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태어나 살게 돼 좋았습니다”

어제 평창동 영인문학관 김남조 시인(89세)자료전 개막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저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씀을 기자가 제목으로 뽑아올렸네요
아직 사진 정리 전이라 먼저 스크랩해둡니다.

 수정할 것: 오늘(9.24 토 14:00)
조정래 시인의 강의는 불발-개인 사정으로,
혹 계획하셨던 분 참조하시라고…

‘詩 인생 70년’ 김남조 “태어나 살게 돼 좋았습니다”

  • 김남조 시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인문학관, ‘시와 더불어 70년 – 김남조 자료전’ 개막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태어나서 좋았다고, 살게 돼서 좋았다고, 오래 살아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김남조(89) 시인은 23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린 ‘시와 더불어 70년 – 김남조 자료전’ 개막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한 편의 시 구절 같은 말로 행사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문학에 발을 들인 계기로 “어린 시절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1천500명 중 하나뿐인 한국 아이라고 일본 아이들이 구경하러 와서 둘러싸는 바람에 내 몸이 찌부러질 정도였다. 가슴 속에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커다란 불덩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제일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신문에 날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무모한 아이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런 어린 시절에서 뭘 배웠느냐 하면, 해방되면서 우리 민족이 어렵지만,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애써 살아오면서 삶에 경건하고 겸손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문학의 핵심은 슬픔이라고 했지만, 슬픔 안에는 미래에 대한 염원과 미래에 대한 하나의 힘과 기도와 간절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또 “좋은 시대, 좋은 나라에 태어났고 좋은 분들과 함께 제가 살고 있다. 얼마나 영광이고 얼마나 과분한지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감사하다”고 머리 숙여 인사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서도 “저를 위한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어령과 강인숙 두 탁월한 인재가 10년 역사를 쌓아온 영인문학관 행사에 내가 한 장의 종이로 삽입됐다고 생각하고자 한다. 38개국어로 번역된 시(‘깃발’)도 이어령 씨가 올림픽을 주도했을 때 선수들 수첩에 시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쓰라고 해서 썼다”며 애써 자신을 낮췄다.

이어 “그동안 출판기념회를 팔순 때 딱 한 번 하고 언제나 뒤로 피했고, 90이 됐으니까 뭘 하자는 후배와 제자들에게도 내년에 하자고 했는데, 오늘 이 자리가 너무 송구하고 과분하고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거듭 겸양의 자세를 취했다.

단정한 원피스에 분홍색 스카프로 멋을 내고 옅은 화장을 한 그는 여전히 고왔다. 지팡이에 의존하지만 인사말을 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서 이전과 다름없이 또렷하고 힘 있는 어조로 말하는 등 건강한 모습이었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낸 뒤 60여 년간 ‘사랑초서’, ‘귀중한 오늘’ 등 17권의 시집을 내며 참사랑을 노래해 온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구순을 맞았지만, 여전히 시를 놓지 않고 있다. 3년 전 열일곱 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낸 데 이어 이듬해에도 월간 문예지에 신작 시 4편을 발표했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원장의 남편이자 김남조 시인과 오랜 세월 교분을 다져온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축사로 “김남조 선생님은 모든 젊은이의 마음속의 마돈나이자 사랑의 대상, 낭만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모든 삶의 고비를 지나 하나의 불처럼, 잘 성숙한 하나의 발효제처럼 날이 갈수록 시의 진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고 찬사를 보냈다.

강인숙 관장은 “선생님이 올림픽 선수 수첩 38개를 여태껏 갖고 계시더라. 온갖 인터뷰, 대담 기사 스크랩도 완벽하게 해놓으셨다. 90세가 되도록 명확하게 기억하면서 모든 자료를 질서정연하게 손수 정리해놓은 건강함이 감동적이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나온 자료가 엄청나게 많다”고 소개했다.

이어 “선생님은 지금도 지방에서 누가 오라고 하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간다. 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돈 안 되는 시만 쓰면서 살겠다는 사람을 보면 너무 사랑스러워 돕고 싶어서 가신다고 한다. 그 마음이 굉장히 감동스러워 내가 따라다닌 적도 몇 번 있다. 또 90이 되도 날마다 하나씩은 배운다고, 그래서 늙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오래오래 사셔서 좋은 시 더 많이 써주시길 바란다”고 경의를 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소리꾼 장사익이 참석해 축하 노래로 ‘귀천’과 ‘봄날은 간다’를 부르기도 했다.

김남조 시인의 시집과 원고, 인터뷰 기사, 애장품, 사진 등 지난 70년 역사를 담은 자료들을 총망라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오는 11월 12일까지 열린다.

mina@yna.co.kr

 

4 Comments

  1. 데레사

    24/09/2016 at 08:58

    김남조 시인이 살아 계시는군요.
    사진을 보니 정정하셔서 좋습니다.
    젊은시절 선생님의 시를 좋아했거든요.

    참나무님 덕에 많은것 배우고 알게되어 기쁩니다.

    • 참나무.

      24/09/2016 at 09:28

      아직 자태 고우셨어요
      일년에 두어 차례 영인문학관 행사에 지팡이 짚고서도 꼭 오셨지요
      어제는 지팡이도 없이 서서 강연하셨어요
      전시만으로도 우리세대들에겐 참으로 귀한 자료들이 많았어요
      날짜 참조하시고 한 번 가보셔도 좋으실텐데요

  2. cecilia

    24/09/2016 at 15:30

    김남조 시인님, 정말 변하지 않으셨네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일때 저희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실때
    처음 뵈었는데 저희들이 가진 젊음이 부럽다고 아주 부러워하시는
    눈으로 저희들을 보셨었어요.

    • 참나무.

      24/09/2016 at 18:56

      태어나 살게 돼 좋았다시는 말씀
      곰곰 생각할 수록 반성이 되는 참한 말씀이신 듯…
      *
      어제 해야할 일 오늘 다 하느라 많이 바빠
      억망으로 올려두고…
      이제사 겨우 오타수정이나마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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