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내리고있다.
날은벌써어스름이다.
어느집처마밑에서있는데,
내리는빗방울이전봇대백열등불빛을칼짓하는듯하다.
요,어딥니꺼?
옆에엉거주춤같이서있는동행에게물었다.
글씨,여기가어디지.우리가어데서탔지요?
둘의기억은블랙아웃이다.언제부터그리됐을까.
만나기는아침나절,종로4가열차집에서였다.
꾸물꾸물한날씨에열차집은아침부터나이든술꾼들이드믄드믄꼬여들고있었다.
거누아비가좋지요,이런날씨에는.
거누아비?
대꾸도하기전에벌써주모더러그안주를갖고오라고주문한다.
막걸리에거누아비.
두어잔을비웠을까.
자,우리도한번그리해봅시다.
무슨뜻인지모를말씀을한다.
좁은열차집에는벌써사람들이찼다.
그리그리시작된술판이었다.
다시한번정신을가다듬고주변을둘러본다.
높은축대아래옴팡진집들이옹기종기몰려있는동네다.
비는그쳐가고있었다.
처마밑을나와집모서리쪽에서그아래를봤다.
촌스런조명속에몇개의홍등이보인다.
질척한길에쓰레기수거차가덩그마니서있다.
좀걸어,홍등걸린집앞에서서야그곳이그런집인줄알았다.
사각유리창몇개가얼기설기있는도르레문저쪽에서는노래가락이들려오고있었다.
미아리그동네.속칭해서텍사스였다.
우리가그동네를어떻게왔는지는아직도알수가없다.
그동네어느집에서어떻게술을먹고어떤짓을했는지도모른다.
우리도비슷하지요?
동행한분이싱긋웃으며말을건넨다.얼굴엔주기가녹록하다.
뭐를요?
우리도기억속의저편을한번더듬어보지않았슈?
기억속의저편이라니.
그제서야번득떠오르는기억들.
열차집에서동행한분은책을한권건넸다.
李箱의얼굴케리커쳐가있는표지의책.
‘어두운기억의저편’이수록된책이었다.
그해,그러니까1984년李箱문학상수상작으로뽑힌작품이다.
술먹다말고,단숨에읽었다.꽤긴단편이었는데도.
재미있지요?
글쎄요.
근친상간일까요?
글쎄요.
술김에읽어자근자근한내용도알수가없을뿐더러,
그소설이뭣을말하고자하는가도헷갈린다.
술을엉망으로마시다이문동의어느여관에서떡이되어잔후,
긴한서류봉투를잃어버린한평범한회사원의얘기다.
술이떡이되어이문동을왜갔냐는것이그날우리들미아리텍사스행의좋은빌미가됐을것이다.
이문동어느술집에서왜어느여자를꽤차고여관으로갔는가,
그리고그여자에게왜넋두리를늘어놓았을까
그여자가6.25사변통에부모를읽고고아원을전전하며잃어버린누이동생?
누이동생이라도異腹?
그러면근친상간인가아닌가.
이런얘기들을주고받았을것이다.
그러다둘이서손잡고미아리텍사스로갔다는것인가.
하여우리도어떤여자를찾았을까.
그곳에도사린어떤어두운기억이둘중의누군가에있었을까.
어두운기억속의저편에무엇이있었을까.
70년대중반에거기에국민학교동창이살고있었다.
그여자를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