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블을 시작한 이유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2004/09/04 00:51:57 2004/11/14 22:45

제목 :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나서

글쓴이 : 참나무. 날짜 : 2004/09/04 00:51:57

– 청금석 같은 나의 그리트에게

너를 처음 만난 건 멀고 먼 아프리카의 어느 한 도시 대형 수퍼마켓이었지
그날은 홀애비 생활로 거의 대부분 남의 집에 초청 당하던 남편이
오랜만에 마누라도 왔으니 그 곳 교민들에게 그동안 신세 갚느라고
교민 가족들까지 한꺼번에 초청하는 거사를 하루 앞 둔 날이었단다.

도와준다는 목사사모님과 이런저런 먹거리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데
저만치 먼 곳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푸른 접시가 눈에 들어오더구나.
그런데 하도 많은 사람들 초청이라 짐도 많았고 돈도 바닥이 난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모든 쇼핑거리를 다 싣고 나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직전에
아무래도 그 푸른 큰 접시에 과일을 담으면 예쁠 것 같아
– 홀애비 살림을 점검해보니 커다란 과일접시도 하나 없었던 게 자꾸 걸려서 –
그 푸른접시를 안사면 후회할 것 같다하며
사모님께 돈까지 빌려서 그 접시를 사서 집에 왔단다.

그런데 먼지를 씻고 말끔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어떤 여인은 바로 너 그리트… .

더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김환기 블루’더구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 같은 큰 눈 조금 벌린 입술…
그리고 진주귀고리를 하고서…그게 너랑 나랑의 첫만남이었단다
그 때가지 나는 베르메르라는 화가도 몰랐었거든
(벌써 7~8년 전인가 확실하진 않치만…)

자세히 뒷부분도 돌려보니 짧은 식견으로 라도
홀렌드(네델란드의 옛날식표기) ‘엔틱’ 이더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오늘 오랜만에 너를 꺼내다가 또 다른 글자를 발견했단다.
(이런… 기름 떼가… 누렇게 많이도 앉아서 금방목욕도 시키고… 쏘리…;;)

made in Holland Maastricht

이건 전부터 알았는데

맨 위에 Delfts blauw 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구나

왜 이제사 발견이 되었지?
맨 날 앞모습만 보다가 뒤를 소홀히 했구나

신제품만 파는 대형 수퍼마켓에서 왜 홀랜드 엔틱이 판매되었는지는
지금까지 영원한 미스테리인 사건이었단다
그 일을 두고 여러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폭동이 잦았던 그 나라에서 어쩌다 장물이 흘러들어와
어수룩한 유통과정을 거친게 아닐까 짐작을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만

나는 오늘 네가 살았던 델프트 풍경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왔단다
고마운 ‘슈발리에’ 그녀 때문에…
만약 그녀와 언어가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씰데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단다
정말로 할 말이 많은데 그건 아주 불가능한 일 같구나

녹슨 청동의 유물같던 그 거리는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지
방위표가 그려진 그 거리를 몇 번이나 다니며 그 옛날 (1665년대?)
너랑 동시대를 살던 사람들까지 다 끌어낸 국적도 다른 미국의 소설가

너에게 푸른 숄을 두르고 그 거리를 걷게도 하고 화실 청소도 하게 하고
같이 물감을 개기도 하며 이 세상에 알리게 한 슈발리에까지
나는 사랑하게 되어 그녀가 쓴 다른 소설에도 관심이 참 많단다.

솔직히 너의 주인 베르메르가 그린 네 모습과 아주 약간 차이가 나긴 해
그림보다는 좀 더 못난 모습 같아 더 정이 간단다. 사실은…
내 침대 머리맡에서 문을 열 때마다 펄럭거리는 스카프 속의 너도
창해 ABC, 베르메르 출판사 ‘강’ 의 표지화로 나온 네모습도 좋지만
익숙한데 젖어 나는 푸른 접시 속의 네가 제일 맘에 든단다.

비슷하지만 좀은 다른 모습으로 오늘 나에게 다가온 네가
깡깡 언 빨래를 걷으며 호호 입김을 불 때도
송곳으로 귀를 뚫을 때도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고 얄미운 큰 딸 번번이 너를 괴롭힐 때도 미워죽겠더구나

현명한 그리트
너를 오래오래 보라는 계시였는지 나는 조조프로로 너를 만나려 했지만
10분 차이로 앞부분을 놓치고 할 수 없이 2회를 끊었단다.
다른 영화들, 압축된 예고편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어지간하면 앞부분 10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올 텐데
오늘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단다.

미쳐 못 본 데가 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인 음식 재료를 썰어
색깔별로 큰 접시에 담는 장면이 아닐까 했는데
화면시작이 딱 예상대로 그 부분이더구나
책을 안 읽은 사람들은 당근 옆에 양파를 놓는
너의 미적 감각을 베르메르씨가 알아차리는 설명부분은 생략되었지만
그 영화 만든 사람은 슈발리에의 의중을 충분히 파악한 사람이라고 봐
구름을 보는 장면에서 다시 너의 예술적 감각을 암시 하더구나

솔직히 고백할게

앞부분 10분이 지나고 나가야 할 시간인 줄은 알았지만
아… 그 화실의 뒷 벽에 걸린 그림이라든가 류트는 어디에 있었으며
버지널의 그림들, 기타 등등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그냥 2회 끝까지 다 보고 말았단다.
그래서 내 평생에 같은 날 같은 영화를 두 번 본 일이 생기고 말았단다.

나의 현명한 그리트
너는 어쩌면 평정한 마음으로 피이터랑 잘 살거야
너의 사랑과 예술적 감각을 인정한 베르메르씨와의 사랑을
영화 포스터 문구처럼 ‘미완의 사랑….’이라고 생각진 않아
모든 걸 다 잃은 것 같지만 너는 그의 사랑을 다 얻은거야

그의 부인의 귀거리를 전해받을 그 때에 이미…

어떤 청년이 너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 에게 연애편지를 썼길래
나도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인 긴 편지를 한 번 써봤단다

그리고 또 부탁하나
너를 보여주기 위해 다른 나라로 돌아다니지는 말아줘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너를 찾아 너희 나라로 가게 해
그러기로 한 너의 정부에게도 우의를 보낸단다
그래서 계속 지금처럼 도도함을 지키길바래

내 생애에서 너의 원화를 볼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어
내 맑은 의식이 다할 때까지
언제나 같이 지낼 나의 그리트…
너를 사랑해…

추신:



The Artist’s Studio, 1665, oil on canvas,

Kunsthistorisches Museum at Vienna

너의 주인 베르메르는 그 당시 흔했던 초상화 하나가 없어서
미술사가들은 그림 속에서 그의 모습 찾아내기가 아주 어려웠다지
오늘 이후로 영상물로 구체화 되어 신비감이 사라져 좀 서운도 해 솔직히는
아주 흐릿하게 웃으며 그림 한구석에 어둡게 등장하는 모습과
아코디언을 연상케 하는 검정옷의 뒷모습만 떠올랐는데 말이지…

1656년에 그린 ‘뚜쟁이’에서 베르메르는 매춘의 세계를 익살스럽게 묘사한 그림 이라네요

왼쪽 상단의 흐릿한 얼굴을 베르메르라고 미술사가들이 추측한다지요


The Ghost of Vermeer of Delft Which Can Be Used As a Table,

1934 – oil on panel – 24 x 18 cm

자신을 부각시키려 스스로 미친 천재라며 수많은 그림 사진 영화에도
모습을 나타내기를 좋아한 살바도르 달리…
베르메르를 특별히 좋아해서 그에 대한 강박관념에 정신적으로 시달렸지 싶단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

그와 반하며 베르메르를 과묵하고 사려깊은 사람으로
그녀의 소설 속에 그려낸 ‘슈발리에’에게도 깊은 애정을 보내며

*청금석: 푸른색을 만드는 준보석으로

배르메르는 푸른색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 빛의 물감은 굉장히 비쌌다지요
그는 군청색을 내기위해 끝까지 이 청금석을 사용했다 합니다

* * *

http://www.zalwinhotelgroep.nl/index.php?pageID=11&language=31

 

Vermeer

 

 

http://lu.hiof.no/~lev/Katter/thumbnails.htm

 

Jan Vermeer: Head of a Girl in a Turban

http://www.artlex.com/ArtLex/p/images/paintbynum_vermeer.lg.gif

http://www.values.ch/Art-Gallery/Vermeer/vermeer.htm

http://www.johannesvermeer.com/web-e/mechelenhouse-e.html

P.S: 2015 7.29 추가한 사진…;;

s,g_003[2].jpg

s,g[1].jpg

울 산호 첫솜씨

s_g___[1].jpg

어느 해 다녀가면서 내 방 문 열면 바로 보이는그리트 스카프랑 기념촬영

20030727013124.jpg

진주 귀고리의 소녀 ost

문제의 그리트 접시& 답글…

이 땐 조블을 10년간이나 할 줄 어찌 알았겠는지요…;;

. . . . . . .

Oak 죄송하지만 이 글을 읽었으면 간단한 멘트 부탁드립니다
공개하고싶지 않은 그냥 test목적의 게시판이라…
비 공개로 다시 할꺼거든요 바쁘신 분이실텐데…죄송합니다
2004/11/16 12:09:31
Oak 그리고 맨 아래 사진은 한 7년전인가 카메라 뽑기전에
한 장 남은 필름 그냥 마구 찍은 겁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잘 찍을걸…;; 2004/11/16 12:12:21
douky 반갑습니다. 이렇게 그리트에 열광하는 분이 계실 줄이야…
저도 그림이 하도 인상적이라 보고자 했던 영화였고 영화 보면서 감독이 책 쓴 이와 화가 베르메르의, 그리트의 감수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영화를 만들었구나 생각했었답니다.
집어 내신 부분들이 저도 영화 보면서 쏙쏙 마음에 담겼던 부분들과 일치합니다. 음식을 접시에 담고, 구름속에 숨어있는 색을 읽어 내고, 물감을 적절히 개고….
잘 읽었습니다 2004/1/16 14:36:57

 

Oak 휴우 ~~덕분에 급조된 블로그를 하나 만들게 되었군요
빨리 꼬리글 주셔서 감사드려요 글을 올리고
동호회에 올렸던 자료를 모아봤습니다.
확실한 아이덴티티도 없고..해서
개인 홈패이지 만들 생각이 어제까진 전혀 없었는데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저 정신이 하나도 없답니다.
음악도 엉키고, 수정중입니다 오늘 수영도 못가고 벌서는 기분입니다
좋은 인연도 맞게 되는군요 감사드려요 2004/11/16 14:45:51
참나무. 제일 첨에 올린 포스팅…
이미지 일부는 배꼽을 내밀고 있었군요
블로그 4년 만이라 찾아봤더니…지울까 말까…
거풍 한 번 합니다…방금 점심초대를 받아서 …나가야합니다
2008/11/25 11:53:32

 

산성 다 읽고 났더니…4년만에 다신 덧글이 새롭습니다.
요즘.. 책장 정리도 하고…먼지 앉아 삐진^^ 책들도 세수시키고…
다시 루브르 미술관 책도 꺼내 보고…시집들도 한 곳으로 모아 보고…
눈오다 바람 불다…
다시 햇빛도 반짝거리는… 창 밖도 내다 보다…가
편안한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리트에게 보내시는 따뜻한 시선, 같은 마음으로 저도…
핼로…!! 2008/12/08 14:35:08

참나무. 산성 님…금지된 장난하다 들킨 것 처럼 부끄럽습니다. 집을 비운 사이…
동지한 분 얻어 든든한 기분도 들면서… 2008/12/09 09:22:30
원종옥 와~ 정말… 참나무님은 베르메르를 좋아하시는군요^^. 2004년부터의 글이네요…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고 펌질(?!)하려 했는데, 사진이 안떠요…ㅠㅠ 3개나…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요? 2009/10/07 20:25:53
참나무. 혹시 했는데 역시 …좀 지나치지요…
사적인 글이라 지금 다시봐도…아유 참…;; 2009/10/07 20:29:20

4 Comments

  1. 연담

    29/07/2015 at 00:15

    조블 첫 글이라는데 몇년 쓰신 것처럼 자유자재이시네요,.
    시작부터 남달랐다는….^^
    참나무님 문화교실 덕분에 몰랐던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됩니다.
    조블 닫더라도 계속 해주세요.   

  2. 참나무.

    29/07/2015 at 00:28

    폰트체만 바꿨어요. 가끔 조블 이웃들이
    왜그리 진주귀고리 소녀(그리트)를 좋아하냔질문을 받는데…
    그 계기가 된 작은 에피소드…;;

    이 포스팅을 올린 이유는 엮인글 참조하시면됩니다

    조블 이웃 덕희님이 이 영화를 보고난 후 꽃꽂이 한 걸 당시
    당시 속해있던 클래식동호회(노날)회원이 저에게소개한 글이지요

    비가 많이 오네요…현지니는 토마스 보고있네요…^^
    조블 폐쇄이후 옛글들 살펴보는 중입니다-글 지우면서…;;

       

  3. 도토리

    01/08/2015 at 03:08

    이렇게 정성들여 써 놓은 글들을 지워야하는 날이 올 거라는 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지요. 그 땐…

    우야튼지간에 거풍 시키신 글이
    다시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리트 접시와 함께…^^*   

  4. 참나무.

    01/08/2015 at 05:32

    오래 머무셨나봐요…긴 글인데…

    뭐 맘을 비우니 괜찮아집니다…
    이렇게 거풍도 시켜가미 남은 시간 그럭저럭 보내야지요

    그러다 꼭 남기고싶으면 다른 창고에 모아두기도 하고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

    12월 지난 후 어찌될 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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