 믿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평화로 거듭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조용히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그 후 타히티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쉽지 않았던 고갱의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통 받았고, 어설프게 흘러들어간 문명에 실망했고, 죽은 아이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결코 낙원의 행복을 누렸다고 할 수 없는 그의 타히티가 아름다운 건
고갱은 누리고 싶은 것과 누리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바로 거기서 철학적인 물음이 개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출처: 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
솔숲- 수묵 /송승호
오전 1시간물에서 좀 놀다 오면 좀은 견딜만 하다
사실은 수영장 갈 때의 아침 산책, 이거이 더 좋은 운동이지만
요즘은 울 애기 업고 잠 재우는 걸음도 직선 거리로는 꽤 되지싶다
Hansa
07/08/2013 at 01:35
고갱전, 저도 방문을 벼르고 있답니다.
9월 중순까지 열린다하므로, 더위가 좀 꺾이면 가볼 생각입니다.
그림은 도록과 실제 그림이 주는 감동에 차이가 많더군요..
저는 대가들의 좋은 그림을 만나면 그림 한편 보는데 1시간 넘게 보냅니다.
"널 언제 또 보겠니… 그림아"
푸나무
07/08/2013 at 01:49
이주향 저 글 읽으며
저두 오메 잘셨네…했답니다.
눈두 같어요 ㅎ~
한지에 먹 그림이…
마치 바랜 흑백 사진같아요.
소나무에 대한 글
공감이 팍 가구요
summer moon
07/08/2013 at 02:17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동네에 갔을 때, 아직도 그곳에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자주 방문을 하는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웬만큼 ‘잘 생긴’ 소나무들은 죄다 도시로 팔려갔다고…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더니 친구가 설명을 해주더군요.
송승호 화백님의 작품들 정말 마음에 듭니다,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한 작품 구해서 제 집에 두고 매일 보면서 살고 싶을 정도에요.
참나무.
07/08/2013 at 07:02
"널 언제 보겠니 그림아"…ㅎㅎ 한사님 처럼 한 시간은 아니어도
정말 이런 기획전 ‘아주 많이; 고마워하며 즐기지요
세 군데 갤러리의 명작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 그리 흔하겠는지요
괜히 혹평하는 사람들 전 별로 안좋아합니다
비싼 보험금 물며 기획한 전시인데, 목판화와 조각작품들도 있어서 저는 더 좋았어요
아마 큐레이터 고운 따님과 함께시겠지요?
참나무.
07/08/2013 at 07:07
햐 ~~오늘 입추라네요…
건대 근처 볼 일 있어서 돌아오는 시간
비발디 사계중 가을이 흐르더라니깐요…^^
그리고 청담대교 거대한 능소화 담장 지나칠 때
푸.푸.푸… 하였지요…^^
참나무.
07/08/2013 at 07:14
맞아요 못난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지요
어느해였나 제가 소개한 전시회 포스팅 보고
송승호화백 소나무 그림 사신 조블러도 계신답니다
집에 걸어둬도 아주 좋을겁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는 진국이고 순수한 분이라
저도 감히 추천하고싶네요…^^
참나무.
07/08/2013 at 09:34
송뢰 松籟 -‘籟’는 ‘세 구멍 퉁소’를 뜻하는 한자이다 흔히 솔바람이라고 해석하지만
좀 더 심오하자면 솔나무의 울림, 솔의 노래.. 대충 이런 뜻이라지요
김진아
07/08/2013 at 14:49
애기 업어 주신 후, 꼭! 허리 어깨 팔 다리 스트레칭 하셔야 해요.
참나무님..아프시면 안되거든요. ^^
비가 폭우처럼 내린 날..대단했어요.
그런데 전 그 비를 맞으면서 놀고 싶었답니다. ㅎ
곤지암에 있어서 그나마 꾹 참을 수 있었지요.
도토리
08/08/2013 at 03:01
송승호 화백의 소나무는 늘 감탄 꺼리입니다.
우째 그리도 리얼하면서도 아름다지요…?
전시회 직접 갈 수 없는사람 이렇게 눈요기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참 좋습니다..
몸도 맘도 참 부지런하시어 훌륭하십니다…!!!
참나무.
08/08/2013 at 06:34
정말 대단힌 폭우였지요…오죽하면 저녁처럼 컴컴했겠어요
애기 업고난 후 스트래칭…정답인데도 잘 안지켜지더라구요.
내려놓고 토닥거린 후 아기 자는 얼굴 우두커~~니 보기나 할 뿐이지요…^^
참나무.
08/08/2013 at 06:38
음악회건 그림이건 ‘직접’ 보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딨겠는지요
모두들 잘 알면서도 여건들이 허락하지않아서…
저도 인사아트센타 소품전은 정말 우연히 보게되었고
본격 전시회는 아직입니다. 12일까지니까…
제주도 여행 준비로 즐거우시지요..^^
아카시아향
08/08/2013 at 15:18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네요.
고갱의 ‘어디서…’는 삼면 제단화용으로도!
그림 없이 제목만으로도 손색이 없었을 듯 합니다.^^
참나무.
08/08/2013 at 23:02
황색의 그리스도…그림 속 명상하고 있는 듯한 그리스도의
‘그 평화에 조응’이라도 하듯 십자가 주변에 차분히 앉아 있는
흰 두건을 쓴 여인들을 읽어낸 이주향씨도 대단히지요…
이 그림이 서울미술관에 전시된 덕을 우리가 보는 거라 저는 생각했지요…
서울 오늘은 최고기온이 더 올라간다네요
울산은 어제 38도였다는데…
독일 더위도 궁금합니다…향님의 축약을 저는 읽어내질못하야…
揖按
09/08/2013 at 03:02
송뢰 松籟 – 아….이거. 참 오랫만에 들어 보는 단어 입니다.
서울대 입시 국어 문제로 출제 되었지요. 그 뜻이 뭐냐고.. 근데 난 틀리게 대답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송림, 정확히는 솔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때 나는 소리 입니다.
그 바람 소리가 오묘하여 퉁소에서 나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참나무.
09/08/2013 at 04:47
揖按 님은 송뢰에 먼저…^^
그런 에피소드가 있는 줄 몰랐네요
대입 문제로는 너무 어렵지않으셨나요
저도 송승호 화백 덕분에 얼마전에 알게된 단어인데…
이젠 더 확실하게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