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

건축가 승효상 ‘열두 집의 거주풍경’展

오감을 만족케하는 귀한 전시다

승효상 개인적으론 상업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개인전이고

진화랑 신민 큐레이터의 끈질긴 요청으로 1년간 준비한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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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랑 1층 영상실에서…

작품들 잘 모아 둔 이로재 사이트  참조 : IROJE <–

“…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승효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빈자(貧者)의 미학 그가 “내 화두로 평생 삼겠다”고 선언해 유명해진, 1996년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건축가인 그는 책도 참 많이 출간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

거북한 글들 난무하는 요즈음 새겨볼 만한 글들이 많다.

오래 전 중앙일보에도 실렸던 글  먼저 펼쳐본다.

출처 :[승효상의 ‘我記宅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폐허 <–

승효상 건축가 / 이로재 대표

건축의 본질이 공간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인 공간을 설명하는 일이 그 건축의 공간이 특별하기 때문인데도, 대개는 그 감동을 그 건축의 모양이나 크기 혹은 색채, 문양 같은 것을 통해 설명하곤 한다. 이는 건축을 공간이 아니라 큰 조각 같은 시각적 오브제로 인식하는 것이니, 결국 건축의 본질과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공간지각 능력은 예술적 기예나 공학적 지식처럼 훈련으로 습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아무래도 타고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지도를 보고 이를 평면의 그림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삼차원의 공간구조로 읽어 실제처럼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에게 이 능력이 모자라면 평면으로 그리는 설계도와 실제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가 백 번을 그려봐야 소용없는 일이 된다.

 이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폐허지는 대단히 흥분되는 여행지다. 공간탐험이 전제되는 이런 여행은 그 장소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건축적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여행인데, 공간지각이 뛰어난 이들은 폐허의 현장에 널려 있는 유적의 파편들을 통해 폐허 자체의 풍경만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해 본다는 것이다. 특히 서양의 건축과 도시는 주로 석재로 만들어졌던 까닭에 수천 년이 지난 폐허라도 아직 많은 잔해가 있어, 건축가라면 그 원래의 공간구조와 삶의 모습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약간의 설명만 보태면 일반인도 그 실제적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여서, 파르테논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나 로마의 포로로마노 혹은 이집트의 수많은 신전은 수천 년 전에 이미 폐허가 된 옛 장소지만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를 불러모으며 그 역사적 실체를 확인시키고 있다.


성주사지.

지난주 로마에 갔을 때다. 동행한 이가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포로로마노를 보고 싶다고 해 오래전에 방문했던 이곳을 다시 가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고, 현상을 보존하는 작업도 이곳저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일행에게 역사적 배경과 실체의 모습을 설명하며 다녔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감동이 이제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부서진 신전과 광장의 돌기둥들, 석제 계단과 널브러진 조각 파편들을 근거로 복원한 옛 모습은 박제였을 뿐이며 그 이상의 상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실체적 삶도 없어 오로지 관광만 남아 있었으니 내게는 이미 의미 없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 떠오른 풍경이 있었다. 바로 우리 땅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의 폐허였다. 감히 말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폐허다. 처음 갔던 때가 십 년 전이었지만 그때 받은 깨달음은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웠다.

 백제시대에 창건한 후 통일신라에 이르러 중창해 이름을 떨쳤다고 하는 이 폐사지에는 오늘날에도 오층석탑 하나와 그보다 작은 삼층석탑 셋, 그리고 석등과 석불 등 유적이 있어 이곳이 폐사지임을 알린다. 물론 모든 건축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유장한 산의 능선에 둘러싸인 이 폐사의 풍경은 대단히 아름다웠는데, 그 까닭이 자연풍광이나 남은 잔해가 주는 시각적 미학이 아니었다. 바로 스산하기 짝이 없는 그 장소에서 원형의 환상과 폐허의 실체가 교차하면서 나타나며 깨달은 건축의 본질이요 숙명이었다. 추측하면 천왕문과 석등, 탑, 법당 그리고 금당 등이 주축을 이루고 그 좌우에 여러 승방과 각종 전각이 있었고, 공양간이나 고사 같은 부속채와 부도비들로 주변을 이루었을 게다. 문헌에 의하면 전체가 천여 칸의 건물군이었으며 문도만도 2000명이 넘어, 수도승들이 공양할 때면 그 쌀뜨물이 성주천을 따라 십 리를 흘렀다고 했던 대사찰이었다. 어느 곳이든 불교적 수행의 치열함이 곳곳에 만연했었을 게다. 그러나 부족한 나의 공간지각 능력은 여기에서 드디어 한계를 맞고 말았다. 한 번으로 완성된 것도 아니었으며 여러 차례의 중창과 불사를 거쳤을 이 사찰의 공간구조를 남아 있는 불과 몇 조각의 파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황망해 가쁜 숨을 몰아 쉰 후, 그 역사가 생명을 다하여 땅으로 스며 이루어진 현실의 폐허를 보았을 때, 비로소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부한 그 공간지각 능력은 부질없는 집착이었다. 보이는 것은 침묵의 세계였으며 아마도 그게 이 절을 세운 목적이었다. 이 폐허는 쓸모없게 된 사찰이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 삶의 부질없음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보이지 않는 절이었던 것이다. 그게 참된 불교 아닌가.

 우리의 옛 건축은 주재료가 나무요 흙이었던 까닭에 폐허가 되면 그 건축은 거의 완벽히 사라지고 만다. 많은 파편이 지저분하게 남아 아직도 그 존재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서양의 폐허가 아니라, 건축의 숙명을 순순히 받아들여 맑은 수묵화처럼 존재를 비움으로써 완결하는 폐허다. 그게 바른 건축이요 그로써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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