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서 자주 듣던 노래

대문앞

이윤학

잠든 아이를 업고 나온 할머니
대문 앞을 서성이고 대추 꽃이

허옇게 핀 대문 앞은 울렁인다

뒤로 돌려 손가락 깍지 낀 할머니

팔 그네 위에 앉아 잠이 든 아이

대문 앞까지 찾아와

환하게 바닥에 깔린

햇볕 위에서 할머니

느린 스텝을 밟는다

길쭉하게 늘어난 그림자

콘크리트 바닥 전봇대 담벼락에

끌리고 꺾이고 부딪히며

할머니를 따라 돌아간다

제 기억의 가장 오랜 과거로 가면 할머니의 등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업힌 날이 더 많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기억은 없습니다 먹고 살기 바빴던 부모님은 맏아들이 걸음마를 하자 시골 외가에 맡겨 할머니 손에 키웠습니다 그때 손깍지 낀 할머니 등에 업혀 시골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기억이 어렴풋합니다할머니 등에 업혀 바라봤던 달이 무척 밝았던 기억도 납니다 할머니 등이 얼마나 따뜻하고 좋았던지 이런 약속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나 어른되면 할머니랑 살거야"

이거 사나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같이 살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닌가요? 외할머니는 첫손자의 감언이설을 철썩같이 믿지는 않았겠지만고백을 들은 것과 비슷한 기분을 맛봤음이 분명합니다 그날 이후40년 넘도록 할머니는 제게 얘야 네가 평생 나랑 같이 산다고 했잖냐?”라고 묻곤 하셨으니까요.외할머니는 95세까지 사셨는데, 갑자기 쓰러져 홀연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도 할미랑 같이 살겠다고 한 거 기억나?” 라고 물으셨습니다. 따뜻한 할머니 등에 업혀 바라본 보름달이 제 기억에 사무쳤듯 할머니는 외손자가 한 약속이 평생 기억에 사무쳤나봅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그런 약속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외할머니는 등만 따뜻한게 아니라 이야기 보따리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바리데기를 책으로 읽기 전에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들었습니다

외할머니가 등으로 손자의 마음을 산 반면 친할머니는‘’이라는 필살기를 가지셨습니다 저는 중학생때 배앓이를 많이 했는데 할머니가 손자를 눕혀놓고 배를 살살 어루만져 주시면 신기게도 아픈게 사라졌습니다그 느낌이 하도 좋아서 꾀병으로 배를 까고 할머니 앞에 누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재미있게 읽은‘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정석희 지음)라는 책에 이런 머리말이 있습니다.

참 가슴 뭉클합니다.

인생 최초의 기억을 떠올릴 때 보통 사람들은 결코 서너 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나의 노년에서 가장 행복하고 충일했던 시기를 함께 보낸 녀석들이 이제 다섯살이 되었다 녀석들이 절대 기억하지 못할 한두 살을 우리는 진하게 같이 보냈다(…)나로서는 이 무렵의 소중한 기억들을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사라지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부디 바라건데나의 손자들이 나중에 이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식은 머리로 기억하지만 정은 마음이 기억합니다제 피부는 할머니 등에 업혔을 때의 온기를 일찌감치 잊었지만 그때 제 마음을 데운 할머니의 사랑 육아법은 손주를 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두 할머니는 제 마음에 마르지 않는 샘을 파셨습니다.훗날 손주를 보게 되면 그 샘에서 정을 길어 듬뿍 나눠줄 생각입니다

출처:김태훈기자의 아침에 읽는 시 5. 22, 2015

그립습니다, 아픈 배 만져주던 친할머니 약손과 손주를 업어주던 외할머니의 등

Drakensberg Boys Choir – Thula thula

3 Comments

  1. 선화

    24/05/2015 at 02:00

    약간 톤을 낮춰 부르면 아가가 스르르~ 잠들듯요~ㅎ

    ( 밖에서 물주고 검질뽑다 에소프레스 한잔하려고 들어 왔다
    떠나고픈…^^ )   

  2. 참나무.

    24/05/2015 at 10:20

    아기들이 가장 쉽게 잠드는 건 우리나라 할머니들의 ‘세실’ 이라고
    언제였나 통계낸 거 본족있어요
    세실 아시려나? 역시 겡상도 방언…사설
    예를 들면 ;…앞집개도 짓지말고… 금자동아 옥자동아…요런 자장가 …ㅎㅎ

       

  3. 참나무.

    24/05/2015 at 20:58

    울 현진이 다른 애기들과 비교하면 큰 애를 먹이진 않았지만
    올 때 갈 때 기내에서 칭얼대고 울기 시작하면
    좁은 통로 오가며 업고 작은 소리로 ‘자장 자장’ 재울 때가 생각났답니다

    요즘도 말도 안되는 떼를 쓸 때 ‘하머니 업어주까’ 달래면
    "네에 하머니"
    고개 끄덕거리며 등 뒤로 와서 업힐 땐 어찌나 귀여운지…

    "질 가자 질가자~~"
    시어머님 울 애들 데리고 코에 바람 넣어준다고 나가실 때 하시던…
    경상도 길= 질이라 하셔서 저도 요즘 따라하거든요

    이 칸 본문이 길어서 올렸다 빼 버렸답니다
    ‘세실’ 설명하기도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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