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어록들과 여행의 추억

남아공살고있는 딸에게걱정되는 그곳 소식들

메스컴으로 먼저 듣고 전화라도 하면

" 여긴 괜찮아요…안심하셔요…우린 한국이 더 걱정스러워요 …"

매번 이런 말 자주하던 딸이 만델라서거 소식 접하고 전화부터한우리에게

"…치안 때문에 신경 많이 쓰고있어요"

이런 전화를 받은 어제 하루 집에서 외출 중일 때도

계속 빅 뉴스로 그의 일생과 어록들이 방송으로 나오데요

저도 제 아이들과 함께했던 여행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서

적당한 사진들 골라봤지만 오래 된 사진들은 대부분 ‘X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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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유니온 궁전에서 프레토리아 시가를 내려다보며

감탄하던 환상적인 자카란다들도. ..

어제 저녁 늦도록 그나마 남아있는 사진들

그를 추모하며 모아봤습니다

그의 어록들과 함께. . .

Ladysmith Black Mambazo – King Of Kings (Live at Montreux 2000)

만델라대통령이 유난히 아끼고 좋아했던 남아공 그룹

‘레이디스미스 마을에서 온 황소 도끼들’이라는 뜻아라지요

독특한 이 그룹을 저도 좋아하는데

드라켄스버그 여행하면서 Ladysmith

이정표로 만나반가웠던 기억도 있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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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 컵 폐막식ㅡ SABC T.V화면을 담은 거라 흐릿하네요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 아프리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1994년 5월 10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한 연설

"나는 여기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천한 종으로 서 있다.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고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내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

-1990년 2월 11일 석방돼 케이프타운 시청 발코니에서 한 연설

"나는 일생 동안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것이 내가 일생을 바쳐 성취하고자 한 이상이다. 필요하다면 그러한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1964년 4월 20일, 내란 혐의 리보니아 재판의 최후진술 중

"피부 색깔이나 가정 환경·종교 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 증오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증오보다 사람의 본성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함이란 감춰져 있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불꽃이다."

-1995년 출간된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여정’

"27년 동안의 옥살이가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고독의 고요함을 통해 소중한 말과 진심어린 연설이 인생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2000년 7월 14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 연설

"지도자로서, 난 과거 음케케즈웨니궁에서 당시 섭정왕이 보여준 원칙을 항상 따라왔다. 난 회의에서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참석자들이 각자 무슨 견해를 가졌는지 들으려 항상 노력해왔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1995년 출간된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여정’ 中-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만델라 어록집’-

“저는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제 삶의 목적이자 성취하고픈 이상입니다. 필요하다면 이 이상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도 돼 있습니다.”

 만델라의 변론은 당시 삼엄한 검열에도 널리 보도됐고 국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가 국제적인 인사로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만델라 석방 운동과 지지 성명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다. 재판부는 같은 해 6월 만델라와 공범 7명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당시 상황을 전한 가디언은 “법정 구속되기 직전 만델라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하지만 법정으로 들어오지 못해 밖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아내와 딸을 마지막으로 볼 기회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만델라는 26년간 복역했으며 90년 2월 11일 석방됐다. 94년 5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또 한 편의 연설을 남겼다.

“남아공의 영웅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전설적인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영웅은 국민 여러분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루어질 때까지는 언제나 불가능해 보인다"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이다."

"분개(憤慨)는 자기가 독약을 마시고 그 독약이 적들을 죽여주기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내 영혼의 선장(the captain of my soul)"이라고 했던 만델라의 몸이 영혼을 따라갔다.

"삶에서 가장 위대한 영예(the greatest glory in living)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lie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고 했던 그는 생전에

"나를 내 성공으로 심판하지 말아달라. 얼마나 많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는(fall down and get back up again)지로 나를 심판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윤희영 기자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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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토리아 유니온 궁전( 일명 만델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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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독립 기념일 아이들 휴교일 때 마침 저도 여행중이어서 같이 가 봤지요

이 때만 해도 병상 소식이 자주 들리고 남아공 사람들의 기도하는 사진들도 보이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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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성자만델라…여행 내내 김정일 소식과

만델라 병환이 주간지 표지에 자주 떴다.

만나는 외국인들은 우리가 코리안 하면 수순처럼

‘김정일 개망나니…걱정’ 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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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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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No.3 …No.1 …아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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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No.1…No.3…No4… 엄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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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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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톤시티 만델라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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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아들과 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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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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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켄스버그 골든게이트 근처의 만델라 하우스들

남아공 여행하다보면 도처에서 만델라 하우스를 만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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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골드 Mandela’s Gold

– 2007년 케이프 타운 커스텐보쉬(KIRSTENBOSH)수목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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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넬슨 만델라의 생일인 지난 7월18일에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만델라의 명언이 실린 짧은 동영상‘더 파워 오브 워즈’(The Power Of Words)가 내걸렸다.


	1996년 7월 대통령 재임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들과 만날 당시 모습이다.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년 7월 18일 ~ 2013년 12월 5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평등 선거 실시 후 뽑힌 최초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그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로서 반아파르트헤이트운동 즉, 남아공 옛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도했다.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선고 받았으나, 26년 만인 1990년 2월 11일에 출소했다. 1994년 4월 27일 실시된 선거에서 ANC는 62%를 득표하여 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TRC는 성공회 주교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참여하였으며,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사하였다. 인종차별 시절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화형, 총살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사면하였으며, 나중에는 경제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 무덤에 비석을 세워줌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저서로 뉴욕 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 있다. 2013년 12월 5일 9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굿바이 만델라" 슬픔에 잠긴 남아공…진정한 인류애 보여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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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사실이 알려지자 각국 정상들은 애도도 올라오고. . .

"지구 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용기 있으며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푸틴 러시아 대통령)

"위대한 빛이 졌다"(영국캐머런 총리)

"만델라 전 대통령은 정의로운 거인이었고 우리에게 감화를 주는 소박한 사람이었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 운동으로 남아공과 전 세계 역사를 만든 우상이었다"(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이 위대한 지도자의 선례가 세계 각지에서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3 Comments

  1. 참나무.

    07/12/2013 at 06:09

    "굿바이 만델라…슬픔에 잠긴 남아공…"

    종이 신문을 이제사 읽었네요..기사 추가했습니다
    길어서 링크만…ㅜ.ㅠ

    http://search.chosun.com/search/total.search?query=%EB%A7%8C%EB%8D%B8%EB%9D%BC&pageconf=total

       

  2. trio

    10/12/2013 at 17:08

    쏘다닌다고 만델라에 대한 추모하는 마음도 못가졌는데… 덕분에…
    딸을 보면 엄마를 안다고 딸이 미인이니까 참나무님도 당연히 미인…
    손녀딸들도 다 예뻐요.   

  3. 참나무.

    11/12/2013 at 11:54

    오늘쯤은 뉴스 보셨겠지요…
    바오로 교황 보다 더 성대하게 치뤄진 장례라지요…

    세기의 장례식이 열린 곳이 월드컵 경기 땐 ‘사커’여서
    저희 가족 모두 다녀온 곳이라 저에겐 쉽게 잊혀지지않을 것같네요
    그 때 만델라 부부… 공식적으론 마지막 모습이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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