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판을 팡팡 찍던 라이카 ‘250 Reporter’

라이카(Leica)는주지하다시피독일의카메라브랜드입니다.

카메라를,특히실사(實寫)든수집이든,

필름카메라를좋아하는호사가들이제일갖고싶어하는명기지요.

저는10여년전부터라이카를접했습니다.물론옛라이카들입니다.

참고로1913년35mm랜지파인더인Ur-Leica(Replica)가첫생산된후,

상업적판매는1925년부터이뤄지는데,

첫출시된카메라는LeicaI(A)입니다.

그후Leica-I(B),I(C),Non-standard,II(D),III(F),

III,250Reporter,III(a)등의모델이계속나옵니다.

이들초기의라이카카메라들은이른바스크류마운트용타입입니다.

렌즈를스크류식으로돌려바디에마운팅한다고해서붙여진이름인데,

LTM(LeicaThreadMount)이라고부르기도합니다.

이모델들은1960년까지생산됩니다.

스크류마운트의마지막모델은IIIG와이를변형시킨IG입니다.

1960년이후부터는엠마운트(M-Mount)와SLR인R모델로,

지금까지생산이이어지고있지요.현재M은M9까지,R도R9까지나왔습니다.

(Leica250Reporerwithmotordriver)

10여년간위에언급한옛라이카들중대부분은만져보았습니다.

구하느라돈도많이들었습니다.많이가지고있을땐30여대가넘기도했었지요.

그러나이들은지금은수중에없습니다.다들떠나보냈습니다.

그옛라이카들은전부외국에서구했습니다.이베이(eBay)덕분이지요.

손에넣는과정에서사연없는카메라는없습니다.

지금은이베이에서의경매과정이나송금,

그리고쉬핑(shipping)이아주편리합니다.

그러나예전에는그렇지않았습니다.모든게어려웠지요.

통관문제도그중하나로,그때문에골머리썩인게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갖고있다떠나보낸라이카들이모두그립습니다.

그중에서특히그리운게있습니다.

‘250리포터(250Reporter)’

이카메라는예나지금이나수집가들이군침을흘릴정도로무척귀한올드라이카카메라입니다.

생긴것부터가타의추종을불허하는’라이카的’이지요.

필름매거진가로길이가일반스크류마운트모델의두배이상으로깁니다.

왜’250’이고’Reporter’인가.

10미터길이의롤필름을필름스풀에감아250판을찍을수있기때문에’250’이고,

주로사진취재기자들의보도용으로사용됐다해서’리포터’입니다.

옛라이카서적들을보면이카메라는’거리의사진사들(StreetPhotographers)도

많이사용했다고합니다.

1934년처음나왔습니다.그해부터출시에들어가1943년까지생산된카메라로,

모두950여대만들어진것으로라이카자료에나와있습니다.

(히틀러의나찌독일이’적대언론’을탄압하던시기인1933년에’250Reporter’가출시됐다.그러나라이카공식자료엔1934년출시로되어있다.’250Reporer’과시대적역사성을수록한옛라이카서적중에서발췌한것이다.)

라이카호사가인나도이카메라를2000년에가져본바있습니다.

호주시드니의한화교로부터이베이경매에서낙찰받았습니다.

낙찰가가거진7,000달러정도였는데,

나는경매에서0.55달러차이로’250리포터’를손에쥐었습니다.

정말짜릿했었지요.

렌즈는바디와매칭되는엘마(Elmar)5cmf.3.5였습니다.

카메라는시드니가아닌싱가폴에서Fedex로나에게부쳐집니다.

판매자인그화교의통관을용이케하기위한배려때문이지요.

그런데김포공항에도착했는데,세관통관에잡힙니다.

세관원들이가치측정을못하고있다는게페덱스측의설명이었지요.

공항세관으로가설명을해도막무가내입니다.

판매자는신고가(valuedeclaration)를350달러로적었는데,

그게말이되느냐고세관원들이따지는것입니다.

속이바짝타들어갔고,처리를위해별생각이다들었습니다.

한시간이넘게싱갱이를하고있는데,

시드니의그화교로부터그자리로전화가갑자기왔습니다.

잘받았느냐?

아니,지금세관에잡혀있다.

무슨소리냐?’선물(gift)’로신고했고가격도명시하고있지않은가?

시드니그화교는담당하는세관원에게따지겠다며바꿔달라고했습니다.

휴대폰을세관원에게건넸습니다.

자,한번받아보시라.시드니의친구가따지겠다고한다.

세관원이"여보세요"하며전화를받았습니다.

그리고는한참을묵묵부답인채전화기만귀에대고있더군요.

그러더니전화를갑자기나에게주며신경질적으로말합니다..

"아,알았어요.가져가세요.뭐라는지알아야지.나원참…"

나는그세관원이왜그토록허무하게(?)포기했는지,

그이유를아직도모르고있습니다.물론물어볼필요도없었습니다.

통관세10만원정도를내고카메라를손에넣었습니다.

카메라가든박스를들고김포공항을나와사무실까지오는동안,

나는거진내정신이아니었습니다.

결국사무실까지가지도못하고

연희동의어느중국집에서배갈을고주망태로마셨습니다.

다음날아침,눈을떴을때아차,했지요.

사무실책상위엔컴퓨터만켜있고,그것은보이지않는것입니다.

그것은지금어디에있는것일까.

그러나그것은책상아래깊은서랍속에얌전히놓여있었습니다.

엉망으로술이취한상태에서도딴에는챙기느라그속에넣어두었던것입니다.

나는그것을두어달정도갖고있었습니다.

그리고그것은어느날내곁을떠나갔습니다.

그것,그’250리포터’는지금어디에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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