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오후광화문.
찌는듯한폭염속에,미대사관앞에서시위가벌어지고있다.
민노총이주관하는주한미군철수시위다.
시위꾼들보다더많은전경들이빙시위대를둘러싸고있다.
시위꾼들에게보호막을친형국이다.
온갖구호와노래가난무한다.
경쾌한춤리듬에율동도곁들어진다.
“미군은악마,미군은흡혈귀!”
“주한미군반세기는절망과눈물과분노의세월!”
“정전협정을평화협정으로!”
“주한미군몰아내고우리끼리살자!”
“민족보다좋은건없다!”
붉은머리띠와조끼를입은사람들은어른들만은아니다.
아이들도있다.초등학교1,2학년정도나될까.
그얘들도붉은머리띠와조끼를입고구호를함께외친다.
깡총깡총춤도춘다.예뻐죽겠다는시선을보내는그얘들의부모들.
이틈을비집고어떤아줌마가홀로민노총관계자와입씨름을벌이고있다.
그아줌마는온몸에플래카드를둘렀다.피켓도들었다.
“좌익노무현정권물러가라”는내용들이다.
그아줌마는입에거품을물었다.
“왜주한미군을나가라고하느냐.너희들이올라가면되지않느냐.우리는주한미군때문에산다.”대충이런주장들이다.
민노총사람들의표정이험악해진다.그럴수록그아줌마는더대든다.
“노동자들이면,노동자들답게살아라.너희들이주한미군하고무슨관계가있느냐.”
그아줌마가정색을하고다그치자,민노총사람들로부터나오는소리.
“주한미군때문에월급도못받고,휴가도못가고있다.”
이말에주변구경꾼들이웃는다.
민노총사람들당황하면서,그아줌마를조용하고으쓱한곳으로끌고가려고한다.
그아줌마는기세를더부리며안가려고한다.
광경을지켜보던,어떤아줌마가혼자소리하듯묻는다.
“이사람들이왜주한미군하고싸우지요?”
대답을안하자,몇차례더묻는다.
갑자기어떤아저씨가버럭소리를지른다.
“아줌마,저놈들에게직접물어보슈.더워죽겠는데,세살먹은사람도아니고…”
그날저녁,KBS텔레비전.
해방공간에서의좌우대립관련특집방송이다.
전서북청년단원과‘전평’출신남로당원,두사람의행적을위주로한것이다.
둘다80을넘긴노인들인데,서북청년단원출신은맥이없어보인다.
그저담담하게얘기한다.자신의행동에대해별다른이념을들이대지않는다.
이북에서부모들이자신이보는앞에서빨갱이들에게살해됐다는것.그후,다른
일체의것은생각지않았다는것.빨갱이잡는것이비명에간부모에대한도리라는생각에서남한으로온후그일에앞장섰다는것이다.
극우들의백색테러에대해묻는다.담담하게하는말.
“빨갱이들이먼저했으니까,보복차원에서했다.한번조사해보라.우익에서테러를먼저한적이있는지.”
‘전평’출신남로당원은부산사람이다.
아직도팔팔하고기세가넘친다.
압박과설움을딛고비로소세상에나온사람같다.
해방공간,철도와부산항만의파업은노동자들의생존권을지키기위한단순한투쟁이었다는것.그것을우익들이살육전을벌여진압했고,그과정에서많은노동자들이죽었다고한다.
이사람도자신은이념이무엇인지는잘모른다는표정이다.
그저자신이지금까지살아오면서당한압제와핍박만을강조한다.
그러나방송내용은누가보더라도우익에의한테러의폐해를강조했다.
기록상에도분명한좌익들에대한테러를부각시키면서도,좌익의그것과활동은불가피성을내세우려는분위기라고나할까.
방송말미에두사람은각각서북청년단과전평의노래를불렀다.서북청년단원은여전히맥이없다.흡사무슨죄를지은사람같다.
이에비해남로당원은노래에힘이들어가있다.가사도정확하게기억한다.계속부르라했으면,신바람나게부를것같았다.
그에게새로운날이온것같았다.방송엔빠졌지만,혹시“남로당만세!”라도불렀는지모른다.
그전날,한납북어부가천신만고끝에30년만에어머니를만났다.
환갑을넘긴아들은연신‘어머니’만불렀다.
80을훨씬넘긴어머니는“이제같이살자,같이살자”며눈물을쏟아냈다.
납북어부인이아들이고국에돌아오기까지우리정부가해준일은아무것도없다.
이정부는오히려북한에의해강제납북됐다돌아온이아들을‘탈북자’로취급했다.
언론들도이제는이상할리만큼한통속이다.
언제부터인가북한의강제납북행위에는아예언급을하지않는다.
그저과거냉전시대의흔적쯤으로치부해버린다.‘민족’이면된다는해괴한논리가주류를이룬다.‘과거사’청산이라면불을켜고들이대는노무현정권도북한의과거사에는그렇게관대할수가없다.
이래저래언론도노무현의‘붉은칼춤’에놀아나는유니폼을입었다는말이다.
“민족은어떤이념보다우선한다”
“민족은동맹보다우위의개념이다”
바야흐로‘민족의시대’가도래하고있다.
과연민족은불멸이고지고지순의것인가.
‘평화’를‘전쟁이없는상태’로보는사람들과,‘주한미군이없는상태’로
보는사람들이같은민족으로공존할수있는가.
광복60주년을맞는이시점,우리의좌표가이것이라면,
과연역사는바로가고있는것인가.
광화문,그폭염속에서나는이방인이되었다.
나는총을들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