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검은 달항아리 그 이후 (흑유명가 가평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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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롯데갤러리 14층이다- 롯데갤러리는 사진촬영을 허락해서 참 좋다

한 남자가 ‘아주’ 자세히 작품들을 보고계셨다.

사진을 찍으니 오히려 피해주시면서…

( 음… 도자기를 굉장히 좋아하시나보다 메너있는 분이네…)

나도 고갤 약간 숙이며 조용히 지나쳐서 아랫층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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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은 생활도자들이 많았다

테이블 한 가운데 이 작품들 찍고있는 날 보고

아주 친절하게 어떤 처자가 약간의 설명을 해 준다

자기가 만들었다며…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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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사 벽을 보니 아버지랑 두 따님 사진과 작가 이력이 예사롭지않았다

난 오로지 서울아트가이드 보면서

가평요? 왠지 낯익어서간 것뿐인데…

“그러면 14층 남자분이혹시 아버님?”

“네에…맞습니다”

조용히 웃는 모습이 참 곱기도 했다.

(오죽하랴 아버님 대를 이어 도자를 만드는 처자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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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나?

청평의 카페 경춘선 한쪽방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 본 기억이 있어서

가평엔도요터가 많나보다? 물음표 달고둘러보는데

정말이지 문외한인 내 눈에도 작품들이 예사롭지않았다.

대작에서부터 작은 소품들까지

조금씩 다른 빛과 매끈한 철 느낌…각기 다른 질감까지

토스카 ‘오묘한 조화’가 얼핏 떠오르기도 했다.

사진으로 담아내질 못해서 정말 유감 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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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재워놓고 다시…계속…)

돌아와 찾아보니 예삿분이 아니다

온갖 신문에 다 실려있고

( 조선일보에도 물론 – 나 오늘 신문도 저녁따베 읽은 거 들켰네…쯧 )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좀 더 잘 찍을 걸…;;’

가평요 작품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많은 분들 직접 가셔서 그 오묘한 빛과 자태에 취해보시기를

흑유명가 가평요

– 검은 달항아리 그 이후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 갤러리 13~14층/ 2.5~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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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올리고 저녁 준비하며 카페 경춘선으로 전화를 해봤다

청평 경춘선 카페 안쪽에서도 만난 기억이 있어서

혹시다른 아는 분인가싶어

나: 경춘선 카페에서 내가 봤던 작가 이름이 뭐지요

경춘선 주인장: 청곡 김시영씨 애들 아빠 산악회 회원이고 진국인 분입니다

나: 어머나~~ 어제 암것도 모르고 다녀왔는데…두 따님도 같이 한다는데요?

경춘선 주인장: 맞아요~~얼마나 열심이신 분인지…두 따님까지도…

( 그랬구나 어쩐지 …)

경춘선 주인장은 모르고 있었다.

혹시 지인들께 부담줄까봐 전시회 하는 것도 잘 알리지 않으신단다.

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인정한 ‘아주’ 유명하고

이번 전시회는 일반인들께 소개하는 차원이라고 검색하며 알게된다

정말이지 난 또다른 가평요인줄 알았는데- 이를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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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 추천사 좀 더 자세히 읽어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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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구하러 온 산 누비던 세 父女, 黑磁(흑자)를 되살리다<–2014. 2. 6 (목)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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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못하는 구두

얼마 전에 본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위험하다’ 가 또 생각나는 것이다

영화는 다큐 형식인데한 남자 나레이터가

‘침대 위에서나 다릴 꼬고 오로지사진촬영을 위한 구두도 있’ 다 했다

묘한 제스춰랑 ‘절대로’를 강조하며…^^

하이힐의 기원은 16세기 오물로 더럽혀진 진창길 때문에 생겼다는데

여인들은 우아한 드레스 안으로 감춰지는 경우가 많아

보여지는 남성용구두들이 더 화려하고 멋지게 제작되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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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로 만든 구두를 보니요즘은 구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쵸핀(Chopine) 생각이 왜 안났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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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신을 수 없는 하이힐’

P.S:

난 너무 떠든다…;;  <– 아 참 못말리는 나으 건망증

혹시 찾아보니 경춘선 다녀와서 포스팅 한 게 있다

경춘선 주인장 진선생께서 술 드시고 와도

꼭 플로렌스의 추억 듣고 2층 살림집으로

올라온다는비화도들었던 날이었나?

봄은 언제오려나 가볼 곳 또 한 군데 더 늘었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꽃들과 같다.”

“검은 대지에 피어난 꽃”…흑유명가 가평요展

국내 유일의 흑자도예가 청곡 김시영이 만들어내는 흑자를 두고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 말이다. 검은빛 안에 오묘함을 머금은 흑자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꾸준히 발전하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라는 평가를 받지만 국내에서는 고려 시대 이후 사실상 맥이 끊겼다.

청자나 백자 가마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다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1천300도가 넘는 가마 앞을 지키며 기도 점막이 모두 말라 무호흡증으로 생사를 오가는 위기에 처하면서도 잊혀진 흑자의 전통을 끄집어낸 것이 바로 김시영이다.

용산공고 금속과를 거쳐 연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간 김시영은 산악부에서 태백산맥 29박30일 종주를 하다 우연히 화전민 터에서 검은 도자파편을 발견한다. 대기업 입사 후에도 검은 도자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도자기 시험연구소 등을 거치며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결국 김시영은 1989년 고향이자 조선 중기 양질의 흑자 산지인 가평에 가마를 짓고 흑자에 투신하게 된다. 10여년간의 연구 끝에 흑자를 재현한 김시영은 1999년 한 분야 최고의 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에 선정됐다. 또 일본 경매사가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에서 찻잔 하나가 100만엔(한화 약 1천만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유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흙을 채취하러 이산 저산을 누볐던 두 딸 자인 씨와 경인 씨도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소공동 롯데갤러리 본점은 오는 5일부터 ‘흑유명가, 가평요 – 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전을 열고 이들 세 부녀의 작품 7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2월17일까지. ☎ 02-726-4430.

박종인기자의. . .

[Why] 연금술사, 검은 도자기와 두 딸을 빚다 2010. 6. 26 (토)

‘흑자(黑磁)’ 명인 김시영…이대,서울대 딸들에게 “멍청해져라” 하는 까닭?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칠흙처럼 검푸른 흑유 도자기를 만드는 가평요의 ‘흑자(黑磁)’명인 김시영 장인(56). 그는 이대(첫째), 서울대(둘째) 출신의 두 딸에게 수시로 “멍청해져라”고 한다. 명문대를 나왔거나, 졸업반인 딸들에게 왜 그런 엉뚱한 주문을 하는 걸까? 청곡 김시영 씨는 “흙을 만지는 도자기가 좋아, 다니던 대기업(현대중공업 등)을 그만두고 지난 25년간 흑유 도자기(흑자)를 빚어왔다. 남들은 좋은 직장 때려치고, 생계도 까마득한 길로 나선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참으로 막막하고, 외롭고, 힘든 길이었다. 그런데 그 척박한 길을 걷는 내 모습을 본 두 딸마저 전공(서양화, 조각)이 아닌, 도자기의 길을 택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인내하며 파고들어야 하는 작업이라 수시로 ‘멍청해져라’고 말한다. 약아서는, 급하게 무언가를 이루려해서는 결코 끝까지 가지 못하니까 말이다. 흑자는 그렇게 힘든 길이다”고 했다.

흑유명가 가평요의 김시영 작가와 딸 김경인 왼쪽, 김자인. [사진 취재=윤병찬 기자]

김 씨가 두 딸(김자인, 김경인)과 함께 ‘흑유명가, 가평요–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전을 연다. 지난 5일 서울 소공동의 롯데갤러리(롯데백화점 본점 12층, 14층)에서 개막돼 오는 1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고혹적인 검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다양한 흑자들이 나왔다. 흑자달항아리, 차도구, 다완, 생활자기 등 흑자 40점과, 두 딸의 작품(김자인의 도자기구두, 김경인의 사과작품)까지 약 7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청곡 김시영은 가평군 청평에서 고려 이후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한 흑자를 빚는 ‘흑자도예가’다. 흑자는 다채로운 유약과 불의 요변(窯變)에 따라 깊은 검은색을 드러내는 도자기를 가리킨다. 흑자는 유약도 중요하고, 불의 세기와 조절도 동시에 중요하다. 흑자 장인을 일컬어 ‘불의 연금술사’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땅의 흑자는 고려시대에 번성해 조선말까지 이어져오며 오자기, 석간주 등으로 불렸다. 고려에선 한동안 흑자가 왕실과 세도가들 사이에 각광받았으나, 조선에 들어서는 백자 가마터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며 그 명맥만 간신히 유지됐다. 근대 현대도자가 유입되면서는 아쉽게도 거의 쇠퇴했다.

 

김시영 작가가 대표작인 흑유 ‘공작’ 항아리와 함께 했다. [사진 취재=윤병찬 기자]

물론 기원전 4-5세기 제기로 쓰이는, ‘흑도’로 불리는 검은 도기가 이 땅에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청자 가마에서 흑자를 더러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흑자는 청자나 백자 가마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공통점이다. 반면에 중국일본에선 흑자를 도자기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자기로 평가한다. 특히 일본에선 흑자의 가치를 매우 높게 본다.

아울러 흑자는 단순한 흑색, 적갈색 도자기에 그치지않고, 검은 색 속에 ‘요변’이라 하여 무늬와 색상을 다채롭고 오묘하게 표현하며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이 매력이다. 특히나 송나라의 요변천목은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청자, 백자, 분청과는 달리, 흙과 불로 도자 표면색상과 무늬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게 표현되기에 더욱 신비롭고 환상적인 것이다. 게다가 그 희소성, 우연성 때문에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도자의 영역이 바로 흑자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흑자가 흑색, 또는 적갈색을 띄고 있어 ‘음색’이라며 오랫동안 터부시해왔다. 백자를 선호하던 조선시대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그로 인해 일상에선 쓰기 힘들었고, 수요가 없다 보니 제작과 실험 또한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흑자만을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가평요를 이끄는 청곡 김시영이 유일하다. 청자나 백자, 분청을 작업하며 흑자를 일부 시도하는 작가들은 있지만, 흑자만 고집하는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흑자는 일반 도자기보다 높은, 섭씨 1300도이상의 고온소성을 해야 한다. 예민하고 미세한 불의 변화로 도자의 표면이 안개같이 캄캄한 빛이었다가, 어느 순간 영롱하면서도 오색찬란한 빛과 무늬로 바뀌는 것이 흑자의 매력이다.

흑유명인 김시영의 달항아리 작품들. [사진제공=롯데갤러리]

공작새가 활짝 깃털을 펼쳤을 때의 그 숨막힐듯 아름다운 자태, 우주 속에서 별무리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검은 하늘을 뒤덮는 듯한 형상 등은 오로지 흑자를 통해서만 표현이 가능하다. 청곡의 세로로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달항아리, 꽃무리가 현란하게 핀 다완 등이 좋은 예다. 특히 청곡의 ‘공작’ 달항아리는 자연과 불, 그리고 작가의 땀방울이 거의 완벽하게 결합된 압도적인 작품이다. 섬세하면서도 신비로운 표면의 무늬와 빛깔은 감상자의 발길을 붙든다. 그러나 이같은 명품 흑자들은 수백번의 작업 끝에 한점 탄생할까 말까 하다. 흑자의 길이 힘들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시영은 서예가였던 부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먹의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검은 먹의 세계가 그의 일상 속에 스며든 것이다. 이후 1974년 용산공고 금속과에 들어가 용광로의 화염을 접하게 됐고, 연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물질을 만들려 했다. 대학시절 서클활동으로 산악부에 들어간 김시영은 산을 타다가 흑자와 결정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태백산맥 29박30일 종주 중, 화전민터에서 검은 도자파편을 맞닥뜨린 것이다. 그 깊고 오묘한 검은 색은 그의 가슴과 뇌리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흑자에 대한 열망은 결국 사표를 던지게 했고, 도자기시험연구소에서 흙과 불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이후 이천의 세라믹회사의 공장장이 돼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으로, 노(老)도공을 찾아다니며 전통도자의 흙과 불에 대한 연구도 시도했다.

청곡은 “중국과 일본의 흑자자료를 탐구하고, 그들의 재료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하기도 했다. 과학도 출신이었으니 과학적으로 흑자를 풀려한 것이다. 그러나 흑자의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검은 빛깔을 내는 철분은 카멜레온같기에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고 했다. 결국 1989년, 김시영은 고향이자, 조선중기 양질의 흑자 산지인 가평에 작은 가마를 짓고, 흑자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그는 말한다. “아무도 가지않고, 누구도 알지못하는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 길이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였다. 대학시절, 유럽 알프스의 한 산자락을 등정하던 중 조난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그 고립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나온 악바리 근성이 없었다면 아마도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또 불과 흙에 대한 무수한 실험과 연구, 과학적인 훈련 등도 흑자의 재현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흑자명인 김시영의 ‘요변천목 다완’ [사진제공=롯데갤러리]

미답봉을 오르듯 청곡은 호기심과 경외의 마음으로 온갖 유약을 바꿔가며, 가마의 로드를 수정해가며 십년 만에 드디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흑색과 적갈색이 나는 흑자를 재현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천목’도 마침내 구현하게 됐다. 더 나아가 그만의 독특한 색상을 창작해 신묘한 빛깔과 무늬를, 흙과 불로 만들어내고 있다.

흔히들 검은 도자기 일체를 흑자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흑자는 검은색이 포용한 다채로운 색상이 요변(窯變)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 깊은 색상을 불러내는 ‘불의 마법’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청곡이 빚어낸 흑자는 모든 것을 빨아들여, 검고 깊은 블랙홀 속에서 삼라만상의 색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 차이점이다.

평론가들로부터 청곡의 요변 흑자는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오묘하고 아득한 꽃들 같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명장제도의 전신이 된, 한 분야의 최고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에 1999년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흑자는 일본에서 먼저 평가받은바 있다. 지난 90년대 일본의 경매회사들이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에선 그의 작은 찻잔 하나가 100만엔(약 1000만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일본 도자기 애호가들은 앞다퉈 그의 흑자다완 등을 수집한바 있다.

하지만 김시영 흑자의 길은 여전히 험하다. 힘겹고 고된 작업이어서 배우겠다는 젊은이들도 없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이 또한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흑자의 일인자로 꼽히지만 대중에겐 흑자도, 청곡 김시영 장인도 무척 생소하다. 고진 땀방울로 일군 작품 보다는, 대중에게 친숙한 유명작가 작품이 더 각광받는 시대이니 말이다.

다행히 두 딸이 아버지의 길을 잇겠다고 나서 청곡은 힘을 내고 있다. 각종 과학적인 데이터와 유약및 흙, 불의 노하우를 전수 중이다. 큰 딸인 김자인 씨는 ”아버지가 우리를 어렸을 때부터 무척 혹독하게 기르셨다. 도자기용 흙을 찾기 위해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산을 자주 탔는데 엄청나게 무거운 흙을 매고 하산하느라 탈진한 적도 여러 번이다.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강훈련이 오늘 우리를 만든 것같다”고 했다.

청곡은 흑자를 쓰임이 있는 공예품과 찬란한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은 물론, 도자회화및 도자조각으로 작업영역을 확대 중이다. 조소를 전공한 두딸 김자인(28, 이화여대 조소과 졸), 김경인(24, 서울대 조소과 4년) 또한 아버지의 이를 이으며 다채로운 흑자 도자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흑유명가 가평요전-검은달항아리와 그 이후”에는 고려시대 이후 맥이 끊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나라 흑자를 재현한 김시영의 초기작부터, 오랜 연구로 탄생한 작가 고유 유색의 김시영 흑자, 그리고 흑자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2세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청곡은 “흑자는 백자, 청자와는 또다른 미감을 선사한다. 보면 볼수록 그 깊고 검은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멋장이들은 원색을 입다가 결국엔 검은색으로 귀결되지 않던가. 도자기 분야에서도 흑자의 신비롭고 멋진 세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됐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흑자가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갔으면 한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02-726-4430 yrlee@heraldcorp.com

9 Comments

  1. 벤조

    07/02/2014 at 06:42

    저는 몇년 전에 우연히 검은색 나는 티팟을 샀는데..그거 혹시? ㅎㅎ
    마치 쇠가 섞인 것 같은 느낌이예요.
    부녀가 같은 일을 하니 너무 보기가 좋습니다.
       

  2. 참나무.

    07/02/2014 at 07:25

    전 좀 이샇한 일이지만 도자전에 가면 항상 일본으로 끌려간 슬픈 도공들이 생각나
    이유모를 비애감이 바닥에 깔리곤 하는데
    이번에 다녀온 전시회는 그런 맘이 하낫도 없었답니다.
    세 분 모두 긍지를 가지고 평생을 바칠 준비가 된 듯한 분위기여서

    제가 물어 본 다관 하나는 60만원… 첨엔 깜짝 놀랬는데
    맨 아래 연합뉴스 기자가 쓴 기사 읽어보고 …고갤 끄덕이게되더군요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요!

    아번 전시를 계기로 흑자의 저변확대를 빌어보는 마음입니다.
    전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배운 게 많답니다

    검정 티팟 아껴사용하셔요…^^*
    깊은 의미의 겨자씨 이야기 잘 읽었어요
    많이 고맙습니다 벤조님~~

       

  3. 07/02/2014 at 09:24

    달항아리를 좋아하긴 하는데 ‘흑유자’! 참 매력있네요.
    ‘그 입이 천근 바위보다 무거워서 무서우리만치 의젓하다!’고….
    멋진 포스팅에 감사드리며. 잘 보고 갑니다.   

  4. 참나무.

    07/02/2014 at 10:31

    정양모 관장 추천사까지 다 읽으셨군요!

    조선일보 why..잘 읽는 기산데 어쩌다 놓쳤나봅니다
    이번 전시회 다녀와 찾아봤습니다 ‘흑유<黑釉>’ 匠人 김시영’에 관한 기사 읽고
    정말 굉장한 분이란 말 밖에 안나오네요
    부인마저 저세상으로 보내고…두 딸과 한 길을 걷는 모습 눈물겹기까지…

    발로 쓴 잡글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건반 위로 통통 튀는 음표들과 장미그림…그리신 강 님도 대단하셔요
    피아노 전공하셨고 후학을 가르치시면서 그림 전시회까지 하시다니

    곽아람 기자 리뷰도 참 잘 쓰셨더군요
    흑유 때문에… 귀한 첫 인사 건내주셔서 다시 감사드립니다
       

  5. 선화

    08/02/2014 at 05:57

    저는 제주에 와서 항아리를 사러 다녔는데 우연히 지나다 직접굽는곳을 발견
    들어가 물러보곤 그 가격에 깜짝 놀라 그냥 나왔습니다
    첨에 울집 매실 3나무에서 60 키로 정도 매실을 따서는 매실청과 매실주를
    담그려 항아리를 찾던중….무슨 전시회도 하시는분인데
    저런류도 아니고…그냥 무지한 제가 보기엔 똑같은 독? 이였는데…ㅎㅎ

    암튼 그분 말씀을 듣고는 그 자부심이시라면~ 그렇게 받으셔도…
    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나왔습니다!!   

  6. 참나무.

    08/02/2014 at 08:39

    매실청과 매실주 담는 항아리라면 우리가 예전에 쓰던 장 항아리같으거가 좋지않나요
    관상용 작품보다는…
    독성 유약 바르지않은 것만 피하시고…옛물건 파는데도 잘 찾아보셨으면…^^

    근데 매실이 그렇게나 많이 열려요…부럽습니다 정말로!

       

  7. 선화

    08/02/2014 at 13:57

    그래서… 5일장가서 3만~5만원주고 사다가 거기다 매실주 엄청~ 담가 놨습니다
    술은 적게 매실은 엄청~~ㅎㅎㅎ
    그래선지… 색깔도 좋고 먹어보니 쥑입니당~~ㅎㅎ
    나중에 제주 오세요 맛 보일테니… 혹? 술 전혀 못하시는거? ( 제주 버젼)
    제주어는 거의 반말투라서 솔직히 매력을 못 느낍니다

    매실 정말루 많이 열려요~~^^   

  8. 참나무.

    08/02/2014 at 15:16

    아 그러셨군요…그럴 기회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헤럴드 경제 기사 추가했습니다
    무거워서 클났지요…   

  9. Pingback: 2.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 -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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