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움’을 고집하던 황창배를 기억하다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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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다움‘을 고집하던 황창배를 기억하다 展

금보성아트센터 2015. 10. 23(금) ▶ 2015. 10. 29(목)

참여작가

김동연(경희대 교수) | 김병종(서울대 교수) | 오숙환(이화여대 교수)ㅣ오용길(이화여대 명예교수)

유인수(상명대 명예교수) | 최인수(서울대 명예교수)ㅣ홍순주(동덕여대 교수) | 황인기(성균관대 교수)

강다영 | 강신영 | 김서희 | 김석영 | 김영미 | 김태일 | 김혜경 | 금보성 | 금사홍

남궁혜영 | 박은애 | 백진진 | 선우혜원 | 영케이 | 오관진 | 오태식 | 유영신 | 이명순

이승철 | 이지숙 | 이영희 | 이인숙 | 이창조 | 장회준 | 정인미 | 최순민 | 한경원 ㅣ황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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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아트센터는 김종영 미술관 맞은 편에 있어서 들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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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전시 소식을 듣고동선을 미리 짜둔 전시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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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작품- 황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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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베란다 한 켠엔 작은 카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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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넉넉한 시간 남겨 커피 한 잔 하며 맞은 편 바라보기 좋겠어서

그 땐 사미루 커피 생략하고…얼핏 보니 가격도 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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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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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종이에 혼합재료 145.4 x 101cm 1990

현대 산업사회의 인간 생활을 닭으로 은유한 대표작.

장닭의 의성어 ‘꼬꼬댁’을 X자로 긋고 哭古宅( 곡고댁, 고택에 곡하다) 말풍선처럼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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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정 중앙에 45도 경사 철제계단 …후덜덜~~

갈 때마다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이유는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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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별로 없어서 조선일보 기사 대신 드르륵~~

그림은 그에게 신앙이자 동반자였다 정유진 기자

-‘우리다움을 고집하던 황창배…’展


미술계 선·후배, 제자들 모여 동양화가 故 황창배 회고전 열어
"작품은 터프해도 감성은 여려"

동양화가 황창배

교수 그만두고 괴산에 들어가서 작업만 하니까 아빠로선 빵점이었죠.

저랑 아이들은 늘 불만이었어요." (아내 이재온씨) "그림만보면 아주

터프할거 같은데 정반대예요.작은 일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소녀처럼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지요." (김병종 서울대교수)

동양화가 황창배(1947~2001·)의 아내는 "남편 삶의 전부는 그림이었다"

고 했다. 미술계에서 명성이 알려질 무렵 교수직을 그만두고 충북 괴산

들어가 작업만 하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속이 탔고 아이들은 서운함

느꼈다.하지만 작업실에서 은둔하며 만들어 낸 작품들은 1970~80

년대‘황창배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독창적이었으며 한국의 수많은

젊은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당시 그에 대한 작가론과 전시 서문을 쓴

사람만 스무 명이 될 정도로 관심이 쏟아졌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갤러리에서 23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우리다움을 고집하던 황창배를 기억하다’전은 그의 화려했던 업적을

기억하고 인간 황창배를 추억하는 미술계 선·후배, 제자들이 모여 기획했다.

황씨의 작품 7점과 동료, 선·후배 작가들의 작품 38점을 선보인다. 그를 기리는 전시를 연다는 소식에

금보성 작가는 선뜻 갤러리를제공했다."세상이 추구하는 흐름을 따르지 말고 본연의 모습을 그림에 담으라"

했던 작가의 말처럼 참여 작가들도 동·서양화의 구분을 떠나 가장 ‘자기 모습다운’ 그림을 화폭에 담았다.

황창배는 30세가 되던 1977년 국전 문화공부장관상, 이듬해 국전 대통령상을 받으며 일찍부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통 필묵화 방법을 기반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들었으며 화선지,

캔버스뿐 아니라 양잿물에 삶아 부드러워진 마직 위에 그림을 그렸다. 먹과 분채를 사용해 동양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70년대 작품들은 80년대로 접어들면서 거침없고 추상적인 형태로 변했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유화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고 거친 붓놀림으로 물감을 겹겹이 쌓기도 했다. 모래를 사용해 인체의 모형을

그리는가 하면 미국의 낙서화가 바스키아처럼 사람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화 그리듯 그렸다.

흑과 백, 황토색 등 낮은 채색을 주로 사용하던 황창배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괴산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연스레 꽃과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흑과 백, 황토색 등 낮은 채색을 주로 사용하던 황창배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괴산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연스레 꽃과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에는 노랑, 빨강 등의 원색이 더해졌다. /이재온 제공

"소대장 시절에는 하사관들의 얼굴을 그려주며 소주와 바꾸었던 기억도 남아 있다.

그토록 그림은 나에게는 신앙이요, 동반자요, 호흡과도 같은 것이었다."

생전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일까. 자식들에겐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지만,

수많은 작가에게 그는 영감의 원천이며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아버지의 장례식날, 미술계 인사들이 모여들어

작가를 회고하는 모습을 보며 남매는 비로소 ‘인간 황창배’의 면모를 봤다. "이제 보니 우리 아빠는 참 멋진

사람이었네요." 아직도 그의 그림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02)396-8744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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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 매 번 지나치는데보니-앤-땡칠 인형공방에도 들어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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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이 동생 윤아가 인형놀이 하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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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소이 캔들을 자주 만난다.

재료가 좀 비싼 듯 했는데 기성제품들 값이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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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옷이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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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넓은 공간인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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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 카페도 있고…값이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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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 된 인형가게- 값은 챙겨보지않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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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갈아타야하니 통인동에 내렸다.

효자베이커리 야채빵 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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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긴 줄 보고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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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종업원 혼자 전화하기 바쁘다

서촌에서 제일 신선한 원두을 사용한다니

언제 서촌 갈 때 들리기로 하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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