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수 페북에서 읽은 글 공감이 되어 올려둡니다
얼마 전 강남구에서 4억 원을 들여 싸이의 말춤 동상을 세울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론 대중문화에 있어서도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기념하거나 동상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잠깐 세계적 유행을 몰고 왔다는 이유로 그것을 기념하려는 생각은 너…무나 초라하고 저급하게 느껴집니다. 이 계획은 우리의 현재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 관한 이야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한국의 문화로 대변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1. 연예 공화국
저는 대중예술의 순기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로부터 즐거움과 삶의 위안을 얻습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음악을 몇 곡쯤 간직하고 있는 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우리 문화 전반이 대중문화에 잠식되어 가는 현상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평론가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해 토론하고, 시사평론가들이 연예인 수입에 관해 토론하고 수많은 아이들이 죄다 연예인이 되겠다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몰려듭니다. 미디어가 거대한 상금을 내걸고 아이들에게 화려한 삶과 경제적 성공이라는 환상을 주입합니다. 그 아이들의 진짜 재능을 소비하고 소진시킵니다. 이토록 대중예술에 함몰된 문화적 불균형 상태는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2. 우리의 문화적 기준점
어느 시대에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공존했습니다. 그리고 순수예술보다는 대중예술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처럼 오로지 대중예술이 문화적 기준점이 되어 완벽히 대중예술에 편중된 시기는 없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시대적인 변화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계속해서 대중예술이 창작되고, 그 빠른 소비 형태 역시 일련의 예술사적 흐름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수예술이 곧 다음 세대 대중예술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또한 문화적 의식이 곧 그 시대의 사회성과 철학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는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저는 대중예술에 과도하게 부여된 환상 등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3. 문화적 가치
역사에 기록된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일면 그 시대에는 충격적이었고, 이해받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거친 비난을 받으며 살아남은 것들입니다. 그런 예술작품들은 때로는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며 그 시대의 관습을 타파하고, 기술을 갱신하며, 사상적 저변을 넓혀왔습니다.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오랜 탐구와 사유의 대상이 되었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치가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문화적 가치란 그것의 장기적 검토 가능성과 결코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없습니다. 반면 한국 문화계는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능동적으로 발굴하고 검증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그저 빠르게 소비될 수 있는, 쉽고 단순하며 자극적이고 유희적이란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대중예술에서 사회적 해법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4. 변화의 시작
얼마 전 한국 피아니스트계의 대모인 이경숙 선생의 공연을 지방에서 진행했습니다. 관람료가 무료였던 이 공연을 시작하기 전 한 그룹의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들어오시길래 사실 많이 걱정했습니다. 트로트를 즐겨 듣는 그분들에게 과연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저의 기우였습니다. 그분들은 점점 연주에 집중했고, 그 낯설고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음악을 시간이 지나며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똑같은 파마머리를 한 그분들은 아마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라고 말이죠. 저는 다시 한 번 확신했습니다. 문화적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은 그러한 문화적 환경에 노출되는 빈도와 기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대중의 눈높이로 꼭 내려갈 필요가 없으며, 그저 그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쩌면 앞으로도 트로트 음악을 더 많이 듣겠지만, 이제 더 이상 클래식이 어렵고 따분한 음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5. 순수예술은 유희가 아니다
얼마 전 몇몇 공연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공연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왜인지 아시나요? 전 대통령의 서거에 공연하면 안 되지 않겠냐는 겁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 직후에도 대부분의 공연들이 취소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많은 공연 중 순수예술마저 취소되는 건 사실 우리의 현 모습을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결국, ‘예술은 그저 가벼운 유흥’이라는 인식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들이 좇던 대중예술이 적어도 깊이 있는 것은 아니란 데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순수예술마저 그렇게 인식하는 것은 암담한 일이 아닌지요. 즉 순수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그저 예술이란 ‘유희’라는 인식은 참으로 위험하고 난감한 일입니다. 그것을 구분 못하는 우리사회의 이러한 모습은 절대로 선진화된 사회에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6. 백남준이 살아난다면
이러한 척박한 문화토양에서도 몇몇 젊은이들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가 성숙되어 있다면 우리 스스로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능력을 칭송할 겁니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연주자가 몇 명쯤은 더 나올 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이 개인의 성과로만 돌아간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어쩌면 비겁하게도 외국에서 인정했을 때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못합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 백남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의 현재 환경에선 백남준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가 다시 환생한다 하더라도 그가 사오십 년 전에 했던 작품이 아닌 새로운 어법의 작품을 구사한다면 우리는 그의 가치를 알아볼 수 없을 겁니다.
7. 빠르고 편하게?
저는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사회에서야말로 더더욱 진지하게 문화적 가치와 그 균형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어렵고 진지한 예술작품들을 이해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몰라도 된다는 의식 자체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문화적 결실을 얻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국의 성공한 정책이나 제도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왜 하는지, 어떤 환경 속에서 가능했으며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늘 불충분합니다. 빠르고 가시적인 성과만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그 구성원들의 사유를 단순하고 저급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많은 문제들이 대중문화 대중매체에 함몰된 우리의 상황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8. 순수예술의 순기능
우리 사회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 모든 문제에 대해 보다 나은 방향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 전반에 배양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순수예술의 순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검증되고 검증하는 습관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학습되어진 사회가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서든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기준점을 높여야 합니다. 이제는 높여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살기 어려워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 정도 마음의 여유는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우스 콘서트가 지금까지 해왔고 또한 하려는 일이 바로 그렇게 기준점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9. 마지막으로…
그리고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행동이 없는 동의와 격려가 여러분의 책임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책임 또한 함께 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우리는 권리만 있고 책임이 부족하지 않은지요. 우리는 언제부턴가 책임을 지지 않는 습관이 생긴 건 아닌지요? 그러면서 권리는 매우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권리는 무슨 소용인지요. 그 책임을 남에게로 전가하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을뿐더러 역시 비겁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술이란 사회현상이고 그 시대의 철학이 담겨있는 소중한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생각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그러한 문화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지요.
제512회 하우스콘서트 – 2016 Gala Concert
일 시 ㅣ 2016년 12월 24일(토) 6시
출 연 ㅣ 약 10여개 팀이 출연하며, 연주자는 공연 당일 현장에서 공개됩니다.
장 소 ㅣ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회 비 ㅣ 1인 5만원
문 의 | 02-576-7061, 010-2223-7061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SBS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