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 이브리 기틀리스

그리워라, 낭만이 살아 숨쉬던 손그림 ‘극장 간판’

영화가 오락 문화의 시작이며 마지막이었던 시절 ― 다른 말로 하자면 놀거리라고는 영화밖에 없어서 명절이면 식구들이 죄다 극장으로 몰려갔고 데이트를 해야 했을 경우에도 식당이나 빵집에서의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에 갈 수 있는 곳이 극장뿐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시내에는 그럴싸하게 이름 붙인 영화관이 제법 많았다. 크기로 보면 대한극장 화면이 70㎜ 영화를 걸 수 있을 정도로 컸고, 단성사·피카디리·명보극장·중앙극장·스카라 그리고 조금 나중에 생겼지만 허리우드극장 등이 개봉관이라 하여 국산 영화를 일컫는 방화(邦�), 그리고 수입 영화인 외화(外畵)들이 처음으로 상영되는 극장이었다.

 

 [Why] [가수 김창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서울에만도 그렇게 극장이 즐비했고 다른 지방도시에도 극장가는 거의 다 있었으며 읍 단위에도 작지만 극장이 성업 중이었다. 요즈음에는 그저 포스터를 극장 입구의 유리 액자에 전시하거나 극장 밖에 실사 프린트한 사진들을 거는데 예전에는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크기의 영화 간판을 걸개그림으로 극장 전면에 걸었다. 간판의 크기는 영화 제작비와 비례해서 커졌으며 화려함은 영화의 미장센을 그대로 따랐다.

‘벤허’ 간판에선 말과 마차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선 콧수염 달린 레트 버틀러가 닿으면 입술을 베일 것 같은 스칼렛 오하라에게 키스를 하려는 순간의 긴장감이 쇠로 만들어진 간판 틀을 금방이라도 오그라들게 할 것만 같았다. ‘포마드’를 바른 레트 버틀러는 클라크 게이블이었고 그 남자의 그윽한 눈 속으로 파고든 여인은 비비안 리였다. 그런 영화 간판은 대부분 직접 손으로 그렸는데, 비비안 리의 절묘한 턱선, 나탈리 우드의 시원한 눈, 클라크 게이블의 우수에 젖은 눈, 알랭 드롱의 날카로운 콧날까지 붓질이 스치는 곳마다 간판에서 튀어나올 듯 살아났다.

물론 일류 극장의 간판은 거의 예술 수준이었지만 삼류 극장 간판은 색도 조잡하고 인물도 도금봉인지 윤정희인지 신성일인지 윤일봉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표정 또한 웃으면서 울고 있었고, 우는 장면을 그린 것 같은데도 웃고 있었다.

상영 영화가 교체될 즈음이면 극장 간판 교체작업을 했는데 간판이 몇 조각으로 잘려 있었기 때문에 하나를 철거하고 나면 눈 코 입 턱까지 세로로 잘린 인물도 있고 잘린 집, 다리, 불타는 건물, 반만 남은 비행기들이 나머지 간판에 잠시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간판에선 과거는 돌아올 수 없다는 시간의 비가역성이 주는 처연함 또는 체념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왔다.

그러나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의 이류 극장에서 이미 단물이 한 번 빠진 그 영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삼류 극장에까지 미련은 이어졌다. 어차피 같은 영화를 걸 예정이라면 개봉관에 걸렸던 간판을 떼다 붙여도 됐을 법한데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삼류 극장으로 갈수록 간판은 추상적으로 돼 갔으며 간판장이의 의도가 더 드러나는 과감한 구도가 생겨났다.

삼류 극장 간판 화면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는 요인은 우선 간판 크기의 축소에 있었다. 삼류극장에선 보통 한 번 표를 끊으면 두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보는 동시상영이 많았다. 방화와 방화, 외화와 외화도 있었지만 두 개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았고, 연소자 관람불가와 관람가를 동시에 붙이기도 했다. 객석 뒤쪽의 영사실 바로 아래에 ‘임검석’이라 하여 임검하러 온 사람들이 앉는 자리가 있었는데 대개는 비어 있었다.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는 장소는 극장 옥상이나 구석진 창고 같은 곳이었다. 떼어낸 그림들과 페인트통이 널려 있고 곳곳에 ‘불조심’ 글씨가 붙어 있었다. 작업실 한쪽에 쪽방이 딸려 있고 야전침대도 펼쳐져 있었다. 번번이 시간에 쫓겨 간판을 그려댔을 게 뻔하지만 정작 작업실의 시간은 멈춰 있는 듯했다. 화공(�工)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언젠가 그 작업실에서 페인트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는

출처: [Why] [가수 김창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2014. 5. 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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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 자연을 버무린 수묵화2014. 5. 27 (화)

이토록 맑은 채색 수묵화라니!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열리는 ‘햇빛, 공기,

물: 톈리밍 중국화전’은 진화하는 중국 현대 수묵화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준다.허윤희 기자

http://hakgojae.com/2009/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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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리 기틀리스 엮인글로 보탭니다

풍월당 정만섭씨 강의 굉장히 인상깊었던 적 있어서

[Weekly BIZ] [Wisdom] 92세에도 연주회 ‘살아있는 전설’

“최고만 추구하면 개성이 사라진다” 2014. 5. 31 (토) …찬사를 받는 ‘이브리 기틀리스 표’ 음색이었다. 위클리 | 오윤희 기자

Ivry GITLIS TCHAIKOVSKY Violin Concerto

GITLIS PLAYS TCHAIKOVSKY VIOLIN CONCERTO:
1954 VOX / Vienna SO, Heinrich Hollreiser: http://youtu.be/mVe0qJBIgtU
1965 video / ORTF, Francesco Mander: http://youtu.be/_kId8Rkn898
1985 video / III. / Luxembourg SO, Leopold Hager: http://youtu.be/bcWflwSSCD8
2002 live / II. / Europa PO, Reinhard Seehafer: http://youtu.be/uQcAIQiWbU4

 

2 Comments

  1. 아카시아향

    31/05/2014 at 06:57

    김창완씨의 왕년의 영화간판 얘기,
    완전 실감이 팍팍 되네요.^^
    어렷을 적인데요…
    추석에 ‘꼬마신랑’이란 영화를 단체로 보러 갔는데
    이미 매진 상태여서
    우리를 영화 스크린 바로 밑에다 다 앉혀 놨었어요.
    대형 화면 바로 아래서… 으이구
    그 때 영화보다가 목이 삐는 줄 알았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봤어요;;ㅋ

       

  2. 참나무.

    31/05/2014 at 07:03

    김창완씨 때매 미치겠어요- 사실은 이걸 제목으로 하려다…
    광고성…이라 몰매당할까봐서리..ㅋㅋㅋ

    어쩌면 이리도 기억력이 좋은지
    매주 토요일 기다려지기까지 한답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어서 주책이지요 제가 또?

    그나저나 스크린 앞에서…정말 목이 얼마나 아팠을까요…쯧

    저 당시 동네 2류극장엔 이상한 아저씨들도 있어서
    고약한 경험 당한 적도 있었네요- 절대 말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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