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세월을 거슬러…
BY koyang4283 ON 7. 8, 2010
선배는인천시청뒷길까지몸소마중을나왔다.
막운동을끝낸차림이었다.
어떻게할까.
해변가로갈까,아니면집엘가서간단히하고나올까.
선배집으로갔다.근처수퍼마켓에서캔맥주너댓개.
선배하고는정확히33년만의해후이다.
1977년고향신문사에들어갔을때,
선배는전국을떠돌다가그곳신문사에적을두고있었다.
고향은보성이다.학교는서울서나왔다.사학을전공했다.
광주의오지호선생과가까웠다.
만나자마자가까워졌다.한분이또계신다.
기획실장으로계시던안윤봉선생.
나이가제일어렸던나는종횡무진이었다.
나의어린양을두분은잘받아주셨다.
그신문사생활6개월동안,나는많은것을알고배웠다.
그리고서울로올라오면서두분과헤어졌다.
마산을떠날무렵,선배집으로간기억이있다.
선창가에서술을마시다,그냥즉흥적으로버스를잡아타고진주로간것이다.
선배는마산신문사에다니지만,집은진주였다.무슨주공아파트였다.
형수는부산분이다.신혼냄새가물씬풍기는,
그러나선배를닮은훈훈한향내가나는집이었다.
아침에눈을떴을때촉촉히비가내리고있었다.
빗방울사이로멀리,안개자욱한남강이내려다보였다.
식탁에앉자마자,선배는맥주부터딴다.
냉장고를열어각가지반찬을다꺼낸다.
멸치볶음,총각김치,치즈,연근조림등.
위스키한병도꺼낸다.발렌타인21년산.
그렇게해서시작된술자리가밤이이슥하도록이어졌다.
‘마산후’의얘깃거리가그렇게도많았다.
안선생,경남대윤태림학장,조두남선생,그리고샹하이박.
이분들과의교유얘기가가슴을찡하게했다.
모두들돌아가셨다.
선배는마산서올라와인천에서교편을잡았다.
한문과국어를가르켰다.한문혼용을주창했던오지호선생의영향이컸다.
오지호선생과선배의선친과교분이각별했던것같다.
선배아버님은일찍세상을떴다.27세라고했던가.
혼란한해방공간의희생자였다.이중재씨얘기도나왔다.
선배아버님의초상화가있었다.27세때의모습.
오지호선생의아들이화가다.그의그림이다.
물론그화가(이름이기억안난다)도불행하게세상을떴다.
그림속,선배의아버지는근엄한표정이다.
선배는아버지를1살때여위었다.
선배에게아버지는그림으로남았다.
초상화옆엔5년전세상을뜨신어머니의사진이있다.
조선춤을추시는모습인데,빛바랜흑백사진의한모습을확대해놓은것이다.
그어머니가아버님을’교화’하셨다며선배가껄껄웃는다.
어떤’교화’인가는얘기않기로하자.
주기가느껴지고있을무렵,선배가서재에서책을한권갖다준다.
‘급취장(急就章)’이란책이다.선배가지난2008년심혈을기울여펴낸책이다.
‘급취장,’생전처음들어보는말이다.
선배는한참을얘기하는데,잘요해가되질않는다.
더쉽게애기한다.천자문의할아버지라고생각해라.
그러고보니책의끄트머리에’천자문의할아버지’라고써놓았다.
천자문이나오기훨씬전에한문을가르키는교본이있었다.
그게바로’급취장’이라는것이다.5천년전쯤이었다고한다.
그게이어져오면서사라졌다.간간히중국의고대유물에서언급된다고한다.
선배는중국의심양,서안등에서그유물들을뒤졌다.
漢나라시기의유적과유물들에서제일많이나온다고한다.
그것을근거로체계화해책을펴내우리나라에제일먼저소개시킨것이다.
실로대단한일이다.
그런노력과열정으로자비를들여책을펴낸것이다.
작년에책이나왔지만,그러나아직까지우리나라에는알려지지않고있다.
언론에서관심을가져주지않았다는것인데,
왜냐고했더니,돈때문이라는답이돌아왔다.
책소개하는데도돈이든다는것이다.
몇권의책을더가져다준다.두권으로된답사기.
그책또한노력과열정의결정체다.
나더러가져가라고한다.그리고꼭읽어보라고한다.
내그럴줄알았다고했다.
언제,어디에있건선배는이런일을하고있을줄알았다.
밤이이슥해지면서형수가오셨다.
기억에남아있던예전의모습이아니다.
예전모습은경대위빛바랜사진속에만남아있었다.
형수는경남여고를나왔다.아직인천에서교편을잡고있다.
형수가오면서기억은점점더30여년의세월을거슬러가고있었다.
몸을가눌수없을정도로술에절어가고도있었다.
서울가는버스정류소까지배웅해주셨다.
버스를타고밤거리를붕붕거리고가는데,
기억은자꾸옛일을더듬고있다.
일산땅으로들어가고있었다.
선배로부터의전화.
집도착하면반드시연락을다오.그래야내가잠을잘수있을것이다.
몇정거장을지나쳤다.고꾸라진것이다.
다시몇정거장을거슬러가야한다.
버스를다시갈아탄후전화를했다.
집이아니지않는가.집에도착해서전화를해라.그래야내가…
아마도선배는새벽녘에야잠자리에들었을것이다.
<‘천자문의할아버지’급취장(急就章)>
|기사입력2008-06-27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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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전환관이편찬한한자교본완역
(서울=연합뉴스)김태식기자=양나라때주흥사(周興嗣.?-521)가하룻밤만에완성하고는머리가하얗게샜다는천자문(千字文)은현재까지도한자학습서의독불장군으로군림한다.
천자문은어느날갑자기하늘에서떨어졌을까?
급취장(急就章)이있다.서한(西漢)시대말엽인기원전30년무렵원제(元帝)시대에황문령(黃門令)이라는환관직책을역임하고은퇴한사유(史游)라는사람이편찬했다는한자교본이다.이한자학습서에는모두1천677자가수록됐다.천자문보다677자가많다.
천자문이아직까지권위를잃지않는까닭은단한글자도반복하지않으면서도우주삼라만상을운문으로엮었기때문이다.사실천자문은한자학습서이기이전에철학서요,시집이다.
이급취장또한이와유사하게운율을이용했다.
급취장은크게3부혹은4부로나뉜다.5구체(句體)서문이있고3언(言)으로된표제어를제시한성명(姓名)편이잇따르며,이어본문은다시7언인만물(萬物)편과노래로,4언인송(頌)편으로세분된다.
따라서급취장은3언,4언,혹은7언이라는운율을동원해한자학습의효율성을높이게끔기획했음을알수있다.
이에수록된총글자는1천677자라하지만,중복되는글자까지다헤아리면2천16글자가된다.
천자문이철저히4언체를고수하는점이급취장과차이를보이기는하지만,운율을동원한대목은분명히천자문이평지돌출한결과물이아니라급취장과같은이전한자학습서를’개량’한것임이분명하게드러난다.
물론급취장또한독창적인발명품은아니다.각종기록에의하면그이전에도이미중국에는여러종류의문자학습서가있었다.특히진시황제를보좌해천하통일을이룩한이사(李斯)가지은’창힐’을필두로,그를모함해죽음에이르게한조고(趙高)또한’원력'(爰歷)을지었으며,이후에도태사령(太史令)을지낸호무경(胡毋敬)이’박학'(博學)이라는학습서를썼다.급취장이전이들세종류의학습서는’삼창'(三倉)이라일컬었다.
하지만이들삼창은모두가사라져버리고,현재는다른책에산발적으로인용된형태나고고학발굴조사등을통해편린으로전해질뿐이다.
이와는달리급취장은생명력이질겨현재까지도그판본이전한다.그것은다른무엇보다당나라초기에경전주석가로이름을드날린안사고(顔師古)라는사람이이급취장에도주석을가하고,이를이어받아송나라를대표하는제1의박학왕응린(王應麟)또한안사고주석을더욱보강한작업성과물을남겼기때문이다.
한자학습서라면모름지기천자문만있는줄아는이들에게급취장은색다른선물일수있다.하지만지금까지적어도국내에서는그런선물이주어진적이없었다.아무도급취장을옮기는작업을하지않았기때문이다.
이런사정도일변하게됐다.여섯살에서당에서천자문을배우기시작하고고교에서국어와한문,그리고문학을가르친양효성(梁曉星.62)씨가이급취장역주본을완성했기때문이다.
도서출판박이정을통해’사유(史游)급취장’이란제목으로출간한이번역주본에다가양씨는’천자문의할아버지’라는부제를달았다.한국어발음체계에맞게원전을재배열한이번역주본이더욱빛을발하는대목은원전뿐만아니라안사고의주석까지도옮겼다는점이다.
1999년부터베이징에서청소년여름학교를개설해운영하다지난해급취장역주를위해랴오닝대학으로옮긴양씨는자료수집을위해중국각지의발굴현장이나박물관등지를샅샅이훑었으며,이과정에서촬영한사진1만장중100장을골라이번역주본곳곳에참고자료로수록했다.
"그림과한문두분야에문외한인필자가이책을옮긴다는것이무리"임을알았음에도"외손녀가태어난기념으로평생처음한권의책을묶어보고자달랑가방하나들고객지에와서네계절을보내며"이번역주본을완성할수있었다고역자는말한다.392쪽.2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