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번 어르신도 ‘북궁의 처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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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날씨 푸근 할 줄 알았다

매일 아침 동치미 국물 뜨면서

마지막 국자로 맛 보며 하루 날씨 점치는(?) 버릇이 있다

오늘 아침 맛 본 동치미, 톡 쏘는 맛이 없었거든

아직 베란다에서 익고 있는 동치미…

아니나 다를까 비 오시는 줄 모르고

그냥 검정 옷에 달린 후드 쓰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우산을 들었다

ㅡ흐린 줄은 알았지만 바깥을 유심히 내다보지않아서…

수영장 할머니들 얘기로 오늘 우리동네 보건소에서

무료로 ‘어르신’들 폐렴 주사 놔 주는 날이다

에지녘에 남편은 동네 병원에서 13만원짜리

( 한 번 맞으면 죽을 때까지 효력이 있다는)맞고와서

나보고도 얼른 맞으라 했는데

차일 피일 미루다돈 벌은 셈인가?

그리고 오늘 며느리 월차받아 하루 얻은 보너스

나갈 때는 노천탕까지 마스터 할 예정이었는데

간호원 하는말

". . .오늘 하루 사우나 금하고. . ." 속으로 ‘아나 콩콩’ 하고만다.

신분증 제시 후 독감예방 주사 확인하는 줄

지병 유무…최근에 수술 받은 적 있나…

체온까지 재는 줄까지 두어 번 줄 선 후

주소랑 간단한 몇가지 적힌 A4 용지받아들고

하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몇 번 어르신~~"호명한다

내 번호 144번- 죽을 4자라 둘이네…;;

( 13만원 짜리랑 오늘 내가 맞은 ‘무료…’와의 차잇점에 관해서는

아직 ‘연구’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고…

글쎄 내가 맞은 건 매 해 맞아야하는 건지?

그러면 또 맞으면 될테고. . .

그거 귀찮으면 다음 해에비싼 거맞으면 되고. . .)

겉옷 벗고 한쪽팔만 벗은 이상한 모습들인데도

함무니 하라부지 구별도 없이 순서 기다리는 모습 관찰하다

도우미 여직원 앞에 앉은 나는

"곱기도 하지"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니까

늙은이들 사이의 청춘…얼마나 더 빛을 발하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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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장실 안 풍경

무료 때문인지 화장실도 붐볐다.

자바라 문이 달린 장애자용 화장실에 누가 들어간 줄 모르고

노크도 없이 문이 왈칵 열렸는지

안에서 볼 일보는 이

"으악"

잠시 후 또 다른 이가 들어와 노크없이 또 문을 열었는지

"아악~~정말 왜들이러셔요" 더 큰소리가 들렸다.

ㅡ 깜짝이야 내가 더 놀랐네

"죄송하다’ 가 먼저여야지…

일행인 듯한 다른 할머니 한 분

ㅡ 아따 그래도 그렇지 왜그리 고함은 지른데…뭐가 그리 놀랠 일이라고

두 번째 더 큰 고함 들렸을 때도 그와 비슷한 소리들이 들렸다

대~한민국아줌마들 꼭대기에 앉아있는

아~~~대~~한민국 함무니들…;;

장애자 단 한 분도 없는 화장실

붐빌 때 쓰는 건 당연히 괜찮헌 얘기지만

녹크를 안하냐 이거지

장애자 화장실 안쪽 문 잠금장치 없는 거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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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건소 앞에서 좀 걸으면 우리집까지 오는 버스 2014번이 있지만

비까지 오는데 마침 왕십리역 가는 마을버스가 섰길래

망설이지않고 올라탔다.

청계천 ;청혼의 벽과 해누리 카페 앞 약간 지나버스가 멈춘다

두 달에 한 번 고혈압 처방약 받으러 다니면서

가끔 차 안에서 지나치기만 했는데 이웃 블러거 한 분이

해누리 카페가 장애자들이 운영한다 해서 나도얼른 내려봤다.

베레모를 쓴 처자들 3명+청년 한 명 …

나를 반갑게 맞는다. 첫손님인지. . .

커피 류와 떡볶이 와플이 초록색 칠판에 적혀있다

잠깐 망설이다 카페 라테를 시키고 잔돈 없어 만원짜릴 건냈는데

"2,000원 받았습니다"

청년의 말소리 떨어지자마자 처자 3명이 큰 소리로 웃으니

‘아 만원 받았습니다’ 고쳐말하는데 말이 좀 어눌해보이긴 했다

나머지 처자 3명도 눈빛이 다소 불안해 보이고. . .

(제네들 4명 이 카페 오느라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했을꼬…)

그 청년 미안해할까봐

‘네사람 모두 바리스타 교육받았나’ 물어봤더니 청년은 빼란다

ㅡ그러면 캐셔?

어물어물 웃는데…우유 준비를 못했나보다.

청년이 급히 뛰어나간다

평소대로그냥 아메리카노 시킬걸

500원이라도 좀 더 비싼 거 시키느라…

죄송하단 말 두서너 번 더 듣고

받아 쥔 커피…마시려는데 마을 버스가 와서 그냥 올라탔다

그들은 다른 카페처럼 ‘시럽 넣을까요’

소리도 안 물어 봤고 나 또한정신없는 함무니라

라떼나 카페 오 레…집에서 내가 만들 때는 꿀을 약간 넣는데

참 맛도 향도 없는 커피였다.

그래도…내가 어딜 가면 사람들이 좀 모이는 타입이라

마수걸이 했으니해누리 카페, 오늘 손님 북적이겠지…

맘도 고쳐먹고..맛없는 커피도 맛나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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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회용 커피잔 버리지도 못하고 집에까지 들고왔자

현지니 애비,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못하고 갈 때

가끔 일회용 종이 컵 찾아싸서…

오늘은 ‘북궁의 처첩’처럼 칩거하는 날

검정 옷 차림으로 가방없이호주머니 손 찌르고 나갔으니

당연 디카도 지참하지않아 인증샷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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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하고 담아 본폴립형 손전화로 찍은 사진

컴에 올리는거 몇 번 시도하다 실패했다…;;

아무래도 죽으면 늙어야 될

" 144번 어르신~~"

화장실에서 고함두 번 지른함무니 . . .

. . . . . . .

14 Comments

  1. 揖按

    09/12/2013 at 05:45

    마치 내 발로 걸어 찾아 가듯이 상세하게 동선을 따라 다녔습니다. ㅎㅎ

    백신이나 예방주사나.. 모두 다 균을 조금 우리 몸속에 넣어서 면역력이 생기게 하는데..
    백신 균은 한번 우리 몸에 주입하여 면역력이 생기면, 다음에 들어오는 바이러스 균들이 변종하지 않아서 계속 효과를 보는 것이어서, 한번 맞으면 평생 다시 안 맞지만….

    독/감기 바이러스 같은 균들은 자주 자주 새로운 변종이 생겨 버리니, 기껏 주사맞아서 면역력이 암만 생겨 봐야 이듬해엔 새로 바뀐 변종 균이 오면 효과가 없으니, 매년 변종된 균에 대항하는 새로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거겠지요.

    아마추어의 분석입니다.

    한서암 방문에 대한 답을 제 블로그에 남기신 댓글 밑에 남겼습니다. ㅎㅎ   

  2. summer moon

    09/12/2013 at 06:24

    ‘동치미 일기예보’라 !!^^

    첫줄 부터 읽으면서 많이 웃었어요
    화장실 풍경에 와서는 거의 뒤로 넘어갈 지경까지….ㅎㅎ   

  3. 산성

    09/12/2013 at 07:25

    날씨가 정말 어두워요.
    뉴스들도 하나같이 어둡습니다.
    기운없이 답글 다는 사람도
    괜히 날씨 핑게대며 지나갑니다.
    이제 본격 어두워질 시간
    쪽배같은 달,어딘가 숨어 있으리…하며.

    팔 아프실텐데…
    찻잔 들고 다니시는 정성에 놀라워 합니다.

       

  4. 참나무.

    09/12/2013 at 11:29

    아니에요 전문가 같은 답변이십니다
    많은 도움이 되는데요…^^

    한서암…오늘 대문 그림 자세히 보다 한서암 앞의 연못, 활수당 연꽃 필 때 얼마나 더 장관일까…했거든요
    알려주신 사이트도 가보고 직접 가서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일년에 한번 이상은 꼭 선산에가니까요…^^

       

  5. 참나무.

    09/12/2013 at 11:32

    …오늘의 운세, 종이 신문 일진도 꼭 보는데
    별로 안좋았답니다…;;

    요담엔 절대 장애인 화장실 안가기로 맹세한 날이었어요…^^

       

  6. 해 연

    09/12/2013 at 11:54

    나는 설탕 넣어서 먹었어요.^^   

  7. 참나무.

    09/12/2013 at 12:13

    오늘 순전히 해연 님 때문에..ㅎㅎ

    요담엔 날 잡아 일부러라도 디카 지참하고 청계천 판잣집 꼭 가볼게요
    ‘청혼의 벽’도 내려가보고…   

  8. 도토리

    09/12/2013 at 14:53

    ㅋㅋ. 그니까
    144번 함무니..ㅋㅋ^^*   

  9. 참나무.

    09/12/2013 at 20:03

    하루온종일 어둑어둑… 바느질과 음악에 빠지기…최적이었던…^^

    오늘 같은 경우 개인 컵 더 아쉽더만요
    – 테이크 아웃 커피 싫어하니까… 이도 집착인가…합니다만

    개인 컵 가지고 다니는 거 이젠 거의 습관이되어
    – 우리끼린 가방 다방..ㅎㅎ   

  10. 참나무.

    09/12/2013 at 20:09

    넵… 토리샘~~
    여튼 두 번이나 간떨어질 뻔…;;

    상감마마 기저귀 갈아드리고…저는 잠이 달아나버리고…

       

  11. 조르바

    10/12/2013 at 03:24

    끝까지 읽으면서 웃음 멈출새가 읍네요~
    죽으면 늙어야 될~~~꽈당~@!   

  12. 참나무.

    10/12/2013 at 04:46

    다행입니다 웃으셨다니…^^
    제가 조르바 님께 텔레파시를 팍팍 보냈는데…

    바로 아래 ‘시장에서 배운다’
    조르바 님 생각 마이 했거덩요…^^

       

  13. 초록정원

    10/12/2013 at 23:47

    ㅎㅎㅎ 글제목만 볼 때는 144번이 어떤 클래식 음악 번호인가 했잖아요~

    저도 이제는 어디 가면 어머님 소리 잘 들어요~
    친구더러 그 소리 듣기 싫다니깐
    친구도 그러더라구요.. 언제 내가 너를 낳았냐구 해버릴까보라구요~ ㅎㅎㅎ

    눈 오는 아침에 아침상 차리다말고 웃어요~ ㅎㅎㅎ
       

  14. 참나무.

    11/12/2013 at 11:46

    그래도 초정님은 ‘아직’입니다…
    벌써 그러면 억울하지요..ㅎㅎ
    새 며느님 보신 이후 소식 궁금해요…한 번 올려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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