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사랑, 가족2015.1.6~3.1 현대화랑 이번 전시 키포인트는 3개 1. MoMA 소장 은지화 3점을 60년만에 처음 공개 1. 미공개 *편지화 20여점 전시. 1. 이중섭 화백 부인 이남덕 여사의 다큐멘터리 공개
이런 일은 솔직히 국립미술관에서 시도해야할 전시횐데 개인 상업화랑에서 추진한 사실…정말 대단하다싶습디다.
*왜 편지화냐 하면 편지 속지에 글과 그림이 그려져 있고 편지 봉투 글씨까지 구도와 모양을 내어 작품이나 마찬가지여서… (이중섭화백 형님이 서예가여서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았다네요)
편지 봉투 주소도 어찌나 자주 바뀌었는지 대부분 다른이의 주소여서 불우했던 당시를 새삼 느끼게했고요
1층 포토존 벽엔 이중섭화백께 드리는 편지들이 빼곡히 …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갈까지>일대기의 책도 읽은 지 오래라 거의 잊었는데 다큐를 보면서 다시 울컥하더군요
’39세에 영양실조로 타계한 참 불쌍한 친구…’ 를 회상하는 같은 화가친구의연로한 모습을 볼 때였어요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답니다. 휠체어 탄 부인 이남덕 여사가 서귀포 작은 방을 보며 먹을 게 없어 게를 잡아 먹던 추억을 얘기할 때도 … ㅠ.ㅜ
파란게와 어린이 종이에 유채 30.2 23.6 cm
그렇게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병든 몸으로 하루 한끼로 버틸 때도 있었으면서 어떻게 대부분 밝고 환한 희망찬 그림들만 그릴 수 있었는지
누운여자 1941. 6. 3종이에 잉크 수채9 x 14 cm
전시장을 돌면서 전시 기획을 잘 해서는 아닐까 ~도 싶었고요 이번 전시는 신관이 아니고 좁은 본관임에도 불구하고. – 요즘 신관은 전시 준비 중이라. . .
은지화는 다 아시다시피 작은 담배종이여서 원작 아래 다시 확대하여 감상하기 좋게 전시했더군요
저도 왠만한 전시회는 가 보는 편이지만 편지 겉봉투랑 이렇게나 많은 은지화를 한꺼번에 본 건 처음이었어요
오늘 토요일이어서 유난히 아이들 동반 가족들이 많았답니다. 서귀포에서 가족들과 1년을 지내던 작은 방을 그대로 만들어서 어떤 아이가 아빠의 설명을 들은 후 창문으로 방 안을 드려다 보고 신기해 하며 자릴 뜨질 않아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답니다
이번 전시는 순전히 현대화랑 대표 박명자씨의 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소장자들과 끓임없이 연대관계를 맺고 당신 갤러리에 전시한 작가들 작품은 꼭 몇 점씩 사 주는 불문율을 어기지 않아 우리같은 평범한 관객들은 덕을 보는거라 생각했고요…
가족과 비둘기 종이에 유채 29 x 40.3cm
인사동에 현대화랑 개관 이후 사간동에 갤러리 현대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다 다시 옛이름 현대화랑으로 복귀 후 첫전시여서 외국 명화 기획전 처럼 붐비는 전시는 처음이지싶네요
상업화랑 입장에선 성공작에 틀림없으면서 이중섭 화백의 진면목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귀한 경험 되리라 믿습니다
야스카타에게
나의 야스카타. 잘 지내고 있겠지.
학교 친구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니?
아빠는 잘 지내고 있고 전람회 준비를 하고 있어. 아빠가 오늘…
(엄마와 야스카타가 소달구지에 타고… 아빠는 앞에서 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에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어. 소위에 있는 것은 구름이야.)
그럼 안녕 아빠가
미공개 편지들
언제나 내 가슴 한 가운데서 나를 따듯하게 해주는 나의 귀중하고 유일한 천사 남덕 군.
건강하오? 아고리도 건강한데다 제작이 더욱더 순조로워 쭉쭉 작품을 진행하고 있소.
자신도 놀랄 정도의 작품이 완성되어 감격하고 힘이 넘치고…
추위에도 지지 않고 굴하지 않고 …
어두운 새벽부터 일어나 전등을 켜고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여!!! 마음속으로부터 기쁘게 …
서둘러 편지를 정리해주시오. 하루라도 빨리 함께 살고 싶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과를 올려주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이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멋진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오.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요.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버린다오.
봄의 어린이 나의 귀여운 태현 군.
건강하지? 학교에 갈 때에는… 좀 춥지 않니?
요전엔 엄마와 태성 군과 태현 군 셋이서 이노카시라 공원에 놀러 간 것 같구나.
연못 안에는 커다란 잉어가 많이 살고 있지? 아빠가…
학교 다닐 때…이노카시라 공원 근처에 살았기에 매일 공원 연못가를 산책하면서
커다란 잉어가 헤엄치고 다니는 모습을…보고 즐거워했단다.
– 아빠 ㅈㅜㅇㅅㅓㅂ 이중섭
편지화위:아빠가 약을 마시고 건강해졌어요/약/아빠 감기 걸려서 누워 있었어요/그대들의 사진
왼쪽 : 엄마와 태현 군과 태성 군이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갑니다.
아래 :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 줄게요.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서 누워었지만 오늘은 아주 건강해졌으므로 …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 어서 전람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 테니 … …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F. Schubert: Sonata no. 18 D. 894 in G major(op. 78)./Arcadi Volodos
참나무.
01/02/2015 at 08:12
이중섭 전시장에서의 아쉬운 마음- 윤범모 연재 칼럼(서울아트가이드 2월호 에서)
현대화랑이 자신의 본명을 되찾았다. 대환영한다. 1970년대 중반 인사동 사거리에서 화랑을 열었을 때, 미술계는 즐거웠다. 평소 보기 어려웠던 전시를 계속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 현대화랑’이 언젠가부터 ‘갤러리현대’로 개명했고, 장소까지 사간동으로 옮겼다. 초심이 중요하다고, 나는 ‘현대화랑’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이번에 옛 이름을 회복하고 커다란 전시를 개최했다. 이름하여 ‘이중섭의 사랑, 가족’, 역시 현대화랑다운 전시이다. 썰렁한 겨울에 미술애호가들에게 안복(眼福)을 안겼으니 더욱 그렇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 작품 가운데 가족 소재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주제는 당연히 사랑이다. 이중섭이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에게 보낸 그림엽서, 어찌 연서(戀書)에 글 한 줄 쓰지 않고 그림으로만 채웠을까. 전시는 드로잉, 은지화, 유화 그리고 친필 편지 등으로 꾸며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편지이다. 이들 편지는 1953-55년 사이 일본의 처자에게 쓴 것이다. 이들 미공개 편지 15점이 전시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중섭은 편지지에 본문과 더불어 가족애의 그리움을 그림으로 첨부시켰다. 그러니까 이중섭 회화의 원형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자료가 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의 이중섭 은지화 3점은 이번에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1956년 아서 맥타가트가 구입하여 미술관에 기증한 것, 이를 서울에서 볼 수 있다니,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중섭 전시장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중섭과 박수근을 흔히 ‘국민화가’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이들 작가 이외 김환기까지 묶어 ‘미술시장의 3대 거장’이라고 부른다. 아니, ‘보증수표’라고 부른다. 사실 이들 3인 작가는 개인 이름을 딴 미술관까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왜 한국의 대표 작가로 추앙받고 있을까. 무엇보다 학문적 연구성과의 별무(別無)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신화적 존재’에 앞서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이들 예술세계가 분석되고 검증되는 절차의 생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미술계의 척박한 학문 풍토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자본 논리와 대중적 가십은 난무해도 이들 관련 논문은 보기 어렵다. 국민 대표화가에 대한 전문 연구가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감정하면서 논문을 쓸 수 있는 전문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참나무.
01/02/2015 at 08:15
(계속) 박명자 회장, 살아있는 역사책
국립현대미술관의 ‘직무유기’도 문제라면 문제이다. 말만 국민화가이지 이중섭, 박수근 같은 화가의 본격적 연구와 전시를 추진한 바 있는가. 이번 MoMA 소장 은지화의 국내 소개를 어떻게 상업화랑이 대신할 수 있는가. 국민이 국민화가라고 부르고 있는 현실에서 국립미술관은 이 용어의 타당성 유무에 대한 본격적 검토 마당을 마련했어야 옳다. 물론 국내공립미술관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는 다수의 소장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누구를 믿고 작품을 빌려줄 수 있어요?” 전문성과 더불어 큐레이터로서의 신뢰성까지 확보할 수 없다면, 이는 커다란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공립미술관장 쯤 되면 멋진 소장가나 후원자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또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어떤 관장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그래서 이중섭이나 박수근 전시는 공공 미술관이 아닌 열정으로 뭉친 개인 차원에서 실현되고 있나 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는가.
이번 이중섭 전시의 기획자는 사실 현대화랑의 박명자 회장이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살아있는 역사책이다. 박 회장처럼 주요 작가와 작품 관련 이해도를 넓게 가지고 있는 인사가 얼마나 있을까. 만약 박 회장이 현역에서 물러난다면, 대형전시의 기획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3대 거장을 비롯하여 주요 작가의 유작 소장처 목록, 이를 누가 작성할 수 있겠는가. 아니 목록 확보는 가능하다고 치자. 누가 이들 소장자를 설득하여 전시장까지 작품을 대여받아올 수 있을까. 답답한 일이다. 여기서 나는 박명자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부탁 하나를 하고 싶다. 이제 회고록 집필을 착수할 때라는 점이다. 더 이상 사양만 하지 말고 구술사라도 활용하여 자신의 산 역사를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나는 현대화랑의 건물보다 『박명자 회고록』을 더 중요한 재산가치라고 보고 있다.
별나
02/02/2015 at 11:11
소중한 포스트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ㅜ.
박명자회장은 미술계의 지식과 경험,
저력과 끈기는 당대 최고이겠지요.
좋은 한 주일 되세요.
.
별나
02/02/2015 at 11:20
이대향의 집은 이리로 감..이라는
어느 화우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나서..
저 위 대.향 이라는 이름이 반갑네됴.
이북에서 이중섭 화가의 50 호 그림이 국전에서 당선 되었을 때,
상금을 기다리던 이중섭 화가는 우체부가 집을 곧바로 찾을 수 있도록..^^
" 이대향의 집은 이리로 감 " 하고 골목이 바뀔 때마다
화살표와 함께 메모를 붙여 놓았답니다.
배려있는 성품과 예술가의 아름다운 동심이 깃들어 있는 그림과 글,
눈물 겨운 마음으로 읽고 또 읽어봅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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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02/02/2015 at 11:38
오…저는 잘 모르는 에피소드군요..얼마나 상금을 기다렸으면…ㅠ.ㅜ
박명자씨 얘기하려면 예전 반도화랑 안떠올릴 수 없지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대표였던 이대원화백 도우며 많은 화가들도 만나면서 오랫동안 열심히 배운 후
독립하여 대한민국 건국이래 처음으로 상업화랑을 성공시킨 분이지요
반도화랑 자리에 롯데갤러리가 들어섰을 때 포스팅 하면서 올렸던 글도 있는데…
또다른 일화들은 당시 박수근 화백은 혹 그림이라도 팔렸나 핑계를 대며 반도화랑을
자주 들리셨던데 직접적인 이유는 당시엔 귀한 수세식 화장실 때문이었다지요
당시 박수근화백 창신동 집은 공중변소여서…;; )
한나님과는 소소한 얘깃거리들 많겠습니다.
저도 전시장에서 편지글들 읽으며 눈물 흘렸고요…
이남덕여사처럼 저렇게 절절한 편지 받은 적 없어서
또한 편으로 부럽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dolce
03/02/2015 at 05:55
아빠는 옷을 입고 얘들과 엄마는 옷을 벗긴건 왜 그랬을까????
이중섭 화백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편지들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이 애절하네요….
참나무.
03/02/2015 at 22:16
글쎄요…그림 그린 분만 알지싶은데…
많은 그림 중에 그 부분이 궁금하셨군요
서울 계셔서 전시장 직접 둘러보시면 더욱 애절하셨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