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가을편… 미국 대표시인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사람’에서 발췌했단다. 가을 초입 9월…바람은 잔뜩 들었는데 도무지 바람 날 짬이 없었다. 그래도… 약간의 옆구리 시간이 나길래…
알라딘갈 일이 있어서 종로통 걷다가 미루던 김영갑 10주기 전 만나고… 인사동 비밀의 화원이 있는 건물까지 접어들었다. 올해는 광복 70년이라 유난히 태극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자주 만난다. 디자인문화진흥원 KCDF 갤러리 2층- 박지선 개인전. 이제 다시 비밀의 화원엔 안올라가기로… KCDF 갤러리는들릴 수도 있겠지만… B2.자료실에서는 컴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혹여 아침에 급히 올리고 온 포스팅 오타 수정 정도는 할 수 있거든 아는 사람들만 가는아주한가한 곳이지만 의외로 좋은 예술자료 서적들도 많아서 다시 인사동 4거리로 흘러 흘러. . . 쇼 윈도엔 벌써 가을이… 인사동 가면 빠지지않고 들리는 곳 갤러리 통큰 2층 골목으로 접어드니 ‘나누면 행복합니다’ -김홍희 전? 눈이 번쩍 했지만 …전시장은 인천… 어렵겠다…이쉬워라… 갤러리 통큰… We are inSAFARI 그리고 인사아트센터
김흥수 1주기전/ 하모니즘 모델은 척 봐도 먼저 타계한 부인이다 2층…요즘은 전시장에서 의자를 자주 만난다 꼭 앉아본다. . . 좀 야한 드로잉…제목이 ‘사랑’ 구상과 추상의 이질적 요소를 하나의 어울림으로. ‘하모니즘’의 창시자, 김흥수의 작고 1주기전
“만고의 진리로 이어온 음양의 원리에서 출발한 ‘하모니즘’은 어느 한 시대의 유행이나 유물일수 없으며, 그것은 시공을 초월한 원리인 것이다.” 가나문화재단과 가나인사아트센터는 ‘하모니즘’의 창시자인 김흥수 (1919-2014)의 작고 1주기전을 선보인다. 작업에 대한 열정으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김흥수는 구상과 추상의 이질적 요소를 하나의 어울림으로 빚어낸 작가이다. 일찍이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던 그는 17세의 나이로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1955년 도불하여 야수파, 입체파 등을 섭렵하였는데, 이때 다채로운 색채의 쓰임을 터득하게 된다. 이어 1967년부터 12년간 미국에 체류를 하며 교직과 창작활동을 병행하였고, 귀국할 무렵인 1977년 ‘하모니즘’을 선언하며 예술가로서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하모니즘’은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동양사상이 모태로, 구상과 추상이 공존할 때 화면이 비로소 온전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즉 한 화면에 대상은 객관적으로 재현하고 정신은 추상으로써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김흥수의 독창적인 화법은 세계 미술계로부터도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하모니즘 선언전, 79년 서울에서의 귀국 후 10여년 간 일부에서 저것도 그림이냐는 비아냥거림을 나에게 보냈었다. […] 조형주의 미술의 당연성을 발견하고 선언문을 발표하기까지 24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며, 많은 애호가들이 조형주의를 이해하기까지는 다시 1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그당시 나에게 있어서 추상회화의 출현 그 자체만으로는 나의 흥미를 끄는 초점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새로운 양식을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다음단계의 또 다른 비전을 찾아서 누구보다도 먼저 확실한 입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동란을 겪은 젊은 작가로서의 나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동양인이자 한국인이기에 동감할 수 있는 인생의 여러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젊은 시절 김흥수는 제2차 세계대전과 6. 25 동란을 겪으며, 희노애락, 남북 통일에 대한 염원을 작품에 담았다. 특히나 김흥수는 우리의 문화와 얼을 표현할 때 가장 독특한 작품을 빚어낼 수 있다고 보고, 탈춤, 불상 등의 민족성이 강한 소재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이번 전시는 예리한 감각으로 시대를 앞서갔던 김흥수의 50년간의 화업을 시대별로 되짚으며, 그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출처<–
한국 고유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김흥수의 50년간의 화업, 시대별로 되짚다
작고 1주기를 맞아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김흥수의 195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작품 70여 점이 공개된다. 모자이크를 연상케 하는 콜라주 풍의 유화작업을 선보인 60년대, 구상과 추상, 객관적 재현과 주관적 내면세계 등 이질적 요소를 한 화면에 병치시킨 ‘하모니즘’ 보여준 70-80년대, 간결하고 명쾌한 선으로 그려낸 인체소묘가 많이 등장하는 90-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김흥수는 시대별로 끊임없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포아줌마
06/09/2015 at 10:50
70년대 말에 한국에 와서 귀국전을 열었다니 ‘저것도 그림이냐’는 비아냥 많이 들었겠지요.
지금처럼 세계로 향해 열린 시절이 아니었으니요.
포스터 그림 승무 참 좋습니다.
시대를 앞 서 가기
다른 곳을 다니다 돌아오기
참 외로운 일이었겠지요.
참나무님 덕분에 또 앉아서 전람회 다닙니다.^^*
참나무.
06/09/2015 at 12:27
그럼요…시대를 앞 선(내다 본…)예술가들 혹평에 시달려야했지요
가우디만 하더라도…
명작들을 만든 예술가들이 당대엔 인정못받는다는
오죽하면 광인 또는 천재 했을까요
오늘 주일 예배 후에도 굉장한 전시회 다녀왔답니다
현지니랑 놀아야해서 낼 아침에 올릴게요~~
고맙습니다…교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