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에 다가가기

말들이많았다.

그냥조용하게내버려둬라.

그양반것을왜지금와서들쳐보려하는가.

실체는분명있을것이다.

그러나사람들의무관심속에세상을뜨고없는지금,

그분은너무많이왜곡되고폄하됐다.

이십수년전에한6개월같이지낸인연밖에없다.

그런입장에서너무나서기도좀뭐하다.

그러나웬일인지그분이자꾸마음에걸렸다.

같이알고지낼무렵도그러했다.

좌익활동을한탓,

그게시퍼렀던그무렵어떤후과를주는것인지의산모습,바로그것이었다.

그분이이념적으로그렇게경도됐을개연성은충분히있다.

우리나라의근대사자체가그런것아닌가.

이념은시대에따라주도와종속,지배와피지배를반복한다.

인간은그오르내림의줄을타는시대의한희생물에불과한것이고.

같이알고지내던그무렵의한선배가또있다.

그분은내게이런당부를했다.

주민등록번호가있을것이다.그걸어떻게좀알아봐줬으면좋겠다.

그러면서들춰내는희미한기억들의편린.

그분은의령사람이다.만석꾼집안이었다.

우리나라최고재벌대명사였던분의선조가그집에서마름을했었다고들었는데…

그리고아마도경성고상에서공부를했었다는소릴들었는데,당최확인이안되니…

그분에관한한모든게블랙아웃이었다.

분명한것하나는마산공립상업학교(전마산상고,현용마고)를졸업했다는것.

그곳신문사에한나절주저앉아있었다.

뭔가그분에관한것이있을것이다.그신문사에서만났으니.

그러나신통한게없었다.

인사자료들이사무실이전관계로뒤섞여져어디에있는지모른다는것이다.

집요하게매달렸다.높은사람들에게도부탁했다.

총무쪽의직원한사람이그제서야관심을보인다.

조금기다리라고하더니,서류뭉치들이쌓인방으로들어가뒤적거린다.

한20여분지났을까,종이서류몇장을들고온다.

순간눈에확들어오는사진한장.그분의인사기록카드이다.

왼쪽상단에흑백증명사진,그분의중년때모습이다.

그분은1984년경에돌아가셨다.

가족들이물론있었다.그러나그어느누구도알지를못했다.

그분묘소가어디에있는지,하나남겨진딸자식이어디있는지.

친구중하나가그딸에대해언급한적이있다.

이름이아마도’정화’일것이다.아마우리또래쯤됐을것이다.

친구의외가쪽어떤분이그분의초혼대상이었다는것,그래서희미하게알고있다는것이다.

그친구도물론그분딸인’정화’가살았는지,죽었는지,어디에살고있는지아무것도몰랐다.

인사카드는궁금해왔던몇가지사실들에관해대답을주고있었다.

그분이마산공립상업학교를졸업했다는것.

그리고졸업한이듬해,서울에있는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상대전신)에진학했다는것.

그리고졸업을못하고일년만에그만두었다는것.

또하나,마산에내려오기전서울의S신문에총무국장으로재직했었다는것.

가족관계는막연한나의추측과사뭇달랐다.

1970년당시69세인노모와함께살고있었다는것.

그리고부인이당시48세였고,슬하에세딸이있었다는것.

그중큰딸이’정화’였다.나이는따져보니나와동갑이고,

막내딸은지금이면47세가되어있을나이였다.

당연하겠지만,논란이되고있는좌익활동과관련한사항은기재돼있지않았다.

딱하나,예총지부장을수년간한기록은남아있었다.

그리고주민등록증번호.출생년도는1926년이었다.

내아버지보다한살어린나이였다.

아버지는1977년6월에돌아가셨다.

그때,이분이문상을오셨다.

빈소앞에서내손을잡고위로를하시면서손에다뭐를잡혀준다.

천원짜리지폐한장.

김기자,내돈이이것밖에없소이다.미안하오이다.

뭔가그분에관해조금은훤해져오는느낌이다.

이제부터시작이라는느낌도들고.

의령땅으로가봐야한다.

학교들도가볼것이다.

어딘가에있을가족들도찾아나설것이다.

그분의실체는이제조금조금씩나에게다가오고있다.

그분의호탕한웃음이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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