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범이 형

그날은예전의마산으로되돌아간듯했습니다.1970년초의마산.

그리고마산생각에푹빠졌습니다.

김인범형을만난날입니다.

우연한만남은아니었지요.28회선배를만나러마포의한술집으로나갔는데,그형이그기에있었습니다.놀래키려고28회선배가일부러안알린것입니다.

참오랜만이었지요.20여년이훨씬지난후의만남이었습니다.

인범이형은마산출신은아니지요.성호국민학교1학년을다닌적은있다고했습니다.

어쩌다그즈음마산에머물게됐는지는알수가없습니다.언뜻한번들은적은있습니다만,기억에없습니다.다유랑벽의소산이었겠지요.지금도떠돌아다니는행색으로보아서는…

아버지金素雲의문학적,유목민적기질이어디가겠습니까.


1970년인가마산서처음대면했을때,그형은검은색오버코트를입고있었습니다.절기가그런옷을입을때가아마도아니었었지요.그러니까검은오버코트는말하자면,그때부터그형을상징하는일종의아이콘이아니었던가하는생각이듭니다.

그무렵,주간한국이라는신문이나올때인데,그형의행색이어느날그신문을장식한적이있었지요.뜨거운여름의대낮,명동중심가를검은오버코트를입고사색에빠져유유자적거닐던그형의기사가사진과함께게재된것입니다.마산의까까머리고등학생의시각으로는그엉뚱스러움과자유스러움이참희한해보였습니다.

어떤사람인가고하며한참호기심에빠져있을때,그형이불현듯마산엘나타난것입니다.

그즈음의마산은‘생추어리’(Sanctuary)같은곳이었습니다.4.19혁명의도화선이된3.15의거의발상지라는점에서그무렵운동권학생들이오고싶어하는곳이었습니다.더러는다녀가기도하고,더러는좇기는입장에서피신처를구하러오기도했습니다.특히김지하시인이가포국립결핵요양소에감금돼있는바람에민주운동권학생들의왕래가더욱잦았습니다.당시추산동의우리집2층은거진매일손님을치렀습니다.여학생을서울의선배로부터소개받아‘모신’적도있습니다.그‘여전사’는만나자마자소주가고프다고했습니다.남성동선창가‘홍콩빠’에서대낮부터소주를마셨는데,댓병4병째에먼저고꾸라졌습니다.웬뽕짝노래에눈을떠보니,그여자는저자거리를마주한채반듯이앉아이미자의황포돗대를부르고있었습니다.그자리에설동한형이왔던가,안왔던가…

인범이형은추산동적산가옥의2층방에자리를잡았습니다.그리고마산생활에들어간것이지요.

‘홍콩빠’를비롯해,오동동아구찜집,창동‘음악의집’을참많이들락거렸었지요.조남윤형과지금은고인인된이선관형등과도엄청많이마셨었지요.예전교도소자리에‘백랑다방’이들어섰는데,그곳도인범이형과때놓을수없는곳입니다.그주인이인범이형이라는말도있었습니다.확인해보지는않았지만…그러나‘백랑’이라는이름은아마도인범이형이단것이틀림없을것일겁니다.아버지金素雲이한때부산서문인.예술가들의보금자리로꾸리고자마련했던살롱의이름이‘백랑’이었습니다.


1983년인가충무로거리에서한번조우를했습니다.사무실이충무로에있었는데,인범이형도바로인근에있었습니다.그때만나‘레드팍스’라는곳에맥주한잔을같이주고받은이후보지못하다가2000년하고도7년이된올해의그날마포에서만난것입니다.

옛날하고같았습니다.예의그검은오버코트에근육질의팔뚝,걸걸한목소리등등…치아교정때문에약간합죽이상태가된것을빼고는옛모습그대로였습니다.물론흰머리칼과잔주름등세월의연륜을피해갈수없는老氣의흔적은생겨나고있었습니다.

불쑥책을한권내밀었습니다.‘김한림’이라는제목의책입니다.어머니김한림여사의행적을기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펴낸책이었습니다.

“윤이는요?”

“죽었다.”

“언제요?”

“한2년됐다.”

“우짜다가?”

“심장병으로…”

윤이라는동생이있었습니다.71학번이었을겁니다.서강대를다녔는데,참의지와소신이곧고당찼습니다.그무렵민주화를염원하는굵직굵직한학생운동의선두에는꼭김윤이라는이름이있었습니다.몇차례투옥도했었지요.한번뵌적도없지만,늘마음속으로는빚을지고있었습니다.그윤이가결국은심장병으로죽었다는인범형의무덤덤한말에한동안가슴이얼얼했습니다.

“뭐하고사요?”

“그냥그리산다.”

“마산한번같이가입시더.”

“그라자.가서남윤이형하고한잔하자.”

많은얘기들이오갔습니다.그때의마산과마산사람들…

그형과의대화는그러나이렇듯단조로운문답형으로만이어져갔습니다.


‘김한림’을소중하게펼쳐보았습니다.

46페이지에인범이,누나영,동생윤,그리고어머니김한림과찍은사진이있었습니다.일곱살때의모습입니다.그러나아버지金素雲은없습니다.金素雲은1952년펜클럽한국대표로제네바회의참석중기자회견서이승만정부를비판한것이문제가돼귀국하지못한채일본에머무르고있었습니다.

인범이는이상한고깔모를썼습니다.영락없는유목민의모습입니다.

세살짜리윤이는엄마품에안겼습니다.푸근한모습입니다.

세삼이母女의명복을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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