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인 글한줄과 ‘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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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윤대녕 작가의 산문집 두 권을 통독했다. KBS1 F.M ‘책갈피에 꽂아둔 쪽지’란 코너에서 소개한 단 한 줄 때문이다. 전후 사정 대강 요약하면 작가는 어느 날 필립 글래스 음악을 들으며 동해안 쪽으로 차를 운전하다  흐름한 휴게실로 밥 먹으러 들어갔을 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된다. 작가는 그 때 마흔 무렵이었고 어금니 한 개가 흔들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소설도 그다지 잘 써질 때가 아니었다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통유리창 밖으로 저물어 가는 바다를 내다보고 있을 때 아주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지만 그 소리는 식당 천장 구석의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작가는 그 당시 수개월 동안 필립 글래스 음악만 듣고 있었고 조금 전 스피커에서 들린 소리는 차 안에서 듣고 있던 ‘해변의 아인슈타인’ 이란 곡이었다.

그 순간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잠깐 혼란에 빠져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없어 맛없는 소고기 국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퍼 넣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전 생애가 그 외진 휴게소 안으로 따라 들어와 나랑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  
– [휴게소, 공항, 역, 터미널 ―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지점] 32P.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 나는 꿈들’ 세번째 쳅터다.
나는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기 전 짧은 시간 차소리들과 같이 듣고 책 전문이 궁금하여 일주일이나 지난 후 *어렵게 책을 구해 그 단락 제일 먼저 찾아 읽었고  요며칠 외출할 때마다 들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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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교보문고에도 절판,  헌책방 알라딘에도 없어 간 걸음 아까워  다른 산문집 먼저 구입 후 생전 안가는 영풍문고까지 가서  혹시? 하고 검색하니 다행이 딱 1권 찾아져서 비회원이라 마일리지 하낫도 없이 비싸게 주고 사게된다)

그 단락 들을 때 나는 1박 2일 흔치않은 여행을 앞두고 남들 석달 열흘 여행 준비하는 것마냥 온통 집안을 들쑤셔 놔서 정신이 하낫도 없을 때라 책을 구해 읽을 여유가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여행 후기랍시고 괴발개발 했을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윤대녕 작가에 관하여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나는 작가에 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은 기억해도 그의 책을 단 한권도  읽은 적이 없었으니…

솔직히 고백하면 필립 글래스에 관심이 많아 시작된 일이지만,  혹시 에릭 사티도 좋아할까 싶어 이것 저것  찾아보다  ‘사슴벌레 여자’ 라는 소설 여주인공이 필립 글래스를 좋아한다는 구절만 알게된다. 그리고  그에 관해 관심이 많이 간 이유는 책 두 권 읽어가며 나랑 상관있는 장소, 사람, 단어등등 같은 경험한 일들이 자주 발견되어서다.

14912748635582017 유정우 클래식 터치 :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러나 이후엔 내 능력으로 더 찾아지지 않았고 또  바쁜 일정 때문에 더 이상 물고 늘어질 수만은  없었다. 1박 2일만으로도 머리가 한가득 차고 넘칠 지경인데  어제는 다시 시작된 ‘수요정오 음악회’ 도 다녀왔고 그 전날 화요일은 JCC 유정우 강의와 제1회 JCC 예술상 & 프론티어 미술대상 수상자 전시에다…(혜화동 까지 갔으니 전시회를 한 두개만 봤겠는지…)이래저래 아무일도 못한 거다. 진줏굿은 한꺼번에 터진다고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이 생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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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C전시장 1~4층 전관  3.31~5.25일까지

결론은 윤대녕작가 이야기 한 개라도 풀어놓지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어서 오늘은 숙제하고있는거다. 한 작가를 짧은 시간에 알아가기가 어디 그리 쉬운일일까만 소설보다는 수필같은 산문이 쉬울 거 같아 선택한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로 아주 조금은 더 그에 관해 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더 반가운 건 맨 마지막 쳅터’ 윤대녕의 독서일기’와 반갑게도 29권(바로 아래 사진 참고)은 짧은 리뷰까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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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중 ‘청담’에 관한 느낌과 ‘음예’에 관한 자세한 설명 읽을 때는 손이 떨렸다(솔직히는 마음까지…)덩달아 문학수, 주앙 피레스, 풍월당…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달았다. 안규철 [그 남자의 가방]을 읽을 때는 전시장 벽에 붙은 글 읽으며 ‘참 글도 잘쓰는 조각가구나’ 했는데 윤대녕 작가는 ‘가장 글을 잘쓰는 조각가’  라 확신하는거다. 언제가 될 지 또 영영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많지만 만약 그를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많은 이야길 나눌 수 있겠네… 그러면서 두 권의 책에 몰입했다.

책을 읽어나가다 우체국 로고가 제비인 것도 처음 알게되었고 (어제 묘하게 우체국 갈 일도 있어서) 광주에도 ‘르네상스 음악실’이 있는 것도 알았고 박경리선생이 운영하던 원주 작가들 작업실에도 오래 가 있었다니… 전학을 많이 다닌 것도 나랑 비슷했다. 무엇보다 필립 글래스에 빠져 수개월을 그의 음악만 들은 적도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도…

그러나 더 이상 ‘에릭 사티’ 이야긴 나오지 않아 좀 그랬는데 어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수요정오음악회 첫 레파토리가 모두 에릭 사티 연주였다. 미술 전공자인데 독학으로 파이프 오르겐을 공부한 연주자는 다른 때랑 달리 시작 전에 아주 짧게 에릭 사티 ‘가구음악’ 설명까지 해 줘서 이건 필연 아닐까 싶었다. 어제도 그 책을 읽고 있었으니… 책 제목처럼 ‘극적인 순간’이었다.  긴 여행 다녀온 이후면 쉽게 말 문이 안열리는 버릇이 있는데  요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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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좌석, 음악회 시작 하기 전에 알게 된 프로그램

에릭 사티 : 가난한자의 몽상, 겸손하고 부드러운 소박함으로

  • 세 개의 오지브( Trois Ogives)
  • 세 개의 그노시엔느(1.2.3)
  • 세 개의 짐노페디    (1.2.3.)

  • Erik Satie: Ogives (Reinbert de Leeuw) – Monet

&,…

또하나 숙제같던…

폴 바셋 바리스타 파우치도  맛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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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예공간예찬/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음예 이 알 듯 말 듯한 말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그 무엇’을 뜻한다. 은유적으로는 ‘깊이와 시간 속에 손때가 묻은 그 무엇’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의해 씌어진 이 <음예공간예찬>(김지견 옮김, 발언 펴냄)은 일본의 건축물이나 음식, 가부키 등 전통 속에 내재된 고유한 어둠의 미학을 얘기한 책이다. 건축 전공자들의 필독서로 알려져 있으며 서양의 동양미학 연구서로도 읽혀지고 있다.

이 그윽하고도 찬란한 어두움의 미학은 비단 일본만의 것이라기보다 동양 문화의 바탕이 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서양인이 태양의 밝음과 힘을 추구하는 정서(태양력)를 가졌다면 동양인은 달의 유구함을 추구하는 정서(음력)를 삶의 기초로 하고 있다. 비교문화적으로 볼 때 그것은 건축에서 우선 뚜렷이 드러나고 음악이나 음식 문화 곳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식물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쉽게 서양난과 동양난의 색채와 선을 비교해 보라. 또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옷 모양과 색깔을 보라.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서양 문화에 대해 거의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찾고 있는 일본적 음예의 공간은 우선 변소다. ‘모든 것을 시화(詩化)한 우리들의 선조는 주택 중에서 가장 불결한 장소를 오히려 아취있는 장소로 바꾸고 화조풍월로 연결지어 그리움의 연상으로 포장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오래된 다다미방의 나무결과 붉은 된장국, 양갱, 칠기, 음식점의 촛불, 검은 밥통 속의 흰 쌀밥, 옥, 종이 들에 관해 얘기하면서 ‘그 색조의 깊음’을 지극히 명상적이고 화려한 문체로 얘기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긴 산문시를 읽고 난 기분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적 ‘음예의 공간’을 생각해 보았다. 같은 음예라도 한국과 일본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먼저 일본의 가옥은 전통 한옥에 비해 좀더 어둡고 폐쇄적이다. 거기에 틈입하는 빛의 감도와 색깔도 다르다. 김수근의 건축 개념처럼 한옥은 서로 분리돼 있으되 또 서로 이어져 있다. 좀더 열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듣기 가장 적합한 장소로 한옥을 꼽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웬 아이러니일까. 정원 또한 그렇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자연의 냄새보다 먼저 인공적인 냄새가 강하다. 한복과 고무신와 지붕 처마의 선. 창호지와 마루. 김치와 젓갈과 된장국. 그 사이에 깃든 음예의 미학은 중국, 일본의 고유한 미학 개념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레비 스트로스의 말처럼 문화의 우월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발자국 물러서서 비교 문화적으로 살펴보면 그 차이에서 색다른 음예가 드러난다. 이 책은 그러한 시각에서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소설가 윤대녕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252~254p  전문

2 Comments

  1. 데레사

    06/04/2017 at 12:07

    여행 다녀 오셨군요.
    나는 수술후 처음으로 나가 봤는데 돌아오니
    좀 힘드네요.
    서서히 몸이 늙어가나 봐요.
    참부지런한 참나무님덕에 나도 윤대녕작가를
    알게 되네요.

    • 참나무.

      06/04/2017 at 15:22

      네 남쪽 합천 가회, 난생 처음 봄맞이 1박 2일

      여행 다녀오시고 벌써 3편이나 여행기 올리셨더군요.
      그러면 건강하신겁니다.

      저도 윤대녕 작가는 ‘사슴벌레여자’란 작품 제목과 작가
      이름만 겨우 기억하고 있었으니 모르는 거나 진배없지요.
      저보다 한참 아래 연배인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신기해하며 읽어 본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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