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늘근 카메라’가 내게로 왔다

사람의팔자라는것은참으로알수없다.거창한의미로서의것이아니라면,이즈음의나의팔자도그런것같다.도무지나와는무관할것같았던어떤것이어느날나의삶의일부분이되었다.그것은이른바클래식카메라로통칭되는옛날사진기들이다.디지털시대를살면서무슨구닥다리클래식카메라얘기인가.

가끔씩집곳곳에놓여있는수많은‘늙은사진기’들을보고있으면,저것들이어째서나와인연을맺게됐는지신통한생각이든다.그와함께,저많은카메라들을앞으로어찌할까하는걱정도갖는다.

내가곧잘쓰는표현으로,나는그카메라들에게‘백수의산물’이라는수식어를붙인다.신문기자생활을그만두고이른바백수생활이시작되면서나와의관계가시작되었기때문이다.물론그전에도카메라를전혀나몰라라하지는않았다.중학교시절한때사진찍는것을좋아한적이있다.그러나그것은말그대로‘찍기’와관련된사진기이다.이즈음나와카메라와의관계는그것이아니고하드웨어인카메라그자체에몰두해있는것이다.좀고상하게말하자면컬렉션,즉수집쪽이라고할수있다.


통상1840년프랑스의루이자크망데다게르가금속판을수은증기에쐬어잠재된이미지가드러나게한후그원판을염화나트륨용액에담가이미지를정착시킨것을사진술발명의역사로친다.그이래로지금까지약1만4천종의사진기가만들어졌다고한다.그러나이또한정확한숫자는아니다.아직도세계곳곳에서는여러형태의사진기들이발견되고있다고한다.

이렇게많은카메라가운데클래식카메라는것은,말그대로고전적인의미의것이라는뜻이내포되어있지만그건좀거창하고,쉽게말하면지금까지나왔던수많은사진기들가운데이제는단종되어없어진옛날기계식카메라라고보면된다.최근사진기의경향인디지털카메라를클래식카메라로부를수는없는것이다.

한편으로옛날에나온라이카(Leica)나콘탁스(Contax),니콘(Nikon)등의명품사진기를고상한차원에서클래식카메라로한정해부르기도하는데,주로이방면의일부부유한수집가들이자기소장품의과시를위해그렇게쓴다.그러나어디옛날사진기가라이카나콘탁스뿐인가.잘알려지지않게나왔다가사라진사진기도수없이많다.그사진기들은통칭해뭐라고부를것인가.우리말로‘옛날사진기’라고하면되고,영어로는클래식카메라,혹은올드카메라(OldCamera)라고부르는게타당할것이다.


클래식카메라에빠지고,사랑하고,좋아하게된데는여러이유가있을것이다.클래식카메라애호가들의경우사진기니까사진을하는사람들이대부분일것이라고보여지지만,예상외로그렇지않다.수집가들의면면을보면물론사진가들도있지만,사진과관계없는일을하는부류가의외로많다.나또한그렇다.나를포함해비사진전문가들이옛날사진기에빠져서좋아하는배경은아무래도그것들이세월의뒤안길에남겨진흘러간물건들이라는점에서,저마다각각의연유를가질것이다.

나는옛날사진기들이지나간시간들을되감아주는느낌을갖는다.그래서그사진기들의렌즈를바라보고있으면푸근해진다.그것이언제이든,지나간시절이좋았다라는,때지난유행가와같은복고조의그런느낌이좋다.나의처지와비슷했기때문이었을것이라는점이아마도가장근접된답일것같다.그낡고오래된사진기를보듬고다듬는일은,이를테면명멸하는시간을되감고자하는것,그리고낡아서꺼져가던사진기에생명을다시불어넣는일이다.그행위는결국나를어루만져주는것에다름아니겠는가.

처음접하게된클래식카메라는,지금생각해보면독일제포익트랜드비토메틱IIa(VoigtranderVitomaticII-a)이었던것같다.백수생활의무료함을달래기위해황학동벼룩시장을매일출근하다시피돌아다닐적,거리의좌판에서그놈을처음만났다.지금도그렇게느끼지만,그놈을처음볼때의느낌은참으로예쁘다는것이었다.한참을들여다보며만지작거려도도무지싫증이나질않았다.주인의눈총을느끼고가격을물었더니거금30만원이었다.호주머니에돈만있으면샀을것이다.그러나돈이없었다.좀어색해서깎기를시도하다슬그머니물러섰다.그날저녁잠자리에서도그녀석이눈에아롱거렸다.

그렇게해서알게된클래식카메라였지만,처음손에넣은것은그것보다는훨씬고가인라이카였다.독일제만클래식카메라로알았던지식만을지닌채황학동시장을돌아다니다가,역시어느좌판에서마주친라이카.그카메라는참으로앙증맞게생긴셀프타이머가달린IIIF모델이었다.렌즈는스미크론(Summicron)5Cm표준렌즈.가격을물었더니80만원.흥정끝에70만원을주고샀다.나는그렇게해서클래식카메라의세계로발을디뎠다.

그놈을집에갖고와밤새들여다보고또들여다봤다.사람의손으로만든물건들중이렇게잘만든것이또있을까하고감동하고또감동했다.그때부터이미나는클래식카메라의둥지속에깊숙이빠져들고있었다.그러나그렇게감동했던그카메라는오래지닐수없었다.들여다보다,들여다보다,결국그날밤그카메라를뜯어본것이다.꼬박밤을새워가며어떻게분해는해서내부를들여다보기는했는데,아무리해도조립은할수없었다.도저히조립을못해수리점에갖다맡기기를몇차례반복하다가결국헐값에팔아치웠다.

모든취미생활이그렇지만,카메라수집에도많은돈이든다.클래식카메라의전성시대에나온라이카나콘탁스같은명기들은흔한말로‘집한채값’이었던것들이고보니더욱그렇다.물건에욕심은나고,그러나백수주제에돈은없고.특히그무렵우리나라의클래식카메라시세는지금보다훨씬높았다.이름있는독일제이면서좀깨끗하면메이커나모델을불문하고최소30만원선이었다.

수집을시작한그해인1998년,이베이(eBay)를알게된것은말하자면,목마른놈이물을찾다가샘을만난격이었다고할수있을것이다.거의매일을클래식카메라에빠져자료등을뒤지다가,어느날인터넷을서핑하다가검색사이트에서classiccamera를입력했다가발견한곳이바로이베이였다.지금은우리나라에서도이베이를이용하는호사가들이많지만,그당시에는드물었다.그사이트에,좀과장해서말하면산더미같이쌓여있던클래식카메라.앞뒤재볼요량도없이무작정이베이의바다로뛰어들었다.

첫경매에들어가사들인것이브라운팍세트(BrownPaxette)카메라.바디와렌즈3개(표준,광각,망원),오리지널가죽케이스,그리고송료를합쳐들인돈이135달러.그러나그귀여운카메라도오래지니지못했다.호기심삼아소공동카메라숍에갖고나갔다가48만원을주고팔았다.한마디로이것은나로서는하나의‘사건’이었다.취미로시작한클래식카메라수집은이런경우호구지책과도연결되는비즈니스의측면도갖고있는것이라는점에서그렇다.처분하는것은물론돈이필요하기때문이고생계의한수단이되기도한다.그러나그런과정,이를테면팔기도하고사기고하는과정을지나고나면결국남는것은카메라뿐이다.그런데도계속그과정을되풀이한다.어떤일에깊숙이빠지는매니아들의속성은빠지고있는행위의결과를뻔히잘안다.그러나그러면서도다람쥐챗바퀴돌듯하는것이다.항상그자리로오는데도빠져있을때에는그것을모른다.

한4년수집을해오면서적잖은양의,그리고각양각색의클래식카메라를만져보았다.많이들처분도하고교환도해봤다.모두좋아하지만,수집해놓은카메라가운데서도특히애착이가는것들이있다.처음시작할때에는라이카등명품들에애착이갔지만,이상하게도시간이지날수록그런명품보다는별큰명성없이나왔다사라져간사진기들에더큰정을느낀다.독일벨타(Welta)사의벨티니(Weltini)라든가,포스(Voss)사의디악스(Diax),그리고아카(Aka)사의아카렉스(Akarex)카메라등이그것들이다.슈나이더렌즈를장착한폴더형의벨티니는지금도필름을넣어갖고다닌다.접어면손바닥에착안기는데,사진도참좋다.디악스와아카렉스로는흑백필름을잘넣어쓴다.이것들에서나오는사진들을나는참좋아한다.

사연을간직한카메라는그것때문에애착이간다.나겔쀼삘레(NagelPupille)는드물게사람이름을딴1930년대127필름을쓰던랜지파인더카메라이다.나겔은원래수많은명기를생산해낸짜이스이콘의수석기술자였다.많은카메라들이그의손으로부터나왔다.그러나그는수석기술자임에도불구하고짜이스이콘에서그에걸맞는대접을받지못한다.이유는학력이모자라기때문이었다.그것이아니꼬워나와자체적으로만든것이나겔쀼삘레이다.나겔은그카메라의명성덕에코닥(Kodak)사로스카우트된다.코닥에서나온나겔시리즈의카메라는모두그가만든것이다.


클래식카메라를수집하는데있어신경쓰이게하는부분은한두가지가아니다.돈문제는말할것도없이큰부담이다.카메라값이한두푼하는것이아니라는점에서클래식카메라를수집하는사람들은대부분돈이많은호사가들일것으로보이지만그렇지만은않다.‘돈이없으니,카메라라도’라는말이어패가있는지는몰라도그렇지않은사람들이오히려더많다.이방면의사람들이판매와교환을많이하는것도따지고보면구입할돈이없기때문일것이다.

보관과수리문제도수집가들에게큰스트레스로작용한다.한두어대면모르겠지만,몇십대,몇백대로넘어가면보관이골치거리다.큰집을갖고있고여유있는처지라면,별도의공간을마련하고습도장치등특수장치로보관할수있을것이지만,이런처지의수집가들은많지않다.그저집안의빈틈을활용해하나하나씩보관하다가,나중에는둘곳이없어쩔쩔매는경우도적잖게듣고본다.사진기라는것이기온과습도의변화에민감한렌즈와정밀기계로구성되어지는만큼그보관방법도여간까다롭지가않다.사정이여의치않은입장에선별다른방도가없다.집안에서도통풍이잘되고습도가가장낮은곳에두는것이다.케이스는별도로보관해야하고,렌즈는될수있으면본체로부터분리시켜놓는것이좋다.그리고될수있으면,닫혀진것보다는열려진공간,예컨대창문이없는찬장같은곳에넣는것이좋다.

오래된것들이기때문에수시로점검을해야한다.그렇지않으면고장이생긴다.보관을잘못해도그렇다.그러면수리를해야한다.수리비도만만찮고믿고맡길수리점도찾기가쉽지않다.특히라이카등명기의수리는한두푼드는것이아니고,걸맞는기술자도별로없다.인터넷의클래식카메라전문사이트에들어가보면수리문제와관련한글들이상당부분을차지한다.믿고맡길만한수리점을소개해달라는것에서부터맡겼다가낭패를봤다는고발성의글까지다양하다.나도이문제로골치를섞인때가한두번이아니다.그러다어떻게만나게된정씨성을가진어떤양반과한5년을알고지낸다.일주일에한번쯤은그의수리방엘들린다.그리고수리하는것을지켜본다.나는그것을보는것이참재미있고좋다.카메라를맡기고도가능한한수리과정을지켜본다.자기기술을지켜보는것이그리기분좋은일은아닐것이다.그분도처음에는언짢게생각했을것이다.그러나하도자주가니까친해졌고,지켜보는것을암묵적으로허용했다.솔직히말하자면나는그양반에게친숙함과이기심을동시에갖는다.이기심적인것은그가가진수리기술때문이다.나는그양반이별탈없이오래살기를바란다.늙고병든사진기의생명이그에게달렸기때문이다.클래식카메라에대한애정이그지경에까지뻗쳤다.

나는32평아파트에사는데,집안곳곳에카메라다.안방찬장과거실의진열장,그리고후배가유럽에서가져왔다는오크나무로짠수납장에들어있다.케이스만별도로넣어둔가방과종이박스는베란다창고에있다.아웃핏가죽케이스등도곳곳에널려있다.남들이보면상당한양이다.그러나처분과교환등으로없어진,아끼던카메라에대한애착은시간이갈수록더해진다.정말소설같이구한,1930년대기자들이보도용으로쓰던라이카리포터250(LeicaReporter250)이라든가,콘타플렉스이안리플렉스(ContaflexTwinLensReflex)같은놈은아직도꿈에아른거린다.어렵게구한것들인데,둘다지금은없다.

클래식카메라를알게되면그것들의속성상나이가들수록더빠져드는경향이있다.이방면의사람들대부분이그렇다.나도예외가아니다.그러다보면현실과동떨어진방향으로수집에몰두하게되는데,이에대한가족이나주변의우려섞인시선이나질책이없을수없다.어떤일이나물건에빠지거나,좀심한말로미쳐있을때는남의말이잘들리지않는다.이는분명경계해야할부분이다.

나라고그것을모를까.간혹,돈문제로형편이어려워진다거나,카메라보관상의문제등에따른사고등이생겨날때,주변의시선과같은생각을안해보는것도아니다.생활과현실에맞춘수집쪽으로방향을틀어야한다.

그러나그런방향이옳다고생각하면서도실행이잘안된다.그런생각이들때마다하는습벽같은것이있다.구조와작동이복잡한코닥엑타(KodakEktar)나,로봇로얄-36(RobotRoyal-36)같은카메라를닦아주고구조를점검하는데몰두하는버릇이다.아니면,보잘것없고,이름도없어별로거들떠보지않던사진기를온갖정성을다쏟아물건처럼만들어놓는다.그리고후에그것으로사진을찍어본다.그리고그사진을보는즐거움.사진이잘나오고안나오고는별문제가안된다.죽었던,혹은죽어가던카메라를다시살려냈다는희열감을느낀다.병은병이다.


모두가잠들어조용한밤.낡고,그리고아주늙은이름없는사진기를닦고,만지작거리면서불면의밤을보낸다.세워놓고보기도하고눕혀놓고보기도하고,셔터도눌러본다.뿌연기가맴돌고표면에스크래치가덕지덕지한렌즈를가만들여다본다.푸른이끼가끼고아침안개가감도는호수같다.이렌즈앞을스쳐지나갔을수많은군상과역사를생각해본다.그렌즈속에내가빠진다.

어느좋은시절,클래식카메라의전성시절이었을것이다.내가콘타플레스TLR의알바다파인더를들여다보고있다.카메라앞에젊은신랑각시모습의아버지가어머니와함께서있다.나는아버지와어머니가함께선,아름다운모습의사진을‘백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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