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 어떤 산타 할매이야기

우리 동네 어떤 할머니가 문앞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30개 정도 걸어놓을 테니 다녀가실 분은 덧글을 달아달라고. 마을 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리셨다.

한명. 두명. 열명. 스무명인가 싶더니 어느새 60명까지 인원이 늘어났다. 산타 양말을 더 늘리고 거기서 마감을 했다. 그런데 60명이 되는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경비아저씨한테 차단기 호출을 하고 가정집을 찾아오는 게 여러 모로 민폐라 장소를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J 꽃집으로 변경했다. 오픈된 샵으로 장소 변경 글을 올리자 저도 가고 싶어요~ 저도 가도 되나요? 늦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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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세요~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픈 엄마들 마음을 외면하지 못한 할머니는 다 오시라고 했다. 신청 인원이 100명을 넘어서는 순간 무념무상이 되셨다고 한다. 산타 양말을 더 사다 나르시고. 광화문 다녀오신 후로 무릎이 아프신데도 코스트코까지 가서 좋은 과자를 사오시고. 나이별로 성별로 취향이 다를까봐 신청한 이름표 보고 골고루 골라 담으시고. 행여 신청을 안 했는데 길가다 빨간 양말 달라고 우는 아이 있을까봐 여분도 준비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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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늘 낮 1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산타할매는 꽃집에서 선물 받으러 오는 아이들을 맞으셨다. 몇몇 엄마들이 짐을 나르고 아이들 이름이 적힌 선물을 찾아주는 일을 도왔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아니 강아지보다 더 폴짝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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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들은 약소하다며 보온병에 대추차를 끓여서 오고. 김밥을 직접 싸서 오고. 부침개를 부쳐서 오고. 따끈한 광동탕을 손에 쥐어 주고. 핸드크림이나 향초를 예쁘게 포장해서 들고 오고. 샵에서 파는, 직접 담근 유자차를 여러 병 들고 오고. 정말 드릴 게 없다고 슈퍼 다녀가는 길에 손에 들고 있던 두부를 주고 가고. 된장을 주고 가고. 붕어빵에 귤에 쿠키에 사탕에 과자에 사과즙에 고구마에 장갑에 립밤에 아이들이 직접 쓴 카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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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매는 사람들의 약소하다는 선물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주는 사람도 감동하고. 받는 사람도 감동하고. 보는 사람도 감동하고.

산타할매로 인해 사람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는 것이 얼마나 사람답게 사는 일인지를,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100명이 넘는 엄마와 아이들이 알게 되었다. 다들 오늘의 추억을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여기는 서울특별시. 북한산 아래에 있는 어느 예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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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사진 -염은진
  • 날짜 : 2016.12.24
  • 출처 : 페이스 북

폰으로 급히 담은 사진같습니다
아직 허락 안받았지만
오늘 성탄절,
어쩌면 용서가 될 지도 모르겠네요
제 오랜  젊은 친구여서…

 

4 Comments

  1. 데레사

    25/12/2016 at 11:16

    세상에 너무나 훈훈한 얘기네요.
    가슴이 따뜻해 옵니다.
    모든분들께 성탄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 합니다.

    • 참나무.

      25/12/2016 at 11:50

      “행여 신청을 안 했는데 길가다 빨간 양말 달라고 우는 아이 있을까봐 여분도 준비하시고…”
      요 부분도 감동이었어요
      얼마나 그릇이 크고 맘 따듯하신 분이신지…
      제 손주들만 챙기고 친지들께 안부도 게을리 한 절 부끄럽게하더라구요. 이런 거 올린 젊은 친구도 자랑스럽고
      새해에 좋은데서 커피타임 나누려고 결심했어요~~

      *
      어제 갈라콘서트 뒷잔치 이야기도 재밌는데
      우선 이 이야기 먼저 나누고싶네요…^^

  2. 홍도토리

    26/12/2016 at 17:16

    감동입니다.
    닮고 싶네요!
    언제가는 해야지… 하는 건 좀 비겁한건가요…
    그래도 언젠간 해야지… (지키지 못할 약속일런지 몰라도)
    이 아름다운 감동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할텐데욥..

    • 참나무.

      26/12/2016 at 18:31

      저도 비슷한 생각 하긴 했는데
      은지니편으로 이 할머님께
      선물 하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답니다
      올 연말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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