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rence of Arabia
全 세계 울린 ‘사막의 로맨티시스트’ 영원한 별로 뜨다<– 변희원 기자2013. 12. 17 (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피터 오툴 별세 1932년 아일랜드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오툴은 영국 북부에서 자랐다.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창고지기와 사진가 조수 등을 하다가 ‘요크셔 이브닝 뉴스’의 기자로 일했다.하지만 편집장으로부터 "다른 걸 해봐, 배우 같은 거"라는말을 듣고 해고당한 뒤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연극계에서‘차세대 로렌스 올리비에’란 별명을 얻은 그는 1960년 ‘납치’로 스크린에 데뷔했고, 1962년 세계인의 마음속에 각인된 중대한 역할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로렌스를 맡았다.
사막의 깨끗함을 사랑하고, 아랍인들의 영광을 진심으로 원했던 이상주의적 로맨티시스트. 188㎝의 장신으로 열차 위를 건너뛰거나 바람이 부는 사막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홀로 "아카바, 아카바, 사막을 건너서!"라고 결단하며 뿜어내는 그의 카리스마에 세계는 매혹당했다. 이후에도 ‘겨울의 사자’의 헨리2세,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 등 귀족이나 왕 역할을 주로 맡았다. 오툴은 자신의 연기 과정을 "’마법’과 ‘땀’을 섞는 것"이라고 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2년간 촬영하면서 그는 베두인 텐트에서 자고, 아랍어와 낙타 타는 법을 배우며 베두인 문화를 익혔다. 오툴은 "나는 매우 육체적인 연기자"라며 "나는 모든 것을 사용한다, 발가락, 이, 귀 등 모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단숨에 스타가 된 후 오툴은 한동안 방만하게 살았다.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와 함께 베이루트와 카사블랑카의 카지노에서 돈을 탕진했고, 70년대에는 알코올중독과 위암을 겪기도 했다.
상복은 별로 없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여덟 차례 올랐지만 ‘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최다 지명자’로 꼽히기도 했다. 2003년 아카데미가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줬을 때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내 처지는 언제나 신부 들러리(bridesmaid)였지, 신부(bride)였던 적은 없다. 나는 이제 죽음이 우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할 나만의 오스카를 갖게 됐다."
How to steal a million
윌리엄 와일러 감독작품, 한국제목 기억이 안나네요…;;
<마지막 황제>(1988)
트로이(Troy 2004),
프리마우스역으로 출연하여
부성애 연기를 보여줄 때충격이었지요…
&
줄리 크리스티…;;
. . . . . . .아 옛날이여. . . .
내년 개봉을 앞둔 ‘알렉산드리아의 캐서린’
피터 오툴(Peter O’Tool) 유작이나기다려야겠어요. . .
Katherine of Alexandria (2014 )
P.S
목소리가 멋져서 성우이기도 한 그는
라따뚜이 (Ratatouille, 2007)에 음식비평가 이고역으로도 출연했지요
픽사여서 아주 재밌게 본 요리에 관한 에니, 안보셨으면 강추!!!
P.S. 2.
1960년대 지방 소도시 그 극장은 영화 두 편을 연달아 틀어주는 동시상영관이었다. 필름이 전국을 돌고 거기까지 오느라 낡아빠져 스크린에 늘 비가 내렸다.그나마 걸핏하면 끊겼다. 영사실 아저씨가 부랴부랴 필름을 잇는 사이 암흑에 갇힌 사람들이 손가락 휘파람을 불어댔다.
[만물상] 올해 영화 관객 2억명<–2013. 12. 18 (수)’ –오태진 | 수석논설위원
해 연
17/12/2013 at 11:40
영화가 시작 되며 아지랑이 자욱한 사막위를
구름위를 날듯 말을 타고 멀리서 닥아 오던 피터 오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련합니다.
피퍼 오툴과 폴 뉴먼은 깊고 푸른 눈 때문에 좋아했습니다.
이제 모두 갔네요.
참나무.
17/12/2013 at 14:54
기억합니다 저도…그 장면…사막에선 영웅이었던 피터 오툴,
첫 장면 시작하기 전 자전거 타고가다 어처구니없이 죽는 거지만 …
데이빗 린 감독 영화들은 참 대단했지요
해연님도 폴 뉴먼 좋아하셨군요
아~~옛날이여…한 번 더 복창했네요…^^
해군
17/12/2013 at 16:04
대배우 한분이 또 가셨네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다시 봐야겠습니다
<백만 달러의 사랑>이네요
summer moon
17/12/2013 at 18:10
어떤 영화에 출연하든 그가 단연 돋보이던거!
저는 그가 캐터린 햅번(Katharine Hepburn)과 함께 열연했던 영화
‘The Lion in Winter’도 많이 좋아해요.
참나무.
18/12/2013 at 00:32
참 많이 좋아했던 배우인데…
러닝타임 근 3시간반이지만 다시 컴컴한 개봉관에서 보고싶네요…
아라비아의 로렌스…그 모습이 지나치게 많이 인식되어
최근에 가끔 보이던 하라버지 모습 인정하기 쉽지않았어요…배우들의 장점이자 단점…;;
백만달러의 사랑이었군요…유쾌한 영화로 기억됩니다
햅번도 전성기였나요…
음악 산책…갤러리 돌아다니다 낯익은 브람스 커피잔 만나 반가웠어요^^
언젠간 한 번도 가고싶은 …
‘영화세상’ 다음 프로도 확인해봐얄텐데?
참나무.
18/12/2013 at 00:34
썸머문도 영화 많이 보는구나…
캐더린 헵번도 ‘좋아하는…’ 에 속하는 배운데
제가 못 본영화군요…나중에라도 찾아볼게요
정말 독특한 캐릭터의 성격배우였지요
참나무.
18/12/2013 at 00:35
라타투이도 강추에요…정말 그냥 흘리기 아까운 영화여서…!
제 포스트 어딘가에 후기 올린 기억도 나는데?
정확하진않네요???
백자도요
18/12/2013 at 02:05
‘Lord Jim’을 빼놓다니요…
이쯤에서 성탄 인사 떨어트립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은혜로다~
참나무.
18/12/2013 at 02:11
허윽 ~~ ‘로드 짐’도 있었지요 참…;;
성탄 인사 ‘아주’ 고맙게 받습니다…^^*
내년 한 해도 건승하시길 빌겠습니다아~~
참나무.
18/12/2013 at 02:36
오늘 만물상(오태진) 에도…
*
1960년대 지방 소도시 그 극장은 영화 두 편을 연달아 틀어주는 동시상영관이었다. 필름이 전국을 돌고 거기까지 오느라 낡아빠져 스크린에 늘 비가 내렸다. 그나마 걸핏하면 끊겼다. 영사실 아저씨가 부랴부랴 필름을 잇는 사이 암흑에 갇힌 사람들이 손가락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른들은 객석에 앉은 채로 담배를 피웠다. 발밑으로 쥐가 기어다녔다. 구석진 통로엔 지린내가 났다.
▶한참 영화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스크린이 환해지곤 했다. 극장 직원이 입구 휘장을 열어젖히고 "○○○씨 면회요" 외쳤다. 관객 중에 누군가를 가족이 찾으러 왔다. 사람들은 영화 보다 말고 합창하듯 소리쳐 대꾸했다. "월남 갔다~." 그러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킥킥거렸다. 어릴 적 동네 극장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만큼 낭만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극장과 영화에 관한 원초적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만물상 일러스트
▶중학교 땐 단체 관람을 자주 갔다. 입장료를 절반만 내고 ‘벤허’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를 봤다. 조무래기들이 ‘로렌스’나 ‘지바고’의 복잡한 시대 배경을 알 리 없었다. 이상한 영웅 로렌스를 연기한 영국 배우 피터 오툴만은 오래 남았다. 투명하도록 푸른 눈으로 면도날같이 예리하고 이중성격자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했다. TV가 ‘로렌스’를 ‘벤허’ ‘지바고’와 함께 명절마다 단골로 내보내면서 오툴은 더욱 친숙했다.
▶피터 오툴이 여든한 살로 떠났다. 그는 철없던 ‘할리우드 키드’ 시절의 한 상징이었다. 매끈한 복합상영관 세대는 모를 옛 극장 풍경이 떠올랐다. 어제 아침 신문에 또 하나 영화 소식이 실렸다. 작년 1억9500만명이었던 극장 관객이 처음으로 올해 2억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한국 영화가 작년에 이어 1억 관객을 넘기며 이끌어낸 기록이다. TV·비디오·인터넷이 등장할 때마다 극장이 시들 거라고들 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안방에서 척척 보는 시대에도 극장은 더 붐빈다.
▶몇 년 전 나이 쉰이 다 돼 극장에서 ‘레이’를 보며 울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보던 아홉 살 때처럼. 레이 찰스의 흘러간 노래들 ‘올디스(oldies)’와 함께 그의 굴곡진 삶을 따라가며 소름이 돋았다. 옆자리 아내에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중에 집에서 DVD로 ‘레이’를 봤다. 감동이 영화관 반의반도 안 됐다. 사람들은 어두운 좌석에 몸을 묻고서 울고 웃는다. 극장은 관객과 영화를 한몸으로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영원한 ‘꿈 공장’이다.
dhleemd
18/12/2013 at 06:06
몇 십 년 전 과거가 눈 속에 그대로 냉장되어 있군요. 일찍 한국을 떠나신 분들을 보면 예전 외할머니 세대의 수수함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9세에 ‘저하늘에 슬픔이’를 보셨다면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오툴은 Toole의 아들(Son of)이란 뜻이랍니다. 마지막황제, 프리아모스왕 그리고 줄리 크리스티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였군요. 닥터 지바고 와 아라비아 로렌스는 DVD로 가지고 있답니다. 부는 축적하기보다 유지 관리가 훨씬 더 어렵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즐거웠습니다.
dolce
18/12/2013 at 06:43
" 껌이나 카라멜 " 소리도 많이 들었지요. 뉴스에서 레슬링 선수 김일이 불고기를 국수먹듯이 먹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ㅎㅎ 어릴 때 서면 태화극장 옆에 살아서 지옥문이 제가본 첫영화였던 것 같아요….대학 합격후 동명극장에서 러브스토리를 필두로 카타리느 드늬브의 전성시대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땐 선후배들이랑 몰려다니며 술먹는 일 아니면 영화보는 것이 다였네요. ㅎㅎ 정말 아 옛날이여…. 후후
참나무.
18/12/2013 at 07:03
dhleemd 님 첫 방문, 첫답글 감사드립니다
…영화시작하기 전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 들으며 가슴에 왼손 얹고
‘대한 늬우스’ 본 우리 세대들이라 저는 아직도 컴컴한 개봉관을 고집하지요
Toole의 아들이란 뜻이었군요…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배우들 타계 소식 들으면서 ‘나도 언젠간… 그런 기분이 든답니다
줄리 크리스트…아킬레우스(브레드 피트 분) 어머니로 카리스마 넘치는 역이었지요
새 글 보이면 자주 가서 배우겠습니다.
참나무.
18/12/2013 at 07:08
저는 엄마따라 현대극장을 자주 다녀다녔어요
‘자상에서 영원으로’ 몬티를 비롯
‘슬픔은 그대가슴에’ 또 들장미…스와니강의 추억 등등…
오태석 위원이 울면서 본 영화..레이(.’레이 찰스’ 일대기를 다룬 영화)
저도 울면서 본 경험이 있어서 더 와닿던 영화가 옮겼답니다
.레이역 배우가 레이를 연기한 게 아니라 ‘레이’ 로 변신한 것처럼
걸음걸이까지 닮아서 더더욱…
실제보단 아름답게 포장된 "아~~옛날이여~~"
요즘 자주 입에 달고사네요
돌체님 합창하시는 모습 동영상으로 볼 순 없을까요…^^*
dhleemd
18/12/2013 at 07:09
하루 한시간씩 햇살 아래서 걷도록 하십시요.
우리들은 100세이상 건강하게 살 수 있답니다.
참나무.
18/12/2013 at 07:19
네에 깊히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걷는 건 좀 잘한답니다…^^*
‘햇살아래서’ 방점 찍으면되지요!!!
비풍초
18/12/2013 at 08:06
상복이 없었다는 변기자의 말은 정확치 않은 표현입니다. 아카데미상은 자고이래로 외국작품에 상을 잘 주지 않습니다. 아카데미상은 미국을 위한 미국인에 의한 미국의 상일뿐이라는게 제 개뿔주장입니다. 피터오툴은 표정이 좀 심각한지라 어떤 배역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무슨 연기라 할 것도 없구요.. 그 영화자체가 매우 지루한 영화구요.. 전 굿바이 미스터 칩스에서의 피터오툴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받았지요… 그리고.. 피터오툴이 트로이에 나온 건 안타깝습니다..
참나무.
18/12/2013 at 08:27
트로이…상업영화라고 일부에선 좀 말이 많았지요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첨엔 다른 배우가 캐스팅 됐다지요
3시간 반,거실이나 안방에서 전화오는 거 받으며 보기론 적당치 않은 영화다 싶습니다만
그의 대표작 내지는 출세작(?)이란 보편성도 무시못하지싶네요…^^
비풍초님의 아카데미상 의견 저도 존중합니다
– 굿바이 칩스도 찾아볼게요…^^
트로이에선 그의 노인 모습이 그저 놀라워서…;;
피터 오툴… 좋하하시는 것도 들켰습네다아~~^^
dolce
19/12/2013 at 18:43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딱 한번 영화보러 갔다가 김중화 국어선생에게 걸려서 교무실에서 벌섰던 기억이 나네요. 대영극장에서 저 하늘에도 슬플이 (?) 이었던것 같아요. ㅎㅎ
중창단 동영상 옛날 테이프라 이젠 쓸모도 없이 되었네요. ㅎㅎ
성가대 합창은 멀리서 찍어서 얼굴도 안나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