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넘기는 날 한 번씩 창자가 끓어지듯 울던 어머니’
몇해 전 ‘나의 어머니 박경리’ 라는 주제로
김영주씨가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했던 말이다.
꾹꾹 누르고 참았던 울음을 섣달 그믐날 한꺼번에 터트리고
그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글을 쓰시는 뒷모습을 보곤 했다던…
천성 박경리
남이 싫어하는 짓를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 할까
내가 싫은 일도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싫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랑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것도 하고
내가 싫하는 짓도 하고
그랬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지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 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빛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공개적으로 내지른 싫은 소리 쓴 소리,
그거야 글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 않은가
–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
하루를 마감하던 시간,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창자가 끊어지듯 울던 어머니
그 때가 다시 생각나서였고
만약 나도 시를 쓸 수있다면
꼭 같은 마음이어서…
오늘-글 올리는 동안 날이 바뀌었지만 혜화동 JCC,신년음악회랑 로데오 거리 K현대미술관까지 다녀와 할 얘기도 많은데 아무짓도 못하고 있다. 슈베르트 때문이다. 지난 주부터 맘 먹고 상당히 많은 음악들 찾아들었다.
슈만부터 슈베르트,모짜르트까지…그러다 다시 슈베르트다. 오늘 외출 중 이어폰 끼자 마자 슈만이 슈베르트 음악 중 최고라 찬사한 피아노 소나타 가 스며들 때 부터였다.
오늘 많이 바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아무도 없는 집, 늦게 들어와 빵쪼가리 먹어서
현지니 하부지 혼밥 자시게 하고…
왕왕 듣기싫은 뉴스 체널 돌리자 마자
아르테에서 ‘겨울 특집(2)’슈베르트 겨울나그네!
‘9시 뉴스 시간까지만’ 양해를 구했다.
거부할 수 없는 내 표정을 읽어 그랬는지
-체널 양보는 현지니가 유일한데
요즘 허리 삐끗하여 적외선 쐬러
안방으로 총총…
11. 봄 꿈
… ….
누가 창유리에
꽃잎을 그려 놓았을까?
혹시 한 겨울에
꽃을 본 몽상가를
비웃지는 않을는지?
… ….
닭이 울어
내 마음이 깨어나면
여기 홀로 앉아
꿈을 되새겨 보리
눈을 다시 감으니
아직 가슴은 따듯이 뛴다.
창가에 나뭇잎 푸르를 날 언제인가?
내 사랑하는 이 안아볼 날 언제인가?
-번역 정만섭 ( ‘명연주 명음악’ 자료실에서)
정확하게 24곡 전곡 77분.
자막까지 나와 몰입할 수 있어서
나도 겨울나그네가 되어버렸다.
아는 곡은 허밍으로 따라하다
나도 모르게 줄줄…
이안 보스트리지 이후 차분하게
전곡 연주 처음이라 그랬을까
17일 행보…
정신차리자 할 일 태산인데…
F. Schubert 피아노 소나타 18번 G장조 Op.78 D.894 ‘Fantasie’ / Pawl Lew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