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문학관 작가와의 시간-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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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문학관 개관 이후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 전시회가 있고 기간 중 토요일은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 가을은 자문밖 축제랑 겹칠 때도 있어서 평창동을 누비며 바쁘게 보낸다. 올해는  은희경 작가와의 만남이 겹쳤다.  권지혜 작가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 불참ㅡ이유는 기억이 안난다?  벌써…이래서 두서없지만 남겨본다. 본대로 느낀대로…

3번째 토요일은 김주영 작가. 김병기화백님 하콘 다녀와서 급히 달려갔는데도  좀 늦었는데 다행히 작가선생님도 늦어신다고  오시는 동안 강인숙 관장님이 6,70년도 우리나라 문단소식을 들려주시고… 20여분 이상 늦게 도착하셔서 겸연쩍어 하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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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병주 육필원고

6.70년대 작가들의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있는 공간에서  원고도 없이  내내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청송 시골 출신으로 2년제 서라벌예대 문창과 한학기 겨우  다닌 게 전부…” 라시며  작가 김동리, 최정희, 박목월 시인이 당시 담당 교수님…어느 날 시 11편을 박목월시인께 드리며 평을 부탁했는데 한참 지나도록 말씀이 없으셔서  어렵게 찾아갔더니  ‘…운문보다는 산문이 더 어울리겠’ 다 평을 듣고 그 길로 낙심하여 군 입대한 얘기로 말문을 여셨다.

편모슬하에서 자라 집에서 용돈 한 번 받은 적 없고 당시 미아리에 있는 학교에서 신촌까지 걸어 밥먹으러 가던 어느 날 아현동 굴레방 다리에서 지쳐 쓰러진 후 30여분간 누워있을 때 정말 하늘이 노랗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

어린시절 너무도 가난해서 도시락은 소풍 갈 때가 유일했으며 교과서 한 권도 사지못해 어머니가 창호지로 받아 쓴 공책으로 공부했을 정도…미술시간엔 크레용 같은 건 당연히 사질 못해서  친구들 꺼 겨우 빌려쓰면서 (당시 크레용 소지자는 10여명)   초록색 하늘색은  친구들이 모두 사용하니 남은 색은 흰색뿐이라 하늘도 산도 모두 흰색으로 가득 채우면 (도화지 한가득  빼곡하게 채우라셔서…) 선생님은 귀를 잡아끌고 교실 창문을 열며 ‘저 하늘과 산 좀 봐 저게 흰색이냐 ‘고함 지르실 땐 자존심이 있는대로 상했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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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청준 육필원고

하여 변소 청소는 도맡아 하고 조회시간엔 선생님들과 같은 서열에 설 때가 많았으며 매를 덜 맞는 방법
까지 터득- 가장 불쌍해보이는 표정을 짓는 것.  여튼 공부엔 재미를 못느끼고 장날 풍경이 좋아 (그래서 객주를 쓰셨는지…) 결석을 자주 하셨고 다음 날 결석 이유를 물으면 배가 아파 못왔다고 번번히 거짓말을 하면 믿어주셔서 계속 거짓말을 하다보니 이후론 장날이면 진짜로 배가 아른 믿지못할 일도 생겨 다음날  배가 많이 아파  결석했다 하면 또 거짓말 한다고 맞곤 하셨단다. 거짓말 할 때는 믿어주시더니 정말로 배가 아파 바른말 할 때 안믿으시는 선생님을 불신했던 일과  42년간 무인도에서 살아 온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던 일화와 함께 ‘문학이란 모순을 추구하는 일’ 아니겠냐 하셨다.

국민학교 4학년, 서쪽하늘이 온통  붉은 노을로 물들 때 여선생님의 풍금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음악시간이 마냥  즐거웠는데 어느 날 교감선생님과 사귄다는 소문 이후 음악수업도 싫어졌고…5학년 초에 첫 실연 하셨다셔서 폭소가 터졌다.  이후부터  음악도 미술도 할 수 없으니  돈 안드는 게  글짓기 뿐이라  문학 하게된  동기를 물으면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노라 하셨다던가?-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이 잘 안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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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MBC  리포터로 한인 후예를 취재하러 러시아 여행란 일화도 소개하셨다.   재정 러시아인들이나  한인 후예들, 가난이 극심하여도 우리나라처럼 채마밭에 식용 작물 심지않고  꽃을  심어 창문 장식하는 거 보고   러시아에 문호들이 많은 이유를 나름 이해하게 되셨다고…

진눈깨비 많이 오는날 너무나 추워 도저히 취재할 수 없을 정도여서 방송국 직원 허락 하에 당시 가이드 하는 한국 교포에게 청하여  어렵게 붉은 광장을  가봤는데 초라한 낡은 동상 앞에 생화 묶음이 두어 개 있어서 누가 갖다두냐 물었더니 시골 촌부들이 모스크바 오면서(연착으로 3~4일 걸리는…)  밭에서 키운 꽃들을 가져와  그 동상 앞에는 꽃 묶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했다.  그 낡은  동상은 푸쉬킨.

푸쉬킨은 좌파로 유배를 2번, 그 유명한 ‘삶…’  도 문학지에 발표된 게 아니고 농장 소녀에게 찢어진 종이에 쓰 준거라 했다.  여담으로 선생님 손자가 이쁜여자에게 차여  장문의  편지를 하셨단다. ‘ 빨리 새 여자 만나 우울증에서 헤어나라…앞으로 절대 미인 애인 두지말라’  …푸쉬킨 말년을 예로 들며ㅡ미인 아내  바람 난 거 용서할 수 없어 연적(영국 장교)에게  결투 신청하여  37세로 생을 마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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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전문 낭독 후
이 시에서 우리가 모르는 말이 한 귀절도 없지않느냐…
문학은 위로고 또 쉬워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닳으셨다며…

처음 뵈온 김주영 작가  솔직하고 겸손한 분이셨다.
두서없지만 이리라도 남겨본다-부끄러워 어쩌나…

요담 토요일(11.11. 2시) : 오세영(시인)
다음 토요일(11.18. 2시) : 김화영(시인)

2 Comments

  1. 데레사

    10/11/2017 at 07:54

    김주영 작가와는 먼 친척입니다.
    더러 만나기도 했는데 고생 많이 했지요.
    객주에서 보여주는 투박한 욕도 작가의
    삶에서 우라나온 체험이지요.

    좋은곳 많이 다니십니다.

    • 참나무.

      10/11/2017 at 08:23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아시는 것도 많으시겠네요
      이날도 정말 약속은 잘 지키는 사람인데
      잠실에서 오시다 광화문 교통난에 밀려 늦게오셨다고…
      기사가 어디 가냐 물어서 영인문학관 강연간다시니

      기사분이 청송이 고향이라며
      ‘청송에도 김주영이란 작가가 사시는데…’
      ‘내가 김주영이오’
      .. … 그 기사 깜짝 놀라며, 내릴 때
      사진 한 장 부탁하여 나란히 사진도 찍고…
      택시비 극구 사양했지만 되돌려 드렸다셨어요
      질문시간에…영인문학관 직원이 많이 늦으셔서
      맘 졸이며 바깥에서 기다리는데 사진까지 찍어셔서
      “웬 사진?” 했답니다.
      유모어도 있으시고 정말 솔직하고 겸손하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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