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란 이’

어떤이름으로대상을통칭해부르는경우가있다.

예컨대,바둑이라고하면개의한종류지만,

통상집개를일괄해일컫는경우가그런것이다.

‘영란이’

영란이는여자이름이다.

나는이이름만들으면모든여자,그중에서도좀특별난여자가떠올려진다.

영란이란이름을가진분들께는죄송하지만.

예전에모시는분이한분계셨다.

1935년생이니까,지금은고희도한참지냈을분이다.

모英字신문의논설위원이셨는데,

이분은어데서고아무여자나보면모두’영란이’다.

특히술이라도한잔들어가면이분천지사방엔모두’영란이’다.

왜’영란이’일까궁금했다.

어느날응암동속칭니나노집에서다.

달빛은교교히마당에흘러넘치는늦가을밤이다.

모퉁이방에술상을차려놓고마시고있었다.

‘영란이’도둘있었다.

술이좀과하셨다.’영란이’증세가좀심하다.

지갑을꺼내놓더니지폐를꺼내서는’영란이’들에게나눠주며계속’영란이”영란이’하신다.

작심하고물었다.도대체’영란이’가누구인지.

치음엔대꾸도않으셨다.서너번을계속조르면서물었다.

그놈의’영란이”영란이’…역정(?)까지섞어서.

어느여름날,무슨언론관계세미나가설악산에서열렸다.

세미나는무슨세미나,놀러가는세미나였을것이다.

하루호텔에서세미난가뭤인가를하고다음날은이른바탐방날이다.

설악의계곡에서질펀한술자리가벌어졌다.

술도좀취하고덥기도해머리좀식히려고자리를나왔다.

조금올라가니푸른물이감도는조그만소(沼)가나왔다.

저기서얼골좀씻자,

그러고물가로가는데뭔가희끄무레한물체가물위를감돈다.

어라,싶어정신을가다듬고보니그것은다름아닌사람,그것도늘씬한여자였다.

벌건대낮에늘씬한여자가全裸의몸으로멱을감고있었다.

그걸본상태에서어찌하면좋을까,그분의말인즉슨순간막막해지더라는것이다.

엉거주춤하고있는데그여자가물가로왔다.

어디한군데가리지도않은벌거벗은몸매그대로.

그런인연으로알게된게바로’영란이’라는여자다.

속초동명항어디선술집에있었다고한다.

그날이런저런연유로설악동에와낮술이과해

혼자서설악의계곡에몸을담그고있다가그분을만나게된것이다.

처음만난그날그후얘기는구체적으로하시질않았다.굳이들을필요도없고.

서울로오니도시그여자가머리를떠나지않는다는것이었다.

그렇게순진,순박하고꾸밈없는여자는본적이없었다는것.

속초로다시가만난다.그후그분의속초행은수없이이어진다.

그러다어느날가보니없더라는것.술집을나갔다는것이다.

어디찾아볼데도없어안타까운마음이었는데,몇달이지나서울로전화가왔다.

보고싶고,서울도가고싶고…그런말을늘어놓고는끊어버린다.

그리고는끝이다.몇년이지나서울이라면서한번전화가왔는데,

끝내있는곳을가르쳐주지않았다는것이다.

‘영란이’에대한그분의얘기는거기까지다.

그분과1980년대중.후반,수년을함께많은술을마셨다.

1990년인가내가회사를옮기면서뜸해졌다.

그분또한중한병에걸렸었고.

그분과’今生에서의마지막술’을함께나눈기억이있다.

2003년인가탑골공원인근에서우연히마주친적이있다

대낮인데엉망으로취해있었다.도저히말을나누기도어려웠다.

뭐라뭐라하시는데알아들을수가없다.’영란이”영란이’하는것같기도하고…

그리고헤어졌다.신문사는벌써그전에나오셨고,

자택전화도바뀌고없어그후연락은다시끊겼다.

그분은’영란이’를그후에한번이라도다시만났을까.

만났었기를기원한다.지금도만나고있기를…

벌써수십년전얘기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