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趙 世林 – 그 비운의 가족史

21세에요절한시인趙世林은그의운명만큼,

가족사또한애달프고슬프다.

조선조중종,수구파에의해역신으로몰려죽임을당한정암趙光祖의恨이

日月山위를맴돌고있음인가.

조세림의아버지는趙憲泳이다.

와세다대학을나와제헌의원과2대의원을역임중6.25때납북당했다.

장남세림이水風에걸려위독하다는전갈을받고길을재촉해安東까지내려왔으나,

때아닌폭우로개목나들다리가끊기는바람에끝내아들의임종을못한비운의아버지다.

장남인세림은모두4명의아우를뒀다.

큰아우는주지하다시피‘승무’‘지조론’으로익히알려진청록파시인趙芝薰이다.

지훈역시천명을다하지못했다.고려대교수로,48살한창나이에세상을떴다.

태어나백일도못돼걸린천연두자죽과

세살때앓은홍역으로인한천식은평생그를따라다녔다.

둘째아우인趙東運은1920년생인데,10살도못돼죽었다.

막내남동생은趙東偉다.

서울경성중학을마친뒤6.25가발발해학도지원병을입대한다.

그러다아버지조헌영이납북됐다는소식을듣고는훈련중향리로돌아와자살한다.

趙東敏은세림의유일한여동생으로,4남매중넷째다.

1927년생으로올해팔십셋이다.

그녀또한6.25당시남편이납북당하는등불운과시련을겪었다.

그러나그녀는살아남았다.

그녀를끔찍이아끼고사랑한세림.지훈두오빠의陰德때문일까.

세림의조부는趙寅錫이다.

南州公趙承基의아들로조선조말대간을지낸성균관유생이다.

나라가일본에합방되자고향으로내려와한학과유학교육에힘썼다.

3.1운동때는崔鱗과밤을지새우며기미독립선언서를작성한독립운동가이다.

아버지조헌영이동경유학과정치활동등으로바쁠때세림형제들을챙긴분이다.

스스로고향마을에월록(月麓)서당을지어세림형제들과동네얘들을손수가르쳤다.

유학자로서漢陽趙씨가문을지키고고향조실을끝까지지키려했던조인석도

그러나끝내자결로생을마감한다.

6.25가터지고공산군이마을로들이닥치자스스로목숨을끊은것이다.

(재종숙부와함께한조동민여사(위사진),그리고두시인의아버지조인석)

세림의고향마을인경북영양군일월면주곡동의‘주실마을’은

선조인조광조가역신으로몰려일가가몰살의참화를피해온곳이다.

인조때일이다.趙佺이입향조다.

마을에있는세림과지훈의생가는조전의둘째아들인趙廷珩이세운역사적유물이다.

세림의증조부,즉조인석의아버지趙承基또한자결로생을마감한의병장이다.

조선조말한양의군사력이지방까지수비할형편이안된다는것을알고

직접의병을일으켜왜적과끝까지싸웠다.

때문에집은풍비박산이됐고,조승기는일제에항복하지않고자결한다.

아버지,아들2대가자결의길을택한셈이다.

(조인석선생이향리에세운월록(月麓)서당.세림.지훈.동민은이곳에서한학을배웠다)

유일하게살아남은조동민여사는다복한가운데서도두오빠기리는일에바쁘다.

오빠세림이죽은해인1937년도에세림을기려동생인지훈이출간한‘세림시집’을

1993년첫공개해세림을세상에알렸다.

2006년에는두오빠들을그리면서노래한시집‘누이야,오늘은바람이’,

그리고슬하의장성한3남매들과함께한가족시집도냈다.

요절한세림은물론자식이없다.그러나지훈의가족들소식은간간히들린다.

지훈의아들인조광렬이2007년경아버지지훈을그리며쓴

‘승무의긴여운,지조의큰울림’이란책을냈다는소식이다.

현재미국에서수필가로활동중인조광렬은학자이자시인이며,

풍류객인지훈의유년시절이후개인사를아들의시선에서재구성했다고한다.

아버지지훈의개인사라지만,궁극적으로는세림.지훈의한가족사일것이다.

보지는못했지만,큰아버지세림의얘기도분명나올것이다.

여동생과조카의이책들로나마암울했던식민지배하의시인으로

짧은인생을불우하게살다간세림의영혼이위로를받았으면한다.


無聊에지치인몸

오늘도들창턱에기대서서

창살넘어

끝없이펼쳐진하늘을바라보다


새장속에파들거리는

작은새와같은삶이여!

힘오른팔뚝


통겨진血管속에靑春은慟哭한다


(조세림‘憂鬱’전문)

(사진:문학계간지1993년’시와반시’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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