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까치꽃과 첫 인사
2002년 2월 25일 일본 나고야의 300석짜리 소극장에서 90분간 공연을 했다. 객석에는 단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2000년 무렵 한국의 대학에서 강의하며 내 공연장에 빠지지 않고 찾아오던 일본인 이나가키였다.
당시엔 얼굴과 이름만 아는 정도였고, 일본으로 돌아갔는지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이나가키의 근황을 알게 된 건 2002년 초였다. 그의 친구들로부터 "이나가키가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나고야로 와서 공연을 해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돼 급하게 나고야 공연 일정이 잡혔다.
공연 전날 병실에 누운 이나가키와 재회했다. 비쩍 마른 그는 간신히 숨 쉬고, 연방 가래를 뱉으며 "이 상태로는 도저히 공연장에 못 갈 것 같다"고 힘겹게 말했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멋지게 공연하겠다"고 약속했다.정작 주인공이 객석에 없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날 낮부터 리허설을 했다.그런데 공연 두 시간 전 누군가 극장에 들어섰다. 부인과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 들어온 이나가키였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걸어와 앞좌석에 앉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스태프에게 "바로 공연에 들어갑시다. 딱 한 사람을 위해!"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그를 위한 공연이 리허설 대신 열렸다. 전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정정한 모습으로 자신만을 위한 공연과 이어 열린 본 공연까지 감상한 뒤 혼자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퇴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것, 그리고 공연 끝 무렵 "오늘은 이나가키의 날이다. 손뼉을 쳐달라"고 부탁한 것뿐이다.
줄리아니 콘체르토 No.3 F Op. 70 : 2악장, 빼빼 로메로
1주일 뒤 그의 부고를 들었다.
이듬해 서울에서 그의 부인과 만났다.
남편 유골이 든 주머니를 지니고 온
그녀는 유골 주머니를 향해
"지금 장 선생님이랑 함께 있다"
고 속삭였다.지금도 나는 삶의 끝자락에서
죽을 힘을 다해 극장으로 와서 내 공연을
보던 이나가키의 모습, 그리고 상기된 듯
속삭이던 부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출처: chosun.com [일사일언]<–2014. 3. 19 (수)
푸나무
19/03/2014 at 08:44
저두 신문에서 읽었어요.
감동적이네…
근데 이분
표 엄청 비싸요….ㅎ
참나무.
19/03/2014 at 15:10
원래 이칸 제 잡글… 홀라당 날리길 잘 한 것같네요
밀회 보라고 난리들이어서…그거 보느라고
표 끊어본 적은 없고… 길상사 다닐 때 둬 번 뵈었어요…
전라도 사투리 참 재미지게하시데요…^^
초록정원
19/03/2014 at 23:29
충청도 광천 사람이예요..
태평소 불던 분인데,
내지르기 창법이 전에는 참 좋아서 공연도 가고 씨디도 사고 했었는데,
이젠 싫증 나더라구요~ ^^
노란 꽃.. 뭐죠??
보도블럭 위를 찍은 것도 같고??
십자가에 꽃 한 송이 얹어놓은 것 같아서
부활절이 언제인지 찾아봤네요~ ^^
해 연
20/03/2014 at 07:20
내용은 눈물 나구요.
오늘 사진 참 좋아요.
매일 매일 춥기만 해서…(맘이 추운건지…몸이 추운건지…)
이제는 쏘다녀 봐야겠어요.^^
참나무.
22/03/2014 at 23:25
큰 실수를 했네요
그러고 보니 끝발음이 "..유유~~’ 하신 기억이 나기도합니다…;;
경상도사투리는 금방 구별이되는데 충천도 전라도…헷갈렸나봅니다
내지느는 창번…
안그래도 어제 불후의 명곡에서 이미자 대선배님이 후배들께 일침을 가하더만요
노래 분위기에 맞춰서 감벙도 실어라
발음,박자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라 뭐 그런…^^
정동하가 그 충고받고 즉석에서 ‘내지르기’랑 ‘감정을 실어’ 같은 소절 시범을 보여
팬들의 환호를 받데요…대단한 리엑션이었지요
노래 외적인 솔직하으로 평가단의 응원를 받더라구요…보셨나요 혹시?
참나무.
22/03/2014 at 23:28
냅 ! 해윤이도 그만그만하니 봄나들이 좀 하셔요
다른일로 좀 바빠 컴은 소홀했네요…
답글이 많이 늦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