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형, 고래잡으러 東海 갔구나 ―소설가 김훈
‘살아가다 보면 슬픔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지만,
슬픔의 손아귀가 너무나 단단하여 우리를 꽁꽁 붙잡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 슬픔 앞에 조금 더 겸허해질 수 있다면
슬픔은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희망의 여린 불빛으로
피어날지도 모른다.우리는 모두 그 누군가의 붓이 되어 세상에
그 어떤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 KBS ‘세상의 모든 음악’ 카이 낭독 (최인호- 인연 중)
한글날 월미도 해질녘 바다를 보고 집으로 오는데
‘세음’에선 고최인호 작가일대기를 들려주었다.
묵직한 상도, 돌아가지 않는 길 등등 말년의 작품은 물론
겨울나그네 별들의 고향도 좋았지만 방송 작가는
가족 일화들이 가장 좋았다며 도단이 이야기 들려주었다
덩달아 나도 내 아들의 어린 시절 기억까지 하게된다
작가가 콜 니드라이를 듣고 있는데 4살된 도단이가
바로 곁에서 울고있어서 왜 우냐 물었더니
‘그냥 슬퍼서…’
그말이 하 대견하여 이담에좋은 대학은 못가도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며 자라길 원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음악 들으며 울지않아도 좋으니 부디 좋은 대학에 갔으면…"
세속적인 아버지의 이기심이 먼저 발동하더라는 심경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일화를 들여주며 콜 니드라이를 흘렸다.
최인호하면 누구나 먼저 떠오르는 음악이 보리수 아닐까
극중여주인공 다혜가 나오는 장면에선항상 보리수가 흘렀다.
뮤지컬, 연극으로도 각색되었다는데그것까지 보진 못했다.
신촌 연희동의 카페 ‘마리아 칼라스’는
영화 겨울나그네 다혜네 집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이후, 잠깐이지만 마리아 칼라스 2층에서
한상우 선생님의 음악 강의도 있어서 몇 번 참석했다
박정희 대통령비보 있던 날 정확한사건
확인 하기 전까지 꽤 긴 시간동안 T.V에선
배경음악으로 쇼팡 장송곡이흐를 때
아들이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 생각안나 찾아봤다
박통 비보가 79년 10.26
아들 생일은77년 12월
아들 어릴 때 바이올린렛슨을 한적 있는데
그 때 선생님이 전공 운운하던 때도 있었지만
남편이 적극반대해서. . .평범하게 자랐다.
도단이가 대학에 한번에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들은순탄하게 처억 붙어 한시름 놓고
입시 후 제일 하고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백 댄서’라 해서 우리 모두를 웃긴 적도 있었다.
‘별들의 고향’이 조선일보에 연재될 때
신문 펼치면 제일 먼저 연재소설부터 찾았다
소설 속 경아는나이도 나랑 같은 47년생인데다
하는 짓거리도 닮은 데가 몇 군데 있어서 더 그랬는지. . .
당시엔 ‘별들의 고향’ 때문에 조선일보를
구독한 사람들도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경아는 집 나섰을 때 가스 벨브 잠구고 나왔나?
다시 들어가 확인하고 혀 차며 나오는 것이나
계단 오르내릴 때 짝수보다 홀수를 좋아해서
홀수로 끝나면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그 버릇은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이어져
홀짝~홀짝~하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더러 있다.
많이 늦었지만 하필 긴 잠수 기간동안
그의 타계 소식을 듣게 되어
동 시대를 살다간 그의 명복을 빌고싶어 . . .
[소설가 오정희가 최인호에게] "연애소설 한 편 쓰고 단풍놀이 가자 했지요"
선생을 선망하던 여고시절
오정희씨
최인호 베드로 형제님. 저녁장을 보다가 선생의 선종(善終)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두망찰한 가운데 문득 마트를 채운 사람들의 활기가, 세상과의 불화, 자신과의 불화로 앙앙불락하던 청소년 시절, 선생을 처음 알았던 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청춘이란 원래 그러한 것인지 어쩌다 명동이나 광화문쯤에서 우연히 부딪히기도 했던 선생 역시 저처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불만과 냉소로 늘 찌푸린 얼굴이어서 지나치고 나면 혼자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지요. 여고 시절, 친구의 형이기도 한 선생은 화려하고 조숙한 재능의 소년 문사였고, 이후 문단의 무서운 신예로, 장안의 이목과 화제를 집중시키며 사랑을 받는 국민적 작가로, 진실한 신앙인으로의 생애를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선생의 젊은 시절, 발표되는 편편이 강한 폭발력으로 문단을 흔들던 소설들을 주시하면서 어느 평론가는 선생의 생물학적 단명(短命)을 우려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그 앞에서는 모자를 벗을 수밖에 없는 천재성, 뛰어난 재능이란 일종의 금기(禁忌)이기도 한 것. 그 비극적 숙명에 대한 두려움이었겠지요. 그러나 선생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평생 뜨겁게 작가의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추악하지만 아름답고 야비하지만 거룩한’ 생과 인간에 대한 사랑, 긍정과 희망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그가 남긴 것의 총화라고 하지요. 작가로서의 50년 세월, 선생은 100권이 넘는 책을 썼고 선생의 붓은 지금, 이곳으로부터 수백년, 천년의 시공간을 아우르고 경계를 지음 없이 광활하게 펼쳐졌습니다. 선생이 일궈낸 그 세계에서저마다의 길을 따라 살고 사랑하고 죽어간 사람들은 또 얼마인지요. 이태 전 초여름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 선생은 종아리가 드러나는 반바지에 운동화, 긴 팔 셔츠에 모직 목도리를 두르고털모자를 쓴 좀 이상스러운 패션으로 함명춘 시인과 함께 저희 집에 오셨더랬지요. 많이 수척해지셨지만 선생 특유의 솔직 담백함과 유쾌함은 여전한 ‘러키보이’였습니다. 그날, 선생은 빨리 병이 낫고 저는 근사한 연애 소설 한편 완성하여단풍놀이, 꽃구경, 달마중 가자고 약속했었지요.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천년을 산다 해도 만년을 산다 해도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의 신비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다 달리고 우리 앞에 놓인 책장을 다 넘기고 우리에게 주어진 잔을 다 비운 후에도 정다운 마음에 깃든 이야기는 살아 있는 법. 제게 문학과 신앙의 길이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우리의 일과 사랑이 바로 기도임을, 그 귀한 비밀을 알려주신 베드로 형제님. 주님의 평화 안에서 편히 쉬소서. |
푸나무
16/10/2013 at 04:22
콜 니드라이와 함께 글 읽는 재미
사람이 그가 남긴 총화…
추악하지만 아름답고 야비하지만 거룩한…
주어진 잔을 다 비워도 정다운 마음에 깃든 이야기는 살아있는 법…
오정희씨도…저렇게 늙으셧구나….
생각….
고맙습니다.
참나무.
16/10/2013 at 08:03
총화…?…
오늘 답글은 저에게 어렵네요…;;
최인호작가를 잘 모르는 이에게 어떤 작가였나 알려주는 추모사라 남겼답니다
제 아이들은 우리세대만큼 그를 잘 모를 듯하여…
오정희 씨는 올 봄 모 작가 출판기념회장에서 뵈온 적 있고
그 전에도 두어 번 더 같은 자리 한 적 있네요
이런 게 뭔 자랑이라고 다 제가 못난탓이지욥..ㅎㅎ
산성
16/10/2013 at 09:19
두분 다 카톨릭 신자라
주보에서 더러 다정한 속살거림 들은 적이 있어요.
미처 느끼지 못햇던 부분을 콕!
아프긴 했지만서도 아,그렇지…의 다정함.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릴지
그런 것도 모르면서 이어가는 인연들.
급 생각이 많아집니다.그지요…
참나무.
16/10/2013 at 10:23
요즘 제가 정신이 좀 없답니다- 언제는 뭐 제정신이었나..ㅋㅋ
오늘 산호맘 생일도 깜빡하고 SKT 생일 서포터 받고서야 아차차~~
울 현진이 화장대 문갑 서랍들 하루에 서른 열두번도 더 엎고…ㅎㅎ
이러면서 뭔 블로그질인데…제 폴립 손전화기 산호맘꺼라했지요
지 아빠는 밖에서 생일 축하 전화했다는데
달 떴습디다…약간 이지러진 …보름이 아마 곧?
어제 펄만 연주 많이 들엇거든요…
초록정원
19/10/2013 at 13:12
아드님이 잘~ 생기기도 했지만, 거기다 똑똑해 보이기만 했다면
아드님 참 잘 키웠네~ 라고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결혼식장에서 아주 잠시 본 거였지만, 감성적으로 따뜻함이 느껴졌었거든요.
역시나~
3살 버릇이었군요~ ㅎㅎㅎ
참나무.
21/10/2013 at 03:00
잘 봐주셔서 고마워요
시어머님 되신 소감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