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망한다…

창신동에서하숙할때가있었는데,무척배가고픈시절이었다.

선배와함께있었는데,우슨놈의하숙집인심이그런지하루두끼만주었다.

밥,그것도고봉은아예없고밥그릇에딱맞게담아주니배가안고플수가없다.

선배와밥상을마주하고앉으면서로의밥그릇을비교한다음허겁지겁먹기시작한다.

그리고는누구든먼저비우면빼앗아먹으려고한바탕난리법썩을떨던그창신동시절.

그배고픈시절에생각나는책이있다.

또스토예프스키의’白痴’라는소설이다.

배가고프면그책을봤다.그래서그책은잊을수가없다.

므이쉬킨이란이름이어렴풋이생각나지만,그소설의줄거리나내용은기억에없다.

배고픈상태에서봤으니,내용이들어올리가없다.

그리고또하나,그게참어려운소설이었다.적어도나에게는그랬다.

그러니그책하면떠오르는것은배고픔과나의독해력에대한절망감이다.

다만,또스트예프스키소설특유의그음험스런회색빛러시아와러시아인의이미지는내게남겼다.

그런데,오늘저녁그책이또나를절망케한다.

나는스무살이넘어서쩔쩔헤매며겨우본그책을첼리스트장한나는12살때영문으로봤다는것이다.

그리고는그책이어떻고저떻고하는코멘트까지덧붙인다.

장한나는역시천재다.

그럼나는무엇인가.

비는계속내리고있다.

한국일보6/16[책과인생]장한나,

12살때읽은영문판’백치’
영어에눈뜨게된계기가…

"도스토예프스키의<백치>를읽으면너의마음이열릴것이다."
지난4월타계하신나의스승로스트로포비치선생님의부인갈리나가
해준말이다.그때난열두살이었다.

초등학교입학할무렵부터인가.
세계동화전집등을통해독서를너무나도좋아하게됐다.
등장인물들의다양한성격,나와는너무나도다른그들의흥미진진한삶,그리고정의의승리로마무리되는동화속세상에푹빠졌다.

재미있는책을잡으면밥먹을때는물론,첼로연습시간에도읽기를
중단하기힘들어발가락으로책장을넘기기도했다.
처음읽는책에서긴장과스릴을느꼈다면,다시읽는책에서는이야기속의미들을찾고즐기는맛을알게됐다.

뉴욕으로건너갔을때열살이었던나는영어를한마디도못했다.
공립학교의ESL프로그램은체계적인영어공부에는부족한점이많았고,
12세부터다닌사립학교에는그나마도없었다.

11세때파리로스트로포비치첼로콩쿠르에서우승하면서만난갈리나의
말을듣자마자나는영어판<백치>를구입해읽기시작했다.

지금생각해보면12세소녀에게<백치>를권한갈리나도,그말한마디에
바로<백치>를읽은나도참순수했던것같다.
인생을바꾸는힘이책안에있다는믿음을공유한게아닐까싶다.

만일지금내가12세어린이에게책을권해야한다면<백치><안나카레니나>
<파우스트>같은명작을권하기전에여러번생각할것같다.
너무어렵지는않을까,작품의위대함을소화할수있을까하고말이다.

하지만나도내가느낄수있는만큼만느끼고이해하듯이,어린이도나름대로
어떤느낌을충분히받을수있을것이다.
더욱중요한점은,이런명작들은독자의그릇크기에관계없이어떤충격을
선사한다는것이다.

그런충격을통해나의그릇이성장하고,그책을다시읽거나다른책을읽었을때
더큰감동을받는것이다.

서툰영어로<백치>를읽은후과연내마음이열렸는지는가늠할수없지만,
그때부터거대하고복잡한사연들이많은러시아문학에반해서톨스토이,
체호프,도스토예프스키,푸슈킨의작품을읽기시작했다.

그러면서순수문학,그리고소설이란장르에빠져영국,프랑스,독일문학으로
폭을넓혔다.

내용을이해하고싶은마음에단어공부도열심히했고,문장의형태부터표현력에
이르기까지너무나도많은영어의비밀을자연스럽게흡수했다.
고등학교무렵에는선생님들의칭찬을받으며에세이를제출할만큼영어실력이늘었다.

독서를통해영어를쉽고즐겁게마스터했을뿐아니라통찰력과표현력을기르는데도
더없이좋은훈련이됐다.
우리가일상생활에서사용하는어휘와표현은언어자체의폭에비해너무나도좁다.

표현력이좁은만큼우리의생각도단순해지는건아닐까.
책을통해언어의풍요로움을접한다면우리의시각이더욱넓어지고성장하리라믿는다.
또이런과정을통해인생을풍요롭게사는지름길을찾게되리라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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