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인 선생을 뵙고

국화꽃져버린겨울뜨락에…

깊어가는가을,항상이맘때면흥얼거리던노래다.

‘고향의노래’

이아름다운고향의노래를만드신분이누구인지는익히알고있다.

이수인선생.

그분의고향이마산이라는것,

그리고학교의선배라는것,

서울성산동어디선가에사신다는것.

그이수인선생을어제만나뵈었다.

소박한꿈이하나이뤄진것이다.

성산동고개마루를걸어내려오신다.헐렁한점퍼차림.

가자.우리동네서좀가면좋은데있다.

성산동에서도토박이동네다.오래된집들이다닥다닥붙어있다.

동네고기집인데,여자주인이반색을한다.자주들리신다는것.

아이고,우째그리멋진사람들하고오시는지.

멋진사람들이라니요?

선생이한마디던진다.

아,음악하는내제자들.멋진제자들이많다.

고기가익어가고,오이를채운소주잔이오간다.

궁금해오던것을물었다.

‘고향의노래’에눈이많이나오는데,

마산부근은겨울에눈이별로없지않습니까?

아,그건시인의상상력이지.겨울고향이미지에눈이빠진다면너무삭막하잖나.

‘고향의노래’가사는김재호시인이썼다.

같이마산제일여고에있던1968년,

막걸리집에서김시인이불쑥詩를꺼냈고,그것을이수인선생이곡을단것이다.

김재호시인은부산에계시다는데,몸이좋지않다고한다.

한7,8년전에한번봤지.자주는못보고.

선생은김재호시인을추켜세운다.참정감어린좋은시인이라고.

시인이라고다같은시인이아니지.

그양반은현대문학등단을거친실력배기시인이지.

선생은1968년마산을떴다.서울로올라온것이다.

마산의기억이남아있을까.

마산,참좋은곳이지.

그림같은바다.바다라지만바다가아니지.호수이지.

그러니순박하고정감어린문학,예술인들이많이나왔지.

선생은지긋이마산에서의추억을떠올린다.

배고픈시절,부둣가를많이걸었다.

저남성동선창가에서신마산댓거리까지도걸었지.

바다를보고부둣가를걸으며악상을다듬고온갖상념을달래곤했다.

그시절,몇몇아시는분들을떠올린다.

유안진,김만옥,박현령,이제하,하기주,조병무등.

술주전자가바닥이났다.

자,인자우리집으로가자.갈일이있다.

자택은조그마한양옥집이다.

문패는없고,이름을새긴조그만명패가하나붙어있다.

그저께,’귀중한’분이다녀가셨다한다.

안명원선생.부친인안석주선생과함께’우리의소원’을작곡하신분이다.

캐나다에서귀국해선생의집엘들렸다는것이다.올해85세이다.

위스키반병을비우고가셨다고한다.그만큼아직정정하시다는것.

냉장고에서캔맥주를꺼내준다.사모님은참영롱한모습이다.

‘고향의노래’얘기를또꺼냈다.그노래를제일잘부르는가수는누굴까요.

몇몇이거론되다가내말에사모님이동의한다.맞아요.최모씨가제일났지요.

‘내맘의강물’은아무래도팽재유선생이지요했더니역시맞다고한다.

팽재유선생의그노래를언제다시들을수있을까.그분은이제70을훨씬넘겼다.

선생이갑자기일어나피아노로가더니자신의곡을연주한다.

고즈녁한집안에’고향의노래”내맘의강물’선율이흐른다.

선생은선생의가곡과동요가수록된자신의CD5장을정성스럽게싸주셨다.

‘집으로갈일’이란바로그것,자신의작품집을주기위한것이었다.

선생은11월18일,마산서공연을갖는다.

‘이수인음악의밤’공연인데,재작년에이어두번째다.

고향마산서들어보는선생의노래가벌써부터기대된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