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복이자 입추라네요

시원하게 보내시라고…음악이나 듣고 나가셔요

아랫 글은 펌 금지라 테그 연습 겸…;;

‘작가’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작가’(writer)라는 직업은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지 모릅니다. 취미생활이나 용돈벌이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있겠지만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으로서 글쓰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 저작권협회(ALCS)가 자국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수입 실태를 조사한 뒤에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국 언론들도 ‘글쓰기는 가난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 ‘직업으로서의 작가는 끝나’ 등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작가들이 처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ALCS가 영국 작가 25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한 해 책을 팔아 얼마나 벌었는지 물었습니다. 조사결과, 영국 작가들의 중간소득(median income)은 1만1000파운드(약 1935만원)였습니다. 중간소득이란, 가장 많이 번 사람과 가장 적게 번 사람의 중간에 해당하는 소득입니다. 평균소득으로 조사할 경우,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 한사람이 걷어들인 막대한 벌이가 소득 평균치를 끌어올려 대다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작가들의 상황이 왜곡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소득 수준은 최저생계비 수준을 훨씬 밑도는 수치입니다. 영국에서 최소생활기준 생계비는 1만6850파운드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득 감소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영국 작가들의 중간소득은 2005

조사보다 29% 떨어진 수치입니다. 2005년

당시 영국 작가들의 중간 소득은 1만 2330 파운드

(약 2170만원)이었습니다. 그간의 물가인상을 감안

하면 2005년에 현재 가치로 2718만원을 번 셈이니

지금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던거지요.

작가들 중에 오로지 글을 쓰는 것만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비율은 11.5%에 불과했습니다. 열에 아홉은 다른

돈벌이수단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2005년에는 절반

가까운 40%가 글쓰기만으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대답

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 소설가 조앤 롤링.

롤링은 작가들 사이에서 극소수 성공사례일 뿐이다.

영국에서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최소생계비조차 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가의 수입이 줄어드는데는 인세 수입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극소수의 스타 작가를 제외하면 제법이름이 알려진 작가도 심각한 소득 감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카네기메달 수상 경력이 있는 한 작가는 4년 전까지 6개월에 3만파운드(약 5270만원)씩 인세수입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그의 인세 수입은 2005년도 수입의 10분의 1인 3000파운드였습니다.

그는 “책을 팔아서 얻는 수입이 극적으로 감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먹고 살까요. 그는 틈틈히 써둔 교육 관련 책들에서 그나마 인세가 들어오고, 여기에 연금을 더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유명작가이므로 선인세를 2만5000파운드 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계약하고 선인세 받아 쓸 수도 없습니다. 그의 책이 요즘 팔리는 양을 따져볼 때, 선인세로 받은 돈 만큼 책을 팔려면 6년간 책을 팔아야 합니다. 6년 동안 팔린 책은 미리 당겨쓴 빚을 갚는데 써야 한다는 뜻이죠.

작가가 온전히 글로서 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비단 작가들의

생활고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이같은 현상을

‘예술작품으로서의 순문학이나 서사예술이 우리 눈앞에서 죽어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같은 이야기 산업을 육성하자는

말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목표에 가깝습니다. 절대 다수의 작가

들이 생존불가능한 수준의 인세 수입을 받는 상황에서 이야기 산업

경제적 토대는 무너질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가디언은 향후 작가층의 붕괴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습

니다. 게다가 한 때 책 판매를 견인하던 문학상 수상이나 비평가의

호평도 더는 약발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은 미래 세대 지식의 습득 방법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상상한다. 이들은 책을 읽지 않고

단순히 머리에 잭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지식을 다운로드한다.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영국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문학 종사자의 90% 이상이 월수 100만원 안되는 돈을 받고 창작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펴내는 출판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는 한 어린이책 출판사 사장은 2000년도 매출을 100으로 볼 때 현재 매출은 25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책들을 파는 서점도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은 서가를 점차 줄이고 그 자리에 문구나 외식 코너를 들이고 있습니다. 책과 글자를 바탕으로 해온 지식의 유통에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렇다면 작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긴 이야기를 암기해 노래로 들려주던 음유시인들이 구텐베르크의 활자 혁명 이후 사라졌듯,

어쩌면 작가들도 인터넷 시대가 초래한 지식유통의 혁명 속에 사라지고 말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오태진의 위에서 : 해변 솔 그늘에 접는 안락의자 펴고 한나절

여수 방죽포 해변에 몸 누이고 老松에 이는 솔바람 맞으며 아무것도 안 하는 자유 누리니
빠듯한 旅程 맞춰 쏘다니느라 몰랐던 휴가 참맛 새삼 느끼다… 의자 하나가 선사한 희열이여

책 몇 줄 읽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졸다 자다 깨다 맥주 홀짝인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옥빛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어루만진다. 간간이 숨을 막을 듯 몰아쳐 머리카락을 쓸어 눕힌다. 여름 해변에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간다. 몸도 마음도, 얽히고설킨 시름도 잡생각도 다 내려놓는다.

7월 중순 여수 돌산 방죽포에서 휴가 한나절을 보냈다. 돌산대교 건너 섬 동남쪽으로 한참 내려가 향일암 길목에 들어앉은 해수욕장이다. 길이 150m, 너비 30m 아담한 해변이 항아리 속같이 옴팍하다. 물이 방죽처럼 잔잔하다. 이른 더위에 보름 전 개장했지만 한낮 바닷가는 한산하다. 뙤약볕 백사장이 텅 비었다. ‘수영 가능’이라고 쓴 깃발만 펄럭인다. 사람들이 왔다가 썰렁해서 돌아설까 봐 꽂아놓은 모양이다. 얕은 물에서 첨벙대는 아이들 네댓뿐, 방학 앞둔 평일이라곤 해도 철 지난 바다 같다.

외진 방죽포까지 찾아간 것은 언젠가 봐뒀던 솔숲에 끌려서다. 이백 살 넘은 방풍 송림이 해변을 에워싸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100여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접는 안락의자 둘을 차에서 꺼내 그늘에 폈다. 팔걸이 달린 알루미늄 뼈대에 천을 대 가벼우면서도 꽤 편안하다. 접는 탁자도 펴 책이며 주전부리며 캔맥주를 올려놓는다. 안경 벗어두고 선글라스 낀다. 몸을 의자에 깊이 묻는다. 솔 그늘에서 솔 내음 맡으며 솔바람 쏘인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은 흉내도 못 내게 시원하다. 금세 잠이 든다.

솔숲 곳곳에 통나무 의자가 있다. 중년 한 쌍이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본다. 얘기는 주로 여자가 한다. 목소리가 낮아서 더 보기 좋다. 남자가 박자 맞추듯 이따금 고개를 끄덕인다. 바람에 두 사람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저쪽 나이 지긋한 장년 남자는 자리 펴고 신발 벗고 누워 뒹군다. 모든 게 멈춘 듯 정밀(靜謐)한 여름 낮이다.

원래는 출출해지면 남쪽으로 잠깐 내려가 이름난 전복죽을 사 먹고 오자고 했었다. 그런데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는다. 만사가 귀찮다. 바로 옆 음식점에서 솜씨 서툰 통닭 배달받아 때운다.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또 졸다 자다 한다. 지루하기는커녕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해가 기울면서 바다에 눈부신 은비늘을 띄웠다. 파도가 적신 백사장도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제야 일어나 카메라 메고 해변으로 나간다.

아이들만큼 좋은 피사체도 드물다. 할머니와 손녀가 손잡고 물가를 걷는다. 아기는 걸음마 뗀 지 얼마 안 됐는지 뒤뚱거린다. 할머니 손을 놓더니 혼자 아장아장 걸어 물에 발을 들이민다. 얕고 순한 파도가 종아리를 때리자 신이 나서 두 팔 벌리고 웃는다. 해초 주워 할머니께 건넨다. 할머니도 고개 젖혀 웃음을 터뜨린다. 젊은 할머니에게 이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딸아이가 튜브 끼고 물장구를 친다. ‘딸 바보’ 아빠와 두 딸이 주저앉아 모래성과 추억을 함께 쌓는다. 가족이 있어 한결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다다. 서쪽 산 그림자가 해변에 길게 누웠다. 의자 접고 짐 챙겨 일어섰다. 방죽포의 오후 한나절이 달콤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몇 년 전 오토 캠핑에 눈독을 들인 적이 있다. 텐트며 갖가지 살림살이를 차에 싣고 가 자연 속에 차려놓고 즐기는 캠핑이다. 용품 가게를 기웃거리다 맨 먼저 접는 안락의자부터 한 쌍 장만하고는 캠핑을 포기했다. 워낙 텐트 짓고 살림 차릴 손재주가 없고 나이 든 사람에겐 캠핑이 안 맞는다 싶었다. 남은 건 접는 의자였다. 흔히 ‘릴랙스 체어(relax chair)’라고 하던데 ‘폴딩 암체어(folding armchair)’쯤이 맞는 이름이겠다.

딱히 쓸모를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의자를 묵히기 아까워 여행 길에 싣고 다녔다. 비 오는 휴양림 ‘숲 속의 집’ 테라스에 펼쳤다. 망상해변 ‘모빌 홈’에 묵으며 밤 백사장에 펴놓고 별을 봤다. 그러던 작년 8월 말 늦은 여름휴가 마지막 행선지 거제에 갔다. 하루를 온전히 해안 드라이브로 보내기로 하고 섬 서남쪽 저구항에서 출발했다. 선착장 남쪽 해안도로 모퉁이를 돌자마자 작은 해변을 만났다. 바닷물 맑고 모래 고와 명사(明砂)해수욕장이라고 했다. 바닷가에 우람한 낙락장송이 늘어섰다. 그 아래 널찍한 나무 데크가 길게 깔렸다.

당장 차에서 접는 의자를 갖고 와 소나무 아래 폈다. 철 지난 바닷가는 한적하고 파도 소리만 철썩였다. 바람 솔솔 부는 그늘에선 남도의 늦더위 노염(老炎)도 힘을 못 썼다. 더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낙원을 두고 가기 아까웠다. 그날 일정이 거기서 멈추고 끝났다.

여행하면서 계획을 꼼꼼하게 짜는 편이다.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 먹을지도 궁리해 코스를 정한다. 일정이 빡빡할 수밖에 없다. 기름값 무서운 줄 모르고 쏘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즐거움에 눈을 떴다. 한곳에 오래 머물며 오래 기억할 하루를 보냈다. 거제 명사해변과 돌산 방죽포해변 솔숲 덕분이다. 그보다 기특한 것이 접는 안락의자다. 뒹굴뒹굴 빈둥거리며 깨달았다. 휴가란 이런 것이구나.

[영화 리뷰] 일상을 가장한 악행… 더 섬뜩하다

  •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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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

    숱이 거의 없는 금발에 벗어진 이마, 눈동자를 들여다보기

  • 힘들 정도로 작은 눈, 그리고 통통하다 못해 퉁퉁한 체격.

  • 잘생기지도 귀엽지도 않은 필립 시모어 호프먼을 이렇게

  • 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 지난 2월 2일 팔뚝에 주사기를

  • 꽂은 채 미국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 그리운 이유는 출연 분량과 비중에 상관없이 언제나 화면

  • 안에서 발산했던 압도적인 힘 때문이다.

    ‘모스트 원티드 맨’의 고(故) 필립 시모어 호프먼.

    /드림웨스트 픽처스 제공

    호프먼의 힘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면 그의 마지막 주연작인

    ‘모스트 원티드 맨'(감독 안톤 코르빈)은 꼭 봐야 할 작품이다.

    독일 최고의 스파이였으나 지금은 정보부 소속 비밀조직의 수장인 군터 바흐만(필립 시모어 호프먼). 그의 앞에 아버지의 유산을 찾기 위해 함부르크로 밀입국한 무슬림 청년 이사가 나타난다. 그는 이사의 유산을 이용해 테러리스트에게 자금을 대주는 닥터 압둘라를 체포하려고 하지만, 그 사이에 미국 정보부가 끼어든다.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동명 원작을 영화로 옮겼다. 회색 벽돌처럼 차갑고 건조하며 무거운 원작의 분위기를 영화에 그대로 옮겨놨다. 특히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이 세계에서 적군이 아군으로, 혹은 그 반대로 돌변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이사를 돕던 변호사 애너벨 리히터가 바흐만 일당에게 납치가 된 후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으며 정보원으로 바뀌는 과정은 섬뜩할 정도다.

    바흐만은 선의나 악의, 신념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해내려는 스파이다. 호프먼은 평범과 일상을 가장하는 데 능하다. 그는 우울하고 외로운 홀아비 같은 얼굴을 하고서 잔인하고 영리한 계략을 하나씩 실천하는 바흐만을 연기한다. 원작 소설처럼 ‘회색 벽돌’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원작자인 존 르 카레는 뉴욕타임스에 이런 에세이를 기고했다. "처음에 호프먼이 대본을 읽는 모습을 보고 ‘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대한 배우들이 다 그렇듯이, 그는 점차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외롭고 진실된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목소리였다." 7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 6 Comments

    1. 해 연

      07/08/2014 at 00:48

      글을 다 읽기전에 음악이 끝났어요.
      몇 군데 메모도 했어요.
      메모에 그치겠지만…ㅎㅎ

      축!
      말복, 입추!
      더위가 주춤했으면 좋겠습니다.ㅎ   

    2. 벤조

      07/08/2014 at 03:21

      작가와 돈…
      한참 생각했습니다.
      지금 읽고 계신 책은 부자 작가가 쓴 것인가요?
         

    3. 도토리

      07/08/2014 at 03:41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방죽림의 소나무 아래 그늘.. 그 바람을 꿈꾸고있습니다.
      ..
      그래도 오늘은 좀 서늘하네요.
      입추… 이름있는 날의 셈을 하는 건지요…?
      비발디의 사계도 안성마춤입니다…^^*   

    4. 선화

      07/08/2014 at 05:17

      벌써 입추라는 소릴 듣고는~~아니벌써!! ㅎㅎㅎ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입추에 어울리는 음악도요~^^   

    5. 연담

      07/08/2014 at 09:00

      필립 시모어 호프만.
      영화 ‘다우트’ ‘마지막 사중주’등에서 인상깊었었죠.
      그렇게 갈 사람 같아보이지 않았는데… 인생무상!
      .그만큼 성공했는데 왜?
      외부로 보이는 것과 속 사정이 달랐나봐요.
      가끔 생각나는 배우입니다   

    6. 참나무.

      09/08/2014 at 01:03

      해연님
      벤조님
      도토리님
      선화님
      연담님 답글 감사합니다
      답방은 천천히 드리겠습니다…
      시간 조졸을 잘 못하여 언제나 허둥거리느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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