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겨울나그네에 빠져…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윤동주  시인이 1941년에 쓴 눈 오는 지도(地圖) 지요. 홀로 남겨진 이 사내는 왜  순이가 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와서 이러는 걸까요.  1941년 나라가 없는 시대 이 남자가  순이에게  하고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하얀 눈 위에 구두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발자국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발자국 …혹시 이 바둑이는 새벽 눈 밟고 떠나간  순이의 바둑이는 아니었을까요. 따라간 바둑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첫 기차가 도착했을 때 순이가 안고 탔을까요. 아니면 아직도 순이가 기차에서 내리길  눈내리는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까요…

곧 이어 ‘ 아주 약간’ 어긋진 한국어로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가 김효근의 을 불렀고 그 전에 먼저 이안 보스트리지의 겨울나그네 중 8곡 ‘회상’과 해설이 있었지요.

… ….

이상은 어제 ‘당밤음’ 방송  늦은 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선 아나의 방송 일부  녹취, 제맘대로 편집했습니다

이미지,  낯익지요 조블 시절  몇 번 올린 적 있어서…

그나저나 지난  가을 겨울비가 누워있는 좁은 납골당  안에서 단 한 권의 책을 보고 만약 나에게 단 한 권의 책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해봤는데…어쩌면 윤동주 시집이 아닐까 싶네요. 이후 일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요즘 하루를 마감하는 밤 늦은 시간에  영국 출생  테너,  흔히 노래하는 인문학자라는  이안 보스트리지  30년의 무대에서 100여 차례 노래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쓴  그의 책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하루에  한 곡씩 발췌하여 가사와  책에 씌여진 세세한 곡 해설 소개  후 같은 곡을 들려줘서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24곡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넘쳐 흐르는 눈물’ , 전문적인 해설을 조목조목  어찌나 상세하게 설명하는지 이번 책은 시쳇말로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었어요. 제가 왜 그 곡에 유독 맘을 빼앗겼는 지  미쳐 못 느낀 부분까지  알게 해 주더군요. 음악 비평가나  음악 학자가 아니고 연주자가  오랫동안 연주해 본 경험을 연구 분석한 해설이라 아마도…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그가 늦은 나이 29세(?)에 피셔 디스카우의 적극 권유로 테너가 된 건 유명한 이야기지요. 그리고 겨울나그네 주인공처럼 그도 실연을 직접 겪은 후 연주했다는 에피소드도 오래 전에 제블로그에 소개한 기억이 있는데 아람누리 내한 공연 다녀오기 전인지 후인지, 오래되어 정확한 진 모르지만.

KBS에서 이번 기획 맘 먹고 시작한 것 같습디다.  각 곡의 분위기에 따라 페터 슈라이어, 마티아스 괴르네 연주에다 반주도  안스네스, 리히터, 에센 바흐 등 바꿔서 들려주데요. 지난 번 보리수 경우는  합창곡까지 무려 3 버젼의 연주까지 들려줄 때는  완전 감동하여 다시듣기까지 했지요.

오늘 저녁 8곡, 도깨비불이라는데 모르셨던 분은(혹시 겨울나그네에 관심 많으신 분이라면) 오늘 저녁 부터라도  들어보시라고 긴 글 올리는 중입니다.  혹시 연말 다른 계획 때문에 놓치면 편안한 시간에  ‘다시듣기’ 로도 가능하고 해외계신 분들은  ‘콩’ 다운 받고 들으셔도 후회없으실 듯, 제가 KBS선전 참 많이 하네요.

Franz Schubert Winterreise :
-Ian Bostridge and Julius Drake (Part 6/24)
wasserflut(넘쳐 흐르는 눈물)

10 Comments

  1. 데레사

    21/12/2016 at 00:46

    한 숨자고 깼어요.
    이 시간에 들으니 참좋네요.
    사방은 고요하고 나는 누워서 음악감상 합니다.
    고마워요.

    • 참나무.

      21/12/2016 at 00:52

      근데 요즘 제 블로그가 좀 이상해요
      나중 쓴 글이 매번 맨 위에 터억하니 올라와 있네요…ㅎㅎ
      뭐 별로 불편하진 않지만 메니져님이 고쳐줬으면 좋겠어서^^

      겨울나그네에 한 번 빠지면 내내 들어야 하는 못뙨
      습관이 있어서 여태까지 여러 버젼으로 듣고있었어요
      이제 자야겠어요~~ZZZ 데레사님도 좋은 꿈 꾸셔요~~

      • manager

        21/12/2016 at 17:53

        안녕하세요, 위블지기입니다.
        나중에 쓴 글이 위에 올라와 있다는 말씀은 최신 글 맨 앞에 나온다는 말씀이신가요?
        만일 글의 순서를 변경하고 싶으실 때는 오른쪽 공개하기 옵션에서 ‘즉시 공개 편집’을 클릭하셔서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시는 방법으로 조정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라면 다시 말씀해 주시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나무.

          21/12/2016 at 18:11

          감사합니다. 이 답글을 이제사 보고
          방금 알려주신대로 해 보니
          이 포스팅이 순서대로 맨 위에 오는군요
          그런데 이후에도 새 포스팅 올릴 때마다
          ‘공개편집’ 해야하는건지요?

  2. 홍도토리

    21/12/2016 at 14:52

    콩으로 듣던 명연주 명음반을 줄이고
    이안 보스트리지의 누워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코가 참 높네.. 이카면서.ㅎㅎ
    .. 눈이 올 것 같이 하늘이 흐려집니다.
    오늘은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
    아침에 동지 팥죽 만들어 먹었어요.
    겨울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봄이 올테지요…?^^*

    • 참나무.

      21/12/2016 at 16:47

      직접 보면 실물도 미남형
      퀼트 모임 끝마치고 집에 가는중이에요
      오늘 조재혁씨 마지막 방송 들으셨나요
      6년간이나 하신 줄 몰랐는데…
      팬들이 섭섭하다고 난리던데요
      새해부터(?)예당 11시 마티네 콘서트
      진행한다던가요..저도 정들었나봐요
      수요일 기다리며…???

  3. 홍도토리

    24/12/2016 at 12:08

    아고고..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명강의 참 기분좋은 방송이었는데
    아쉽네요.
    그럼 어느 누가 그 시간을 그토록 알차게 만들어주시려나요…?

    • 참나무.

      24/12/2016 at 12:33

      그러게요..요담 수요일 기다려 볼 수 밖에…
      정말 알찬 시간이었는데
      올 한 해 썰렁한 곳 지켜주셔서 감사 따따블입니다
      해피 홀리데이~~~^^*
      전 오늘 하콘 갈라 편안하게 다녀오겠는데요
      현지니 하부지도 늦게온다고
      저녁밥 필요없다 하네요~~우후후…^^*

  4. 홍도토리

    24/12/2016 at 12:11

    위블지기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댓글 올라간 ‘시간’보다
    ‘년월일’ 또는 ‘년월일 시간’ 을 적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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